[단비인터뷰] 교직 접고 ‘습지 지킴이’로 나선 이인식씨

지난 2010년 4대강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경남 창원시 봉곡중학교에서 일반사회를 가르치던 이인식(58)씨의 고민도 깊어졌다. 낙동강 공사가 주변 하천에 영향을 끼치면서 경남 창녕군 유어면의 토평천에 있는 우리나라 최대 내륙습지 우포늪이 위험해졌기 때문이다.

▲ 우포늪 아침 풍경. ⓒ 이인식

우포늪은 화왕산에서 내려온 토평천이 낙동강으로 빠져나가는 중간 지점에 있다. 이곳은 지대가 낮고 배수가 원활치 않은 곳이라 비가 많이 오면 낙동강 물이 역류해 들어와 늪에 고인다. 그런데 4대강 공사 후 토평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우포늪 끝자락에선 흐르는 물에 토사가 씻겨나가 바닥이 파이는 세굴현상이 나타났고, 강에서 흘러온 흙이 늪에 쌓였다. 강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우포늪의 생태계가 바람직하지 못한 변화의 위협에 노출된 것이다.

“강바닥을 준설할 때는 각도를 정밀하게 측정해야 하고 시멘트를 사용하면 안 되는데 시공사가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어요. 우선 겉보기에 좋을지는 몰라도 인위적으로 만든 것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변화시키기 마련이죠.”

습지와 따오기 복원을 평생의 과제로 삼아

▲ '우포늪 지킴이'라 불리는 환경운동가 이인식씨. ⓒ 이보람

환경운동을 하며 20여년을 지켜 온 우포늪이 공사 때문에 망가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그는 정년이 4년 반이나 남았던 2011년 7월 교직을 접고 우포늪 옆 마을인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로 거처를 옮겼다. 우포늪의 변화를 아침저녁으로 모니터링하고 국내외 환경관련 행사에 참석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하려면 교사 일을 병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난 14일과 지난해 5월 등 두 차례 <단비뉴스>와 인터뷰를 가진 그는 “습지와 따오기 복원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는 인위적인 공사가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증거를 남기고 생태계 복원의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매일 아침·저녁으로 3~4시간씩 우포늪을 돌며 동식물 사진을 찍고 글로 기록한다.

“이 기록이 앞으로 5년이나 7년 뒤에 여기 생물 다양성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첫 작업이거든요. 여기 따오기가 들어와 있잖아요. 그 따오기를 아무 데서나 복원하는 게 아니에요. 천적이 많이 나타나는 데서는 안 되거든요. (모니터링은) 기초 자료에요. 이런 게 나중에 사람들이 오류를 범하는 걸 막을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가 되죠.”

▲ 이인식씨는 매일 우포늪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 이보람

그는 우포늪을 걸으며 인터뷰 하는 중간에도 아침과 달라진 모습이 있으면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그를 ‘우포늪 지킴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두가 호의적인 눈길을 주었던 것은 아니다. 한 때는 지역 개발에 방해가 될까봐 ‘나쁜 놈’ 취급을 하기도 했다.  

‘나쁜 놈’ 손가락질 하던 사람들 ‘우포늪 지킴이’로 인정

그가 우포늪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고’였다. 두산전자가 방류한 유해물질인 페놀원액이 대구시 상수원으로 유출된 사건으로 지역시민단체들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나중에 마창환경운동연합이 된 마창공해추방시민협의회가 결성됐다. 이씨는 이 단체에서 활동하다 95년에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교사모임’을 결성하는 데도 참여했다. 이에 앞서 80년대 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탄생시킨 참교육운동에도 동참했다. 그런데 그가 환경운동을 하면서 우포늪을 보전하자고 하자 지역주민들은 거세게 반대했다.

“당시는 자연보호에 대한 의식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개발이 되지 않을까봐 주민들이 싫어했어요. ‘저놈이 배가 부르니까 엉뚱한 짓을 하고 다닌다’며 욕을 하기도 했죠. 생태계 특별보호구역 지정을 추진하러 우포늪에 왔다가 주민들에게 맞아서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었어요.”

그러나 이씨는 주눅 들지 않았다. 먹고살기 힘든 주민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과 경찰이 폭력을 휘두른 주민을 처벌하려 하자 오히려 탄원서를 내고 그를 감쌌다. 그리고 언론인터뷰와 기고 등을 통해 국가가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필요한 보상을 하면서 자연을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서히 주민들도 그의 편이 되어갔다.

