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부활하는 연탄’의 일생을 따라 가보니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시는 독자를 삶의 안쪽으로 끌어들인다. 쉽게 지나치는 일상을 관찰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한다. 안도현의 시는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을 진심 어린 시선으로 본다. 문학 교과서로 시를 만난 학생도 그런 주제를 머릿속에 새겼을 터이다. 그런데 시를 읽은 학생 가운데 연탄재를 차 본 이가 얼마나 될까? 연탄은 이미 지나간 유행마냥 일상에서 사라져 버린 줄 알았다.

다시 불어오는 싸한 연탄 바람

그런데 사라졌던 싸한 연탄 냄새에, 골목마다 나동그라져 있던 연탄재가 여기저기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기름값이 치솟자 기름보일러를 연탄보일러로 바꾸는 집이 늘었다. 연탄재 더미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김장과 더불어 서민들의 겨울나기 풍경으로 부활한 것이다. 연탄은 어느 곳에서 태어나 겨울이 시린 사람들에게 한나절 남짓 온몸을 불살라 봉사한 뒤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충북 제천에 사는 이윤호(60·송학면 무도1리)씨는 1톤 트럭을 몰고 한 달에 한 번 연탄공장에 간다. 일찍 도착하지 못하면 한나절은 기다려야 하니 새벽에 길을 나선다. 삼십여 분을 달렸을까? 유명 보일러 회사에서 운영하는 공장 옆에 ‘별표연탄공장’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 긴 겨울 가족들과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연탄을 사러 온 이윤호씨. ⓒ 박다영

“여기 20년 단골인데도 늦으면 얄짤없어. 여섯 번째면 양호한 거야. 조금 늑장부렸으면 한나절 꼬박 여기 있어야 돼. 새벽에도 연탄을 갈아 넣어야 하는 게 귀찮지만 우리네들 겨울 나는 데는 연탄만한 게 없지.”

아니나다를까, 이씨가 도착한 7시 이후 1시간 만에 들어온 트럭만 열다섯 대. 두 줄로 늘어서 적재를 기다리는데 긴 줄을 보고 아예 되돌아간 트럭도 다섯 대였다. 이씨는 점심까지 공장 구내에서 해결하며 적재를 기다렸다. 트럭으로 연탄을 옮기는 게 일일이 손이 가는 일이라 한 트럭에 삼사십 분은 걸린다.

공장 한 켠에는 시커먼 무연탄 더미가 신라 왕릉처럼 높다랗게 쌓여있다. 매주 2천여톤의 무연탄이 태백 장성광업소와 삼척 도계광업소에서 서너 차례 기차에 실려 온다.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에는 연탄 750만장을 찍을 수 있는 2만7천여톤은 늘 확보해 두어야 한다. 폭설로 언제든 무연탄 수송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탄 제2전성기···기름 1/3 비용

연탄 수요는 80년대 후반부터 급감했다. 99년까지 계속 줄다 IMF 관리체제가 들어선 이후 수요가 늘어났다. 요즘은 하루 13만5천장을 찍어내니 칠팝십년대 수준이다. 별표연탄 민순홍 전무는 ‘연탄의 제2전성기’라고 말했다.

“경기에 민감한 게 연탄이야. 경제가 어려울수록 연탄이 많이 나가고, 좋을수록 기름이나 전기처럼 편안한 걸 쓰지. 자네들 집에서도 그럴 거 아니겠어. 굳이 가스 냄새 맡아가며 연탄 갈고 그러지 않겠지.”

기름에 견주면 연탄은 비용이 1/3 수준이다. 또 기름보일러보다 연탄보일러를 더 훈훈하게 느끼는 이가 많아 가정은 물론이고 조그만 사무실에서도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는 데가 늘었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아껴야지. 무연탄이 멀쩡히 남아있는데 뭐 한다고 기름 써?”

제천 별표연탄공장 하루 생산량의 60%는 인근지역보다 유난히 추운 제천에서 소비된다. 단양, 영월, 원주에서도 이따금 가지러 온다. 하루 50여 명 정도는 찾아온다고 한다. 이씨 같은 개인구매자는 대개 500~1500장 정도를 사가지만 멀리서 찾아온 배달업자는 한 번에 4~5천장을 가져가기도 한다.

