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대륙’에서 2년간 일하고 온 유네스코 청년활동가들

“아프리카는 우리의 친구가 있는 곳이죠.”

지난 2010년 10월부터 2년간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한국위원회의 ‘아프리카 희망 브릿지’ 사업에 파견됐다 돌아온 18명의 청년활동가들이 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다. 아프리카의 지역사회발전과 풀뿌리 교육 등을 지원하러 떠났지만, 봉사 보다는 친구를 만들고 왔다는 데 더 자부심을 느낀다고 이들은 말했다.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 국가와 국가를 잇는 소통과 화합의 다리’라는 의미의 브릿지(Bridge) 프로그램 1기생인 이들은 최근 ‘네오 브릿지’라는 후속 모임을 만들어 다음 발걸음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

▲ 브릿지 활동가의 최우선 선발 요건은 '문화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이다. ⓒ 김문주

레소토 르완다 등 6개국에서 18명 활동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브릿지 사업단은 2010년 4월 창설된 뒤 첫 프로젝트로 남아프리카공화국, 레소토, 르완다, 말라위, 잠비아,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6개국 18개 마을에 보낼 청년활동가들을 선발했다. 르완다 빌링가가(Biringaga)로 떠난 오지희(31·여·성공회대 대학원)씨는 현지 청년들과 함께 영어교실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소통을 위해 현지어를 배워가며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쉽지 만은 않았지만 그만큼 큰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다. 오씨는 영어교실 운영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현지 주민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양계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양계사업과 영어교실은 지난 2년간 지역 주민의 일자리를 만들면서 충실한 아동교육의 장이 되었다고 한다. 
 
“기존의 중·단기 해외파견활동들이 ‘봉사’의 개념을 중심으로 학교나 병원을 지어주고 식량을 지원하는 구제사업 등에 치우쳤다면 브릿지 사업은 현지 주민들의 자립역량을 길러주는 데 초점이 있어요. 현지 비정부기구(NGO)들, 주민들과 함께 사업을 꾸려나가면서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죠.” 

▲ 오지희 활동가와 마을 아이들. ⓒ 오지희

잠비아의 치시코(Chishiko)에서 활동한 정지은(24·여·대학생)씨도 오씨처럼 ‘자립역량 지원’을 강조했다. 정씨는 현지의 문맹자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교실을 운영했는데 자신이 귀국한 후에도 지역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잘 꾸려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데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레소토의 디피링 말라쩨마(Liphiring Maletsema) 마을로 간 김문주(27·여·자원활동가)씨는 전공인 광고홍보학을 응용해 현지 중학교의 방과후 활동으로 학교신문 만들기 교실을 열었다. 이들이 만든 신문은 레소토의 현지어 세소토와 공용어인 영어로 제작됐는데,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사고나 행사소식을 주로 전했다. 학생들은 취재기자 5명, 사진기자 2명, 편집자 3명, 홍보담당 4명 등으로 역할을 나눠 신나게 참여했다. 신문제작은 축구 외엔 방과 후에 특별히 몰두할 활동이 없었던 아이들에게 활력소가 됐고, 나중에 마을 홍보책자를 만드는 사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 신문을 만들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 지면 시안과 기사를 확인하고 있다. ⓒ 김문주

김씨는 또 교사를 구하지 못해 문을 닫았던 마을의 유치원을 복구하는 데 공을 들였다. 1년의 시간을 들여 마을 안에서 인재를 찾아 큰 도시의 교사양성 프로그램과 연결해 주고, 마을 사람들과 힘을 모아 방치돼 있던 유치원 건물을 보수했다.

“유치원 건물 공사를 하면서 급식 공간을 지었던 것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밥 먹는 문제야 말로 아이들이 빈부 격차로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일이었거든요. 이런 일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건 다 마을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소통이 잘 됐기 때문이죠.”

