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박정헌 기자

▲ 박정헌 기자
우리가 사는 세계를 규정하는 것은 인간의 불확실한 기억과 그 틈새를 메우는 상상력이다.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는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서 사유란 망각을 경유하기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푸네스는 모든 걸 기억할 수 있는 소년이다. 낙마 사고 뒤 전신이 마비되지만 대신 비상한 기억력을 얻는다. 그가 가진 능력은 정보를 분류하고 열거하는 데 있다. 사소한 정보 하나까지 축적해 ‘빅 데이터’를 만드는 슈퍼컴퓨터처럼 푸네스는 세상을 머릿속에 입력한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물결의 미세한 변화는 물론, 매 순간 다른 모양으로 바뀌는 불길과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모습까지 모조리 머리에 담아둔다.

푸네스는 관찰하는 능력은 있지만 축적된 데이터로 세상을 조망하는 능력이 없다. 비글, 말티즈, 도베르만, 요크셔테리어가 개라는 상위개념으로 묶이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거울을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얼굴과 손 때문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이는 푸네스에게 일반화하는 능력이 없어 벌어지는 일이다. 인간에게는 세상을 추상화하고 일반화하는 능력이 있다. 일반화란 여러 가지 다른 대상들 간에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분류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생각하는 힘’인데, 푸네스에게는 그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가 가진 가공할만한 기억력이 전지전능한 능력이 아닌 까닭이다.

여기서 간단한 명제를 하나 끌어낼 수 있다. 우리는 생각하면서 외울 수 없고, 외우면서 생각할 수 없다. 푸네스에게는 스스로 생각하는 순간조차 암기의 대상이다. 따라서 순수하게 사유하며 생각 그 자체에만 몰두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보통사람이라면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리겠지만 푸네스에게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컴퓨터는 제아무리 복잡한 연산을 순식간에 해내더라도 켜짐(on)과 꺼짐(off)이라는 두 가지 기능만 수행할 뿐이다. 이와 같이 정보를 입력(input)하고 출력(output)하는 일만 끊임없이 반복하는 게 푸네스가 가진 기억력의 요체다. ‘너무 많이’ 아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알기만 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는 이처럼 역사를 사유가 아닌 암기의 영역으로 파악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은 푸네스처럼 단순 연대기적 지식만 나열할 뿐 그 흐름의 맥락까지 파악해 의미를 읽어내지 못한다. ‘인혁당 사건에는 두 개의 판결이 존재한다’거나 ‘정수장학회는 개인소유가 아닌 공익재단’이라는 박근혜 후보의 말은 역사적 맥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노무현 정권의 NLL 포기 발언 등 영토주권 인식이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이어졌다’는 박상은 의원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를 이면합의했다거나 그것을 기록한 녹취록이 있다는 주장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설령 이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는 단순한 선후관계를 필연적 인과관계로 착각하는 ‘인과관계 오류’의 전형이다. 이들에게 역사인식이란 기껏해야 개별적 사안을 시대순에 따라 나열하는 데 그치고 만다.

상식과 비상식, 정의와 불의를 가르는 경계는 다수가 공감하는 일반화를 도출해내는 논리적 사고능력에 달려있다. 역사에 남을 어떤 가치를 내놓는 사람도 단순히 암기능력이 뛰어나 그런 업적을 쌓은 게 아닐 것이다. 사유과정에서 공동체에 필요한 기억과 필요없는 기억을 솎아내는 판단력이 있었기에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박 후보와 박 의원은 역사를 집단적 공유가 아닌 개인적 체험으로 파악한다. 박근혜 후보가 25일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대통령직을 사퇴한다’고 실언한 것에 굳이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다. 다만 오랜 청와대 생활이라는 개인적 체험과 대통령직에 대한 욕망이 실언의 계기였다면 유권자들로서는 어이없는 일이다.

박근혜 후보와 박상은 의원은 잊어도 될 것은 기억한 반면 잊지 말아야 할 진실은 망각했다. 두 정치인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이 받아들일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할 줄만 알았다. 상상할 수 없기에 내다보지 못하고 돌아보기만 하는 것이다. 우물 밖 세상을 알지 못하는 개구리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상상력이라는 씨앗에서 인간성의 싹이 움튼다. 그 후에야 비로소 정의와 윤리라는 줄기가 자랄 수 있다. 우리 공동체는 그런 방식으로 역사를 기록하며 공감의 열매를 맺어왔다.

특별한 기억력을 가진 푸네스는 말한다. ‘나 혼자 가지고 있는 기억이 세계가 생긴 이래 모든 사람이 가졌을 법한 기억보다 많을 거예요.’ 그리고 또 말한다. ‘내 기억력은 마치 쓰레기하치장 같지요.’ 푸네스는 누구보다 많은 기억을 소유했지만 누구와도 그 기억을 나누지 못했다. 나눔 없는 지식은 자신만 사랑하다 결국 파멸하는 나르시스와 다를 바 없다. 자기 자신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그래서 잔인하다. 눈먼 지식과 씨 없는 기억에서 진리와 인간성의 낟알을 골라내는 탈곡기는 바로 상상력일 것이다. 올바르게 기억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올바르게 상상하는 능력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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