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제천 의림지 민속대제전, 20일까지 썰매도 타고 빙어도 낚고

‘날이 춥다’는 이유로 집안에 틀어박혀 있기엔 좀이 쑤신다. 막상 집 밖으로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생각에 막막하기만 하다. 방송에 소개된 겨울축제에 가보려 하지만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은 가격도 비싼데다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런 걱정이 드는 사람이라면 의림지 동계민속대제전에 가 볼만하다.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는 원삼국시대에 세워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다. 충청도의 별칭인 ‘호서’의 뜻도 의림지의 서쪽 지방이라는 것에서 유래 됐다. 유서 깊은 의림지에서 동계민속 대제전이 17일 개막됐다.

얼음 위 줄다리기 힘만으론 안 돼요

▲ 얼음판에서 하는 줄다리기는 지켜보는 사람이나 참여하는 사람 모두 흥미진진하다. ⓒ 안형준

 

“청풍면 줄 놓으세요. 먼저 줄을 당기면 반칙입니다. 시작!”
“영차, 영차!”

마을의 명예와 상금이 걸린 까닭에 신경전이 팽팽했다. 사회자가 시작을 알리자 마을 장정들은 안간힘을 쓰며 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얼음 위에서 하는 줄다리기인 탓에 장정 서넛이 미끄러져 바닥에 나뒹굴자 구경꾼 사이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한편 행사장 무대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도 삼삼오오 무리 지어 바라보는 무대에는 ‘빙어 빨리 먹기 대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의 살아있는 빙어 십여 마리를 물이 담긴 하얀 플라스틱 그릇에 넣어 초장과 함께 탁자 위에 올려두면 젓가락을 이용해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이 먹는 참가자가 우승하는 대회다.

대회는 남성부와 여성부로 나뉘어 치러졌다. 사회자가 ‘참가자 모집’을 알리기도 전에 무대로 발을 올린 열성 참가희망자 덕분에 무대 주위는 일순 웃음이 일었다. 뜨거운 호응 속에 참가자들이 모이자 사회자가 음악을 주문했고 본격적인 ‘대결’에 앞서 무대 위에 한바탕 춤사위가 벌어졌다.

제천 박달재 인근에 산다는 최영자(60·여)씨는 불그스름하게 머리도 염색하고 카메라 세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빙어 먹기’에 열중했다. 그러나 상품을 타는 데는 실패했다. 뒤이어 열린 남성부 경기는 앞서 열린 여성부 경기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돼 ‘반칙’이 속출했다. 한 참가자는 사회자 몰래 물을 흘려버리다 지적을 받았다. 다른 참가자는 손으로 빙어를 집어 먹다가 순위권에서 제외됐다. 경기 전 열정적인 춤을 보여준 이상일(72)씨는 “사흘 전 의림지에 놀러 왔다가 축제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축제에 춤이 없으면 너무 삭막하지 않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 아버지가 밀어주는 썰매에 몸을 맡기고 겨울을 만끽하는 아이들. ⓒ 안형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끌어주는 썰매만큼 재미난 게 더 있을까? 꽁꽁 얼어붙은 호수에서는 아이들의 썰매 타기가 한창이다. 최동일(38·한국철도공사)씨는 두 자녀를 태운 썰매를 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썰매에 앉아 눈이 하얗게 내려앉은 의림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최씨는 “집을 벗어나 밖에 나오니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게 돼 너무 좋다”며 “며칠 내로 또 오겠다”고 말했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썰매를 타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인천에서 온 이광훈(58·사업)씨는“썰매를 타니 어릴 때 생각이 많이 난다”며 2인용 썰매에 부인을 태우고 빙판을 내달렸다. 

의림지 풍경을 만끽하며 편안하게 썰매를 타는 방법도 있다. 사륜구동 오토바이에 밧줄로 고무 튜브를 연결한 썰매다. 오토바이가 회전하면 튜브는 긴 동심원을 그리며 이용자에게 짜릿한 속도감을 선사한다. 

“찌도 못 걸면서 빙어낚시를 한다고? 허허”

중국의 강태공이 세월을 낚았다면 제천의 의림지에선 추억과 재미를 낚을 수 있다. 의림지 한쪽에서는 빙어 낚시가 한창이다. 빙어는 입춘 이후 얼음이 녹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지금이 빙어낚시의 제철이다. 

아이 셋과 할아버지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축제 자원봉사를 하는 최동일(78)씨는 찌를 걸지 못하는 아이들의 낚싯줄에 허허 웃으며 찌를 걸어주고 있었다. 제천 토박이인 최씨는 “아이들이 빙어낚시를 하는 것을 보니 어렸을 때 친구들과 추억이 생각난다”며 “사람들이 많이 와서 빙어낚시와 축제를 즐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 아이들이 빙어낚시를 하는 모습을 보며 과거를 떠올리는 자원봉사자 최동일 씨. ⓒ 안형준

 

“7,000원이나 내고 빙어 잡으러 왔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잡으면 꼭 집에 가져가서 먹을 거예요.” 

낚싯줄에 찌를 건 아이들은 추위에 언 손을 불어가며 낚싯대를 던지고 기다렸다. 부산에서 온 김정헌(11)군은 “빙어낚시가 처음이라 재밌다”며 “꼭 빙어를 낚고 말겠다”고 굳은 의지를 보였다.

의림지축제는 2005년부터 8년간 진행됐다. 특히 올해는 행사 시작 전 갑작스레 따듯해진 까닭에 많은 이들이 안전에 대해 걱정했다. 하지만 날씨가 다시 영하권에 머물며 행사는 별 탈 없이 진행됐다. 8명의 안전요원과 응급차가 대기하며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또한 아침마다 얼음 두께를 측정한 결과 8센티미터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즐길거리가 많은 의림지 동계민속 대제전. ⓒ 안형준

 

장현준(42) 운영팀장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며 “오랜 역사와 선조들의 혼을 지닌 의림지에 많은 사람이 놀러 와 좋은 기운을 받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사는 17일부터 20일까지 나흘 동안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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