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크리스마스 이브에 진행된 ‘솔로대첩’, 행사 진행 미비로 아쉬움 남겨

24일 오후 3시경, 지하철 5호선 여의도 역은 근처 여의도 공원에서 열리는 ‘솔로대첩’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광경에 역내 곳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가 하면 행사 참가 여성들의 드레스 코드인 ‘빨강’으로 옷을 맞춰 입은 여성들도 눈에 띄었다. 지상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탈 수 있을 정도였다.

 ▲ 24일 오후 3시, 여의도공원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 김태준

‘솔로대첩’은 지난 11월 초 한 대학생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광운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유태형(24) 씨가 '님연시(님이 연애를 시작하셨습니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고 “크리스마스에 외로운 솔로들끼리 모이자. 남자는 하얀색, 여자는 빨간색 옷을 입고 여의도 공원에서 만나자”고 제안한 것이 시초다. 이후 한 달 여 만에 참여 의사를 밝힌 사람이 무려 3천 명. 24일 현재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은 2만 8천 명에 이른다.

 ▲ 페이스북 페이지 '님연시'에서 24일 오후 3시에 여의도공원 솔로대첩을 한다고 공지했다. ⓒ '님연시'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행사 기획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관심이 집중되자, 유태형 씨는 행사를 이틀 앞둔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24일 오후 3시 여의도공원에서 '플래시 몹' 형태로 행사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또한 여러 대기업들이 후원을 약속하며 초청공연 등 상업적인 이벤트를 제안했으나, 행사 본연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SNS 가능성 봤으나 행사 진행 산만해

행사가 예정된 24일 오후 3시 여의도공원은 참가자들과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공원이 사람들로 꽉 찼지만 진행하는 사람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플래시 몹’이라는 행사 특성상 마이크를 사용할 수 없어 별다른 순서없이 공원 곳곳에서 자발적이고 산발적으로 진행됐다.

공원 입구에서는 커플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들과 핫팩과 어묵 등을 파는 상인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국방송> ,<OBS> 등 지상파를 비롯해 <채널A>  등 행사를 촬영하러 온 취재진들의 열기도 뜨거웠다. 많은 군중을 하늘에서 효과적으로 찍을 수 있는 항공촬영 카메라 ‘헬리캠’도 등장해 여의도 공원 위를 날아다녔다. 이날 참가 인원은 주최 측 추산 1만명, 경찰 추산 3천명으로 집계됐다.

 ▲ 개그맨 유민상씨가 솔로대첩 사회를 보고 있다. ⓒ 김태준
 ▲ 기자들이 여의도공원에서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 김태준

행사가 시작된 지 40여분 후 공원 한 쪽에서 함성소리가 들렸다. ‘솔로대첩’ 1호 커플의 탄생이었다. 공식 1호 커플이 된 민세홍(20·서울시 용산구) 씨는 이후 단비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참가자에게만 맡겨져 있어 좀 부담스러웠다”고 밝혔다. 30여분 후 다시 만난 민 씨는 처음 커플이 됐던 이지희(가명) 씨가 ‘19살 미성년자’였다며 다른 여성 참가자를 찾고 있었다.

 ▲ 행사 시작 40분 후, 솔로대첩 '1호 커플'이 탄생했다. ⓒ 유성애

민세홍 씨와 함께 참가한 친구 한민규(24) 씨는 “주최 측이 진행을 잘 못하는 것 같다”며 “마이크도 없이 이게 무슨 행사냐. 진행이 아예 안 되고 있다”며 허탈해 했다. 그러면서도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이 놀랍다. 행사 진행은 아쉽지만 SNS의 힘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후 또 다른 커플로 김진영(21) 씨와 고수민(21·여) 씨가 탄생했다. 고 씨에게 먼저 다가가 고백에 성공했다는 김 씨는 "처음 만난 여자 친구라 황홀하고 꿈만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고 씨는 “기분이 얼떨떨하지만 솔로가 된지 2년이 됐는데 이번 크리스마스는 외롭지 않을 것 같다”며 웃었다. 둘은 일단 까페로 갈 예정이라며 자리를 떠났다. 공원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된 탓에 ‘솔로대첩’을 통해 탄생한 커플은 공식적으로 집계되지는 않았다.   

  ▲ 김진영(좌측)씨와 고수민씨는 솔로대첩에서 커플이 됐다. ⓒ 김태준

행사는 ‘플래시몹’ 형태로… 마이크나 확성기 못 써

주최 측에 따르면 행사를 위해 모인 스태프만 무려 230여명. 노란색 옷을 입고 행사를 준비하던 김 모(27)씨는 “마이크나 확성기를 쓰면 ‘집회’가 된다고 해서 쓸 수 없었다”며 “모였다 흩어지는 플래시몹 형태로 하다 보니 참가자들에 대한 통제가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원래 주최 측에서 준비한 ‘지령지’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참가자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스텝은 “4시에 다시 모여 대열을 정비할 예정이다”라고 말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예정대로 진행되지는 못했다.

