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진희정 기자

▲ 진희정 기자
‘정략결혼’을 위한 만남은 쉽게 깨지기 마련인가? 서로 통보만 하지 않았을 뿐 둘은 이미 갈라섰고, 이제 한쪽의 가혹한 버림만 남았다며 어떤 이는 토사구팽을 떠올린다. 이별의 주인공은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후보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다. 16일 박 후보가 김 위원장을 배제하고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한 것은 박 후보의 변심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경제민주화’로 주선된 만남이었지만 둘은 애초부터 동상이몽이었다. 여자의 변심은 본래 취향을 버리고 유행 따라 남자를 골랐을 때 예상됐던 일이다. ‘총수일가’와 ‘기업’도 구분 못하고 혼동하는 판에 경제민주화를 말하는 남자의 구애가 통할 리 없다.

둘의 갈등은 재벌의 기형적 지배체제인 순환출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불거졌다. 남자는 새것뿐 아니라 낡은 것도 손봐야 한다고 했지만, 여자는 예전 것까지 고치려면 큰돈이 들어간다며 반대했다. 그 돈은 적게는 1%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총수일가’가 감당해야 할 몫인데도, 오지랖 넓은 여자에게는 안 될 일이었다. 문제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총수일가에 불공정하게 몰아주는 의결권을 원상회복하겠다는 것인데도 ‘투자 위축’ 운운하며 재벌을 껴안았다.

여자의 변심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사람들이 ‘경제성장’ ‘일자리’ ‘복지’ ‘경제민주화’ 순서로 관심을 표명해 경제민주화의 순위가 뒤로 밀린 것이다. ‘산토끼’는 잡지 못했지만 사냥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사냥개도 삶아먹을 수밖에. 남자와 이별한 뒤 여자는 ‘경제민주화’라는 화장을 지우고 ‘경제성장’이라는 맨 얼굴을 드러냈다. 그리고 재벌, 영남, 보수로 대표되는 ‘집토끼’ 챙기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별은 대개 후회를 동반하는 법. 사람들이 우선으로 꼽은 ‘경제성장’의 열망이 과연 가난해지는 가계 대신 기업의 수익만 극대화하는 것이던가? 국가를 부도 직전으로 몰아간 외환위기 주범들이 막대한 공적자금으로 회생한 대신, 99% 국민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삶에 더욱 시름한다. 각종 규제는 풀리고 법인세는 낮아졌지만, 생계형 가계부채는 급증했다. 

‘경제민주화’와 이별한 그녀에게 묻는다. 국민들이 첫손에 꼽은 경제성장이 경제민주화와 결이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국민이 성장을 원한다 하더라도 이제 그 내용이 중요하다. 국민이 성장의 과실을 독점하는 재벌을 계속 두둔하려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성장의 주체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분산되고, 그 과실이 기업과 가계로 적절히 분배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걸 희망하는 이들에게 남겨진 수단은 단 하나. 그런 정책을 밀고 나갈 후보에게 12월 19일 표를 던지는 일 말고 무엇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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