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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용감한 녀석들’ 세계와 놀다
학생 주최 국제회의 8년째 성공리 개최한 ‘ICISTS-KAIST'
2012년 11월 11일 (일) 23:08:58 임종헌 기자 mydreampaper@gmail.com

매년 8월 대전광역시 유성구의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캠퍼스에서는 교수와 학생 등 수백 명이 참가하는 국제회의가 열린다. 닷새 동안 이어지는 국내외 석학들의 강연을 세계 각국에서 온 대학생들이 진지하게 듣고, 쉬는 시간에는 학생과 연사들이 곳곳에서 무리지어 토론을 벌인다. 모든 과정이 영어로 진행되는 이 행사가 여느 국제회의와 다른 점은 기획부터 진행까지 대학생들이 도맡아 한다는 것이다. 주제 선정부터 연사 섭외, 기업 협찬, 홍보 등 모든 과정을 맡아 8년째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이들은 카이스트 교내 동아리 ‘아이시스츠-카이스트(ICISTS-KAIST)'의 회원들이다.

   
▲ 지난 8월에 열린 'ICISTS-KAIST 2012' 참가자 단체사진. ⓒ ICISTS 조직위원회

하버드 행사 본떠 시작…‘눈높이 기획’으로 성장

카이스트 학생들은 대체로 외부와 활발한 교류 없이 전공분야에만 매진하는 ‘공부벌레들’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지난 2004년 무렵 연지연(전기전자공학), 김경현(화학·고분자), 김원영(전기전자공학)씨 등 카이스트 학생 5명은 다른 세계와의 교류를 통해 이런 평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미국 하버드대학 학생들이 주관해서 매년 아시아의 다양한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세계 최대의 학생행사 ‘에이치페어(HPAIR·하버드학생포럼)’에 주목했다. 하버드가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까?

서범석 초대회장을 주축으로 모임을 만들고, ‘서로 다른 분야를 전공한 학생들이 뭉쳐 과학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장을 만들어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미래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행사를 기획해서 한승수 전 유엔(UN)대사, 이종욱 국제보건기구(WHO) 사무총장 등을 초청했다. 학교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성사시켜보자며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경험 없이 의욕만 앞선 상태에서 일은 생각만큼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대기업 등을 상대로 후원을 얻으러 다니면서도 소개서, 제안서 같은 양식조차 없이 말 그대로 ‘뛰어다니기’만 했기 때문이다. 행사 홍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2005년 첫 해 참가 신청자는 40여 명에 불과했다.

초라했던 첫 행사에 좌절하지 않고 2006년 두 번째 행사를 준비했는데, 하버드대측이 ‘HPAIR'라는 고유행사명을 사용할 수 없다고 제동을 걸었다. 고심 끝에 ‘과학기술과 사회의 융합을 위한 국제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for the Integration of Science and Technology into Society)’라는 뜻의 'ICISTS'에 학교 이름을 합친 ’ICISTS-KAIST‘란 이름을 짓고 새출발을 다짐했다. 

첫 행사 준비의 부족함을 되짚어보면서 회의 주제와 구성을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췄다. 일반적인 국제회의는 연사들의 강연 위주로 일정이 채워지지만 아이시스츠는 질의답변과 휴식시간을 넉넉히 잡아 연사와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참가자들 간에도 활발한 교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소규모 그룹이 모여 주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팀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 ICISTS-KAIST 참가자들이 팀 프로젝트를 위해 토의하고 있다. ⓒ 임종헌

꾸준한 노력이 갈수록 성과를 거두었다. 첫 해 40여 명이었던 참가자가 매년 늘어나 지난 8월의 2012년 행사 때는 423명이나 모였다. ‘내용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진 덕분에 해가 갈수록 해외 연사 섭외도 쉬워졌다. 배우 출신으로 순수예술과 기술을 접목시킨 연구로 주목받는 돈 마리넬리 카네기멜론대 엔터테인먼트기술센터(ETC) 프로듀스장, 전 애플 부사장이자 세계적인 디자인컨설팅 기업 닐슨 노먼 그룹의 공동 창업자인 도널드 노먼 등이 기꺼이 강연을 맡아주었다. 기업들의 협찬도 활기를 띠었다. 행사에 참가했다가 감명을 받고 동아리에 들어오는 카이스트 학생들도 많아졌다. 첫 해 5명으로 출발한 아이시스츠지만 올해 행사는 회원 36명과 자원봉사자 50명이 함께 진행했다. 2012년 조직위원장 최지수(22·수리과학3)씨는 입학 전부터 아이시스츠 활동을 희망한 경우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카이스트에서 아이시스츠 활동에 매진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동경했어요. 혹시 카이스트에 입학하게 된다면 꼭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죠.”