지령지란 주최 측에서 만든 행사 진행의 일환으로 참여 방법이 적혀 있는 작은 쪽지를 말한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산책하실래요?”를 말하면 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지령지는 공원 입구에서만 배포된데 반해, 참가자들은 공원 후문과 옆문 등 곳곳에서 몰려들어 정작 해당 쪽지를 받고 행사에 참가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참가를 위해 경기도 가평에서 왔다는 김재영(30) 씨는 “대규모 미팅이라고 해서 왔는데 진행이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아 실망이다”라고 말했다.

 ▲ 페이스북 페이지 '님연시'가 솔로들에게 배포한 쪽지에 4가지 지령이 적혀있다. ⓒ 김태준

행사를 기획하고 제안했던 유태형 씨도 공원 뒤쪽에서 만날 수 있었다. 유 씨는 행사 진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행사 운영과 정보 전달 면에서는 실패한 것 같다”고 평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가서 그냥 말하면 된다"며 "벌써 몇 커플 생겼다”고 답했다. 유태형 씨는 오는 25일 방송되는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 ‘최강 오지랖남’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초록색 스머프 임금 복장 등 이색 참가자들도

이색적인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조선시대 임금 복장을 하고 나타난 최한호(21·서울시 용산구) 씨는 “연예인 박지선 씨가 솔로대첩에 온다고 해서 참가했다”고 밝혔다. 최 씨는 “이제껏 8명 정도가 대쉬했지만 박지선 씨를 위해 모두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초록색 옷을 입고 나타난 고범진(32·서울시 동대문구) 씨는 “인터넷에서 보고 구경하러 왔다”며 “기대하고 왔는데 막상 와보니 행사가 정신이 없다. 대충 진행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상하의 모두 초록색 코디를 한 고범진씨는 멀리서도 눈에 띈다. ⓒ 김태준
▲ 개그맨 박지선씨를 만나러 왔다는 최한호씨는 임금 복장을 하고 솔로대첩에 참가했다. ⓒ 김태준

외국인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페이스북을 보고 찾아왔다는 교환학생 장찡찡(23·여·말레이시아) 씨는 “사람들이 많아 재미있다”고 말했다. 함께 온 이아추(21·여·대만) 씨는 “실제로 커플이 돼서 나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파란 눈의 참가자 마이크(MIke·27) 씨와 스캇(Scott) 씨는 “여기 온 사람들이 다들 행복해 보인다. 여기서 실제로 누군가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행사 자체가 흥미롭고 역동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 인터뷰하고 있는 스캇(Scott) 씨. ⓒ 김태준

취재를 온 외국 언론들도 눈에 띄었다. 중국 CCTV에서 취재를 온 기자 주효군 씨는 “중국에는 없는 신기한 행사가 열린다고 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취재진들은 많은 군중들을 촬영하기 위해 국기 게양대와 농구 골대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 중국 CCTV에서 취재를 온 기자 주효군 씨. ⓒ 김태준

마케팅 활용ㆍ등록금 마련 위해 행사 참관

마케팅 부서에 근무하는 정 모(50)씨는 ‘솔로대첩’을 회사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 참관했다. 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호텔에서 일하는 정 씨는 “이런 플래시몹 행사가 하나의 트렌드인 것 같다”며 “트렌드 변화를 잘 캐치하기 위해 행사에 와 봤다. 다만 마이크를 사용해 식전행사나 공연 등을 진행했으면 더 많은 볼거리가 있는 행사가 됐을 텐데, 그런 진행이 전혀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왔다는 대학생들도 만났다. 한국외대에 재학 중인 장한슬(24·여) 씨와 이동건(21·남·김포대 컴퓨터공학) 씨는 공원 입구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 장 씨는 “한 학기 등록금이 380만 원 정도 된다. 등록금을 위해 평소에도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이번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 같아 동생들과 왔다”고 말했다. 애초 계획은 성사된 커플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었으나 “산만한 진행으로 커플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이 씨도 “장사 본전도 못 뽑게 생겼다”며 “행사가 시작된 지 두 시간이 지났는데 사진은 8명밖에 찍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 등록금 마련을 위해 솔로대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들. ⓒ 김태준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솔로대첩’ 행사는 마땅한 시작도 끝도 없이 진행됐다. 사방이 온통 어두워진 저녁 7시 경에도 공원 양 쪽에서 3~40여명이 모여 자발적인 만남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날 행사에 동원된 경찰은 약 400명. 애초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성범죄 발생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원 한 쪽 벤치에서는 20대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가 소주와 맥주병을 잡은 채 “안 생겨요!!”라고 외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 밤 늦은 시간에도 솔로들의 커플 희망은 꺼지지 않았다. ⓒ 김태준
 ▲ 여의도공원에 배치된 한 전경이 '기쁘다 커플오셨네'를 바라보고 있다. ⓒ 김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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