▲ 브릿지 사업으로 부임하게 된 유치원 선생님과 디피링 마을 아이들이 야외활동을 하고 있다. ⓒ 김문주

금방 결과 나오는 ‘폴라로이드’ 대신 ‘함께 큰 그림 그리기’

브릿지 청년활동가들은 이밖에도 다양한 아프리카 지역에서 마을회관 개보수, 농업교육 프로젝트, 대안생리대 제작, 컴퓨터 교실, 마을 도서관 활성화 등에 현지주민들과 힘을 모았다.  지금까지 여타 국내 기관들이 주도한 해외봉사 활동이 곧바로 결과가 나오는 ‘폴라로이드 사진’과 같았다면, 브릿지 사업은 ‘천천히 그리는 큰 그림’과 같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활동가 한 명이 한 마을에 2년간 정착해 살면서 자율적 사업의 토대를 함께 만드는 것이기에 그 성과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청년들의 해외 파견 활동은 요즘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도전하고 싶어 하는 일이고, 취업을 위해 갖춰야 할 ‘스펙(조건)’으로 꼽히기도 한다.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기업 브랜드를 내걸고 해외 봉사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고, 하나은행과 카페베네처럼 자사 해외 봉사 활동에 참여한 지원자에게 입사 가산점을 주는 회사도 있다. 이렇게 해외봉사활동이 하나의 스펙이 되면서 참가 경쟁도 치열해지고, ‘봉사’의 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2년이라는 긴 시간을 쏟아 어려운 환경 속에서 ‘현지인의 삶’을 살다 온 브릿지 참가자들의 이야기는 돋보이는 측면이 있다.  

▲ 유치원 미술시간에 자기 자신을 그린 그림을 들고 미소 짓는 아이. ⓒ 김문주

“저희는 어려운 사람을 도우러 간 ‘외부인’이 아니라 함께 사는 ‘친구’가 되고 싶었죠.”

예전에 ‘보여주기’ 식의 해외 봉사 활동에 실망한 경험이 있다는 오지희씨는 “그런 의미에서 브릿지 사업은 근본적으로 달랐다”고 설명했다. 기존 해외봉사가 활동가들의 거주공간을 따로 만들거나, 활동은 마을에서 하되 숙식은 도시에서 하는 식으로 외부인을 자처했다면 브릿지에서는 활동가가 마을 주민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오씨는 “2년을 함께 지낸 마을 아주머니가 귀국길에 배웅하며 눈물 흘리던 모습이 떠오른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회고하기도 했다.

▲ 2년간 머물렀던 르완다를 떠나며 가깝게 지냈던 마을주민과 작별 인사를 하는 오지희 활동가. ⓒ 오지희

현지 주민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생활에 불편함도 없지 않았지만 젊은이들은 큰 문제없이  극복했다고 한다. 르완다 은상가(Nsanga)에서 활동한 박준권(32·자원활동가)씨는 정보통신의 불편함이나 낙후된 의료시설 등 애로가 적지 않았지만 다 예상했던 일이라 담담했다고 말했다. 다만 ‘먼 아프리카 땅에 한국인은 나 하나’라는 생각에 외로워질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을마다 조금씩 다른 아프리카 현지어 습득이 모두에게 힘든 도전이었다.

브릿지 프로그램에 참여한 활동가들은 현지 적응을 위해 체계적인 선발과 교육 과정을 거쳤다. 2박3일 합숙을 통한 심층 면접과정에서는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이 없고 타지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뽑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4개 국어를 했던 지원자가 탈락하고 외국어 성적이 썩 뛰어나지 않은 지원자가 뽑힌 경우도 있었던 것은 이런 맥락이다. 브릿지 사업단은 아직 2기 모집계획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후속 활동가를 선발할 경우 ‘20세에서 35세’라는 나이 제한 외에 특별한 조건을 두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언어의 경우도 어느 정도의 외국어 구사는 필요하지만 특별히 높은 공인점수를 요구하지 않고, 현지어 습득의 잠재력을 더 중요하게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 네오 브릿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모인 1기 브릿지 활동가들은 사진전과 정기 모임을 통해 다음 발걸음을 모색하고 있다.왼쪽부터 정지은, 김문주, 오지희 활동가. ⓒ 허정윤

브릿지 1기 참가자들은 지난해 11월 19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안국동의 문화공간 해빛에서 아프리카 사진전을 여는 등 왕성한 후속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중에는 박준권씨처럼 다시 아프리카로 가서 지역 활동을 본격적으로 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청년도 있고 정지은씨처럼 국내 지역활동으로 관심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