▲ 우포늪은 1998년 3월 2일 람사르협약 보호습지로 지정됐다. ⓒ 이보람

우포늪은 1997년 7월 ‘생태계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됐고 98년에는 국제적 습지 보호 협약인 ‘람사르협약 보존습지’로, 다음 해에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돼 보호를 받게 됐다. 이 과정에서 농어업에 손해를 본 주민이 있으면 국가가 보상했다. 우포늪이 명성을 얻자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보호 지역 밖에는 음식점과 주차장, 자전거 대여소 등 부대시설이 늘어 땅값도 올랐다. 길도 넓게 정비됐다. 동네 사람들은 ‘유치원 같은 시설은 안 들어서느냐’며 그에게 넌지시 묻기도 한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자연 활용하면 경제도 살아나

그는 우포늪과 전남 순천시의 순천만 사례를 들며 환경을 지키는 것과 경제를 살리는 일이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순천만도 처음에 갈등이 많았어요. 그런데 잘 보존하니까 그걸 보러 오는 관광객이 늘어나 1년에 1천억 원 이상의 경제 효과를 낸다고 하잖아요.”

그는 일본 효고(兵庫) 현 도요오카(豊岡)시도 91년부터 황새 복원에 주력한 뒤 ‘황새의 고향’으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됐다고 소개했다. 처음 황새 복원을 시작했을 때는 주민과의 갈등이 컸지만 끈질기게 설득해 합의를 이끌어 냈는데, 지금은 살아난 자연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마을의 큰 수입원이 되고 있다고 한다. 

도요오카시에 황새가 있다면 우포늪에는 따오기가 있다. 따오기는 천연기념물 제198호로 1980년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는 멸종됐다. 중국에 남아 있던 7마리로 개체 수를 늘려 4년 전에 이곳으로 2마리를 데려왔다. 그걸 ‘우포늪따오기복원센터’에서 부화하는 데 성공해 현재 19마리로 늘었다. 이 센터는 지난 2008년 정부가 만든 기관으로, 그는 명예 따오기복원위원장을 맡고 있다.

▲ 지난 해 5월 부화한 따오기 6마리. 따오기는 멸종 위기의 천연기념물로 현재 우포늪따오기복원센터에서 보호 중이다. ⓒ 우포늪따오기복원센터

“여기에도 따오기가 하늘을 난다고 하면 사람들이 한번은 올 거예요. 그게 관광이죠. 생물 종도 복원하고 자연을 지키면서 돈이 되는 이게 가장 좋은 생산이죠. 그래서 조사도 하고 생물이 없는 것은 복원도 하고. 문제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걸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멀리서 소리 질러 봤자 아무 소용없어

그는 ‘따오기생태학교’ 교장이기도 하다. 사재를 털어 주말과 방학 등에 생태학교를 여는데,  독수리 먹이 나누기, 조류탐사 등을 통해 아이들이 자연을 관찰하고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습지보호를 공부하는 마을 캠프도 연다. 가족단위 참가자가 많은 이 캠프에서는 지역주민이 교사가 돼 습지생물 관찰, 우포 새벽 마실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인다. 2013년에도 3~4차례의 캠프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 우포늪에 온 아이들과 독수리먹이주기 체험을 하는 모습. ⓒ 이인식

그의 다음 목표는 우포늪 근처에 우리나라 최초의 생태문화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이미 퇴직금으로 약 200평 크기의 창고를 샀고, 우포자연도서관 운영위원회와 후원회도 꾸려졌다. 환경보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관련 서적들을 폭 넓게 갖출 계획이다. 또 ‘우포 웹진’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우포늪 소식을 신속하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우포늪 과 야생동식물 사진을 자주 올리며 2천여 명의 ‘친구들’과 환경보호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있다. 이런 모든 활동은 그의 ‘풀뿌리 운동’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

“(사회)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지금 뭘 해야 하냐면, 정치 구호를 외칠 게 아니라 각자 자기 마을이나 고향, 회사에 들어가서 열심히 행동하고 실천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만들고 (사람들이) 감동하게 해야 해요. 운동을 그렇게 안 하면 끝이 안 나요. 멀리서 아무리 소리 질러 봤자 소용없어요. 주민들하고 같이 움직이면서 (이 일이) 왜 중요한지, 왜 이렇게 가야 되는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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