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로그인 회원가입
2020.2.23 일
> 뉴스 > 칼럼 > 단비발언대
     
‘하우스푸어’의 눈물 멈추게 하려면
[단비발언대] 김강민
2012년 12월 03일 (월) 23:05:45 김강민 기자 twins2866@naver.com
   
▲ 김강민 기자

‘짓는다’는 말에선 왠지 따스함이 느껴진다. 우리는 도란도란 한 끼의 행복을 위해 밥을 짓고 사랑하는 가족이 아플 때 약을 짓는다. 함께 살 집을 짓는다는 말은 더욱 뭉클하다. 가족이 몸을 누일 공간, 이웃과 어울려 살 터전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그런 따스함과 뭉클함으로 집을 짓는 대신 ‘재테크’와 ‘대박’을 거론하며 집을 거래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집은 ‘사는(to live) 곳'이 아닌 ’사는(to buy) 것'으로 더 큰 의미를 갖게 됐다. ‘집테크’를 위해 이 아파트, 저 아파트로 이사 다니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자기 집을 가졌지만 주택대출금을 갚느라 연소득의 60%이상을 써야하는 ‘하우스푸어’가 전국에 57만 가구나 된다고 금융위원회가 밝혔다. 장차 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빚을 내 집을 샀지만 글로벌경제위기 이후 값이 떨어지고 팔리지도 않아 옴짝달싹 못하게 된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57만 가구가 대략 3인 가족으로 이뤄져 있다고 보면 최소 170만여 명이 집을 떠받친 채 빚에 허덕이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들이 ‘집 가진 가난뱅이’가 된 것은 일단 스스로의 선택을 탓해야 할 일일 것이다. 자기 수입으로 갚을 수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보지 않고 무리하게 집을 산 것이 화근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만 돌릴 수 있을까. 재개발과 규제완화를 남발하며 부동산 경기부양에 열을 올린 정부와 ‘대출해 줄 테니 집 사라’고 부추긴 금융회사들, 근거 없는 장밋빛 전망으로 부동산 구매충동을 자극한 언론에는 책임이 없을까.

   
ⓒ 송지혜
역대 어느 정부도 '부동산 거품 부풀리기'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하우스푸어의 씨앗도 이미 뿌려져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내려앉는 집값을 떠받치기 위한 부양책을 그야말로 수 십 차례나 연발했다. 경제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른 나라들이 빚을 줄이느라 안간힘을 쓸 때 우리 정부는 낮은 금리와 세금감면, 재건축 규제완화 등으로 ‘빚 얻어 집사기’를 부추겼다. 또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상환능력을 꼼꼼히 따지는 대신 집을 담보로 손쉽게 거액을 빌려주었고, ‘우리 돈을 쓰라’며 대출 세일 공세까지 폈다. 건설사 광고수입 등을 노린 언론사들은 ‘지금이 바닥’이라며 부채질을 했다. 그 결과가 1000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와 수십 만 하우스푸어로 나타난 것이다.

지금 정부는 물론 주요 대선 주자들도 가계부채와 하우스푸어 문제의 해법을 찾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다. 팔리지 않는 주택의 일부 지분을 정부나 은행이 사주는 방안, 아파트 처분 권리를 은행에 넘기고 이자 대신 월세를 내는 ‘트러스트 앤 리스백(신탁 후 임대)’ 등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거론된다. 빚진 이의 이자부담을 줄여주고 단기대출을 장기로 전환하는 방안도 논의된다. 이런 다양한 대안 중 실효성이 있으면서도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들을 잘 검토해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 유라
그러나 이 시점에서 더욱 절실한 것은 ‘집’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 금융, 언론의 ‘부동산부양 삼각 편대’가 집을 투자 혹은 투기의 대상으로, 경기 활성화의 수단으로 바라보면서 얼마나 많은 서민들이 치솟는 전월세 값에 벌벌 떨고 멀어져가는 ‘내 집 마련 꿈’에 좌절하게 됐던가. 땅부자들과 건설대기업들이 엄청난 개발차익을 챙기는 동안 재개발지역의 세입자들은 일터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로, 쪽방으로, 비닐하우스촌으로까지 내몰렸다. 오늘날 ‘하우스푸어’가 된 사람들 중엔 어떻게든 이런 집 없는 설움에서 벗어나 보려 발버둥을 쳤다가 발목이 잡힌 경우도 많다.

정부는 돈을 풀고 부채를 늘려 건설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집은 ‘사고파는 상품’이기에 앞서 ‘사람이 사는 곳’임을 엄중히 여겨야 한다. 주택정책의 목표는 경기활성화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주거공간을 확충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다양한 형태의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고 세입자 보호제도를 촘촘히 하는 등 집 없는 서민도 설움 받지 않게 주거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금융과 언론은 이기적인 동기에서 ‘빚 얻어 집 사기’를 부추기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집 한 칸 마련하려다 은행의 노예가 된 하우스푸어의 비극이 더 이상 반복되어선 안 된다. 국민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며 행복을 지을 수 있는 주거공간을 갖게 해주는 것. 이것을 정부의 책임으로 여기는 정치세력이 다가오는 대선에서 집권해야 한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김강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나누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Follow danbi_news on Twitter

단비뉴스소개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7136)충청북도 제천시 세명로 65(신월동 579)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413호|Tel 043)649-1557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충북 아 00192|등록일 : 2017-11-27|발행인: 이봉수|편집인: 김문환|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문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환
Copyright 2009 단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nbi@danb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