“한창 때는 공장 직영으로 생산·판매·배송까지 했어. 공장 직원만 60명이었으니까. 지금은 인력관리가 복잡해지고 인건비도 올라 직원수를 줄여서...... 12명 남았지. 예전에는 연탄판매소가 시내에 많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필요 없어. 차가 흔해 집집마다 배달하거든.”

연탄은 대체로 가정용으로 쓰인다. 겨울에 가동하는 연탄보일러는 3구3탄, 3구4탄이 대부분인데 한 구멍에 연탄을 3장이나 4장 넣고 동시에 돌리는 방식이다. 세 구멍에 연탄 서너장씩을 넣고 하루에 한 번 갈아주기만 하면 된다.

하루 열 장이면 거뜬한 서민들의 겨울나기

연탄가스 위험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안전한 연탄보일러 개발로 가스 새는 일이 없을뿐더러 난방에만 쓸 뿐이라 연탄만 제대로 빼놓으면 중독 위험은 거의 없다는 말이다.

“예전엔 취사한다고 주방 안에 연탄을 피워놓고 들락날락하다 가스 맡고 그랬어. 연탄 직접 피워서 방 밑으로 연기가 들어가 방 안에 새어 나오고 그랬는데 요새는 보일러 호스를 따라 온수가 지나가니 연기가 샐 위험이 없지. 일부러 자살하려고 하는 것만 아니면.”

막 공장에서 옷을 털고 몸을 녹이러 나온 김영준(65)씨는 다짜고짜 찾아온 외부인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일터를 잠깐 소개해달라는 부탁에 ‘으름장’부터 놓는다.

“무섭고 시끄럽다고 떼써도 못나간다. 내가 하나하나 보여줄 테니 다 적어. 검사할 거다.”

 

▲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1초에 한개꼴로 새카만 연탄이 나온다. ⓒ 박다영

삐걱대는 철제 계단을 밟고 올라가 연탄이 이동하는 벨트 위에 설치된 아슬아슬한 선반을 지나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영화 <피에타>의 한 장면 같다. 영화 속 인물에게 끔찍한 짓을 하는 거대한 무기 형상 기계가 거세게 증기를 내뿜는다. 굵다란 세 팔뚝을 아래위로 움직여대며 탄환마냥 빙빙 도는 연탄틀을 누른다. 벨트에서 넘어온 무연탄을 힘주어 단단한 형태로 찍어내는 것이다. 종종 덜 뭉쳐지거나 연탄구멍이 메워진 불량품은 여지없이 김씨 손에 걸러진다.

괴물이 내는 듯한 소음 속에서 김씨가 잽싸게 움직인다. 어느새 한 손에 기다랗고 단단한 막대를 들고 기계와 싸우려는 듯 다가간다. 탄환 구멍 같은 연탄틀을 긁듯이 때린다. 기계의 동맥경화를 막기 위해 쉴 새 없이 간섭하는 것은 연탄구멍에 끼인 가루를 떼어내기 위한 것이다. 재빠른 손놀림이 아니면 당장 막대기가 날아가거나 김씨가 날아갈 지경이다. 그의 연탄공장 경력은 32년이다.

 

▲ 쉴새없이 돌아가는 연탄기계 소음 속에서도 친절히 연탄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자에게 설명해주는 직원 김영준씨. ⓒ 박다영

“하나 막히면 바로 기계가 서거든. 막대기로 재빨리 안 쳐내면 혼자서 이리 넘어지고 저리 미끄러져. 안 그래도 온몸을 연탄 가루로 발랐는데, 넘어지면 엉망이지. 이 나이 먹어 그러고 있으면 참...”

가끔 나오는 불량품은 탱크로 던져 넣어 다시 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불량품을 계속 지켜보는 일은 시간낭비에 기계 돌리는 비용낭비다. 김씨가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는 이유는 불량품을 줄이려는 것이다.

연탄제조는 정교한 장인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기온에 따라 연탄구멍이 커지거나 구멍을 뚫는 핀이 얇아지는 일이 잦지만 그건 당장에 손 볼 수 없단다. 김씨는 종종 본능적으로 기계를 멈추곤 한다. 뭔가 서걱거리는 느낌이나 기계가 내놓은 탄 모양이 어설퍼 보일 때는 당장 부품을 갈아 끼운다. 

연탄공장 김씨와 연탄의 일생

5분여 기계와 사투를 벌이던 김씨가 마스크를 벗고 차분하게 연탄의 탄생 과정을 들려주었다. 소음과 먼지로 가득한 연탄공장을 찾아온 젊은이들이 그제서야 기특하다는 듯이 30여년 지켜온 자신의 일터를 소개했다.