1주일 행사 위해 1년 쏟아 붓지만 얻는 게 더 많아

아이시스츠 회원들은 본회의 닷새를 포함해 1주일간 진행되는 행사를 위해 1년을 준비한다. 다양한 책과 언론보도 등을 참고하고 토론을 통해 주제를 정하는 데에만 6개월 정도가 걸린다.  ‘변화 : IT혁명이 초래한 인류의 미래’(2011), ‘과학과 기술을 통한 미래 디자인’(2010) 같은 주제들이 이렇게 결정됐다. 주제 선정과 신입 동아리회원 모집이 끝나는 4월부터는 행사 준비를 위해 거의 매일 모임을 갖는다. 카이스트 강의는 학점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한데, 이들 역시 수업을 병행해야 하니 잠이 부족하기 일쑤이고, 기숙사에 머무는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집에 가기도 힘들다.

   
▲ 'ICISTS-KAIST 2012' 조직위원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양정은(항공우주공학 2), 최기용(전기 및 전자공학 3), 최지수 조직위원장(수리과학 3), 김성은(화학 2), 유원상(화학 3), 김진은 홍보부장(생명과학 3). ⓒ 임종헌

동아리 활동에 1년을 고스란히 바치는 이들을 보면서 주변에서는 ‘얻는 게 뭐냐’는 질문들을 많이 한단다. 김진은(21·생명과학3)씨는 “친구들은 시험공부 하는데, 나는 뭘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그러나 유원상(21·화학3)씨는 동아리 회원들 모두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과학고 나와서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간 뒤 연구원이 되어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공부 외에 내가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나의 새로운 모습은 없을지 알아보고 싶었어요.”

최기용(21·전기공학3)씨도 “이왕이면 사람들과 모여서 무언가 만들어내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며 “행사를 준비하고, 특히 전공과는 별 상관없는 홍보 업무 등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게 즐거웠다”고 말했다.

‘융합의 시대’라는 주제로 열린 ‘아이시스츠-카이스트 2012’ 회의에는 전체 참가자 423명 중 해외 대학생이 미국, 중국, 인도 등 15개국 127명이었다. 이들은 참가비 100달러와 숙박비를 개별 부담했다. 행사 기간 중 카이스트 동아리들은 사물놀이, 댄스 공연 등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 또 대전지역 중고등학생들과 시민들을 초청한 외부 공개행사도 열렸다. 이들은 아이시스츠 참가자들과 함께 여운승(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가 이끄는 모바일폰 오케스트라 ‘캄포(KAMPO)’의 연주와 레스토랑 ‘엘본 더 테이블’의 최현석 총괄셰프가 시연하는 분자요리(액체소스를 고체, 혹은 기체로 변화시켜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것)를 감상했다.

   
▲ 대전지역 중고등학생 및 시민들도 초청한 외부 공개행사. 모바일폰 오케스트라 '캄포(KAMPO)'(위), 분자요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최현석 '엘본 더 테이블' 총괄쉐프(왼쪽 아래), 최 쉐프가 만든 분자요리들(오른쪽 아래). ⓒ ICISTS 조직위원회

“도전,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행사 참가자들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국제회의를 열었다는 데 일단 감탄했다. 나지훈(한양대 컴퓨터공학1)씨는 “지하철 광고를 보고 참여하게 됐는데, 학생들이 이 정도로 준비했다니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김민수(한국외대 경영2)씨는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어서 (다음 회의에) 또 오고 싶다”고 말했다. 홍콩에서 온 켄(홍콩이공대 호텔관광)씨는 “전공과 다른 분야의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 정말 즐거웠다”며 비슷한 행사를 기획해보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사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줄리아 멜커스 조지아공대 공공정책학과 부교수는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회의들을 많이 참가해봤지만, 학생들이 모든 걸 진행하는 회의는 처음이었다”며 호평했다. 기상천외한 실험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의 인기 과학 프로그램 <미스버스터>의 데니스 권 피디(PD)도 “열정적인 학생들 덕택에 인상 깊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며 “기회가 된다면 또 오고 싶다”고 말했다.

   
▲ 'ICISTS-KAIST 2012' 참가자들이 카쿠바야시 모토쿠 국제과학미디어센터(ISMC) 미디어 담당관의 강연을 듣고 있다. ⓒ ICISTS 조직위원회

   
▲ 'ICISTS-KAIST 2012' 참가자들이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김도연 위원장의 개회사를 듣고 있다. ⓒ ICISTS 조직위원회

1년에 걸쳐 준비한 행사가 끝난 뒤, 아이시스츠는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일부 회원은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동아리를 떠났고, 일부는 일찌감치 내년 행사 준비를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과학기술과의 소통으로 다음 세대를 열어갑니다’라는 주제로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의 초청 강연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동아리를 이끌고 있는 최지수씨는 두려움을 버리고 새로운 일에 도전했을 때 확실히 얻는 것이 있다는 점을 다른 학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도 한 때 ‘공부만 하다 졸업하겠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시스츠 활동을 통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진로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더 나아가 많은 활동과 경험을 했습니다. (더 나은 학점 등) 잃은 것도 물론 있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걸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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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203.XXX.XXX.251)
2012-11-12 22:21:12
대학 생활 알차게 보냈다고 나름 자부하는데 이분들도 장난 아니구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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