“연탄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싶으면 눈을 움직이는 속도를 늦춰봐. 잠깐 발을 뒤로 물리고 공장 아래, 위, 옆을 봐.”

무슨 소린가 싶어 시키는 대로 했더니 연탄 탄생과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연탄은 건너편 저탄장에서 기나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와서 체와 분쇄기를 거쳐 일단 저장고에 들어간다. 곱게 정제된 무연탄 가루는 다시 벨트를 타고 연탄틀을 거친 뒤 금방 예쁜 모양의 완성품이 되어 나왔다. 단순하지만 재빠른 공정에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 폭설로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연탄을 트럭에 싣는 상인들의 손길이 더욱 분주했다. ⓒ 박다영

마침 트럭을 몰고 온 이윤호씨가 연탄을 실을 차례. 그는 차를 켄베이어 벨트 끝에 바짝 붙이더니 능숙한 솜씨로 반듯하게 400장을 적재했다. 다시 삼십여분을 달려 자신의 집에 도착한 이씨는 연탄을 내리는 일은 나중에 다른 가족들과 함께 하겠다며 방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예전엔 여기가 부엌방이었어. 연탄보일러 놓고는 연탄방으로 바뀌었지만. 요새 연탄 쓰는 집이 주위에 많이 늘었어. 기름만 쓰는 거하고 연탄 같이 쓰는 거하고 돈 차이가 얼만데. 400장이면 15만원 돈이지. 기름 한 드럼만 떼도 25만원이야.”

연탄불이 풍기는 매력

연탄불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이씨는 옆에 놓인 자루에서 고구마 서너 개를 연탄불 위에 올렸다. 주로 난방용으로 쓰지만 가스불이 모자랄 때는 취사용으로도 제격이다. 특히 굽는 요리에는 연탄의 은근한 불길이 맛을 더한다.

“예전에는 이걸로 다 밥해 먹었어. 연탄 밥 안 먹어 봤으면 사람 구실하기 힘든데… 연탄집게 한번 잡아 본 적 없이 무슨 기사를 쓴다고. 3구3탄이라 말하면 알라나. 아래 3개 깔고 위에 2개씩 더 올리면 모두 9개. 난방용으로 하니까 집 전체를 데우려면 한 번에 세 개를 때야 하는 거야.”

연탄은 구멍을 통해 밑불이라는 외부 화력과 산소를 받아들여 연소된다. 연탄을 바꿀 때 구멍 19개를 벌겋게 달아오른 밑불의 구멍과 제대로 맞춰야 하는 이유다. 구멍이 많아질수록, 밑불이 제대로 구멍 사이로 올라올수록 화력이 세지는 것도 같은 원리다.

▲ 연탄은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진다. ⓒ 박다영

“우리 집이 좀 어려웠거든. 못사는 집은 일부러 구멍을 안 맞췄어. 구멍을 막을수록 탄이 천천히 타거든. 그런 날은 이불 뒤집어써도 벌벌 떨어. 몇 날 그러다 보면 등, 어깨, 허리 아프다고 다들 악을 써.”

밑불과 위쪽 연탄구멍을 제대로 맞추려다 보면 위로 뿜어나오는 가스를 잔뜩 마시게 된다. 이씨는 어릴 적 형제끼리 연탄 가는 당번을 정해 연탄을 갈았던 추억담을 늘어놓았다.

“불 꺼뜨리지 않으려면 자다가 새벽 두세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어릴 때 그게 쉽나. 제대로 구멍을 맞추려면 눈이 매워. 연탄 바로 위에 눈 들이대고 뜨거운 거, 매캐한 거 참아야 하는데 어린 놈이 얼마나 견디겠어. 안 그래도 졸린 눈 빙빙 돌아가지. 숨 참다 가스 마신 적도 많아. 겨우 연탄집게 놓을 때는 약이라도 먹은 것 같았지. 그래도 따스한 방구들에 발 들이밀고 다시 꿈나라로 들어가면 행복했지…”

마침 쓰레기차가 이씨 집 앞 회색빛 연탄재를 실으러 멈춘다. 골목에 쌓인 연탄재는 지금도 몇 남지 않은 동네 개구쟁이들 장난감이다. 얼마나 갖고들 놀았는지 온전한 형태를 갖춘 게 없다. 이씨는 자신도 연탄재를 발로 차고 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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