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장승구 세명대 교수
주제① 경세의 바이블, <관자>

중국인의 실리추구 성향은 <관자>에 뿌리

"대통령 선거는 성직자가 아니라 리더를 뽑는 것입니다. 유교문화의 영향이 강한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대통령을 바라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리더는 유연하고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는 게 관자의 생각입니다."

장승구 세명대 교수(교양학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분해 군자 스타일의 대통령으로 뽑으려는 것은 유교적 유산"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자와 맹자 중심의 유교사상을 넘어 동양사상에 대한 공평하고 객관적인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대표적 유교국가인 중국도 실리적이고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민족이고 유교는 중국인들 사상의 일부분일 뿐"이라며 "중국을 이해하려면 관자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자의 외교정책은 '주는 것이 곧 취하는 것이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약소국을 경제적, 외교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제(齊)나라의 동맹국이나 사실상 속국으로 만드는 전략이죠. 최근 중국이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하고 아프리카 국가를 돕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이처럼 중국인들 사고방식의 배경을 아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 중국을 알기 위해선 실리 추구 사상인 관자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 손지은

장 교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에서 "언론인이 되어서도 중국과 일본의 사상과 문화의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운을 떼며 강의를 시작했다.<관자>는 유가·법가·도가 등 제자백가의 사상을 포괄적으로 다뤄 '잡가'라고 불리는 고전이자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인 관중에 대한 기록이다.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가장 먼저 춘추오패로 만든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상으로 꼽힌다. 삼국시대 제갈공명이 동경했을 뿐 아니라 공자가 어질다고 말할 정도로 관중은 춘추시대 성공한 정치가로 평가받는다.

장 교수는 "논어나 맹자와 달리 관자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실제적 문제인 군사, 외교, 정치, 경제 등 다양한 국가경영지침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생의 안정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마련해 부국강병을 꾀하는 관자의 선견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류성룡과 정약용이 주목했던 <관자>

<관자>는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장 교수는 "창덕궁 왕실 서재인 규장각에 있는 주합루(宙合樓)는 천지 만물의 조화 법칙을 설명하는 <관자> 주합편에서 따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규장각에서 책을 보며 우주만물의 모든 것을 사색하고 공부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다산 정약용의 저서 <목민심서>도 <관자> 목민편에서 나왔다. 하지만 유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조선에서 관자는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장 교수는 "실용을 중요시한 서애 류성룡과 다산 정약용 정도가 관자의 중요성에 주목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 <관자>의 주합편에서 따온 창덕궁 왕실 서재 '주합루'를 소개하는 장 교수 ⓒ 손지은

40년간 제나라 재상으로 지낸 관중은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관포지교는 관중과 포숙의 돈독한 우정에서 유래된 말이다. 제나라 환공이 정권을 잡은 뒤 포숙은 재상 자리를 보장받았지만 도리어 관중을 재상으로 추천했다. 당시 포숙은 '제나라 하나만 다스리려면 나 하나로 충분하지만 천하를 호령하는 패주가 되려면 관중 없이 안 된다'며 환공을 설득했다.

▲ 관중(管仲:?~BC 645)의 초상화
"관중은 어릴 적 직접 장사를 해본 '상인' 출신 정치가입니다. 상업의 중요성을 깨달은 경험으로 국정을 운영했죠. 관자 목민편 첫 부분에도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면 예절을 알고, 의식이 갖추어지면 영욕을 안다'는 말이 나옵니다. 입고 먹는 것이 우선적으로 안정이 돼야 한다는 의미죠. 이처럼 관자는 정치의 기본이 경제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관자는 농업과 상업은 물론 광업과 수공업의 발전이 부국강병의 길이라 믿었다. 특히 상업이 상대적으로 천시받던 풍토에서 벗어나 상인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감세정책을 폈다. 또 농민은 농민끼리, 상인은 상인끼리 모여 살도록 했다. 서로 노하우를 배우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토지의 상태나 풍·흉년을 고려해 토지세를 걷기도 했다.

노인·아동복지까지 고려했던 ‘정책의 달인’

관자는 경중술을 통해 정부가 물가를 조절하도록 했다. 경중술은 관자가 시행한 물가조절정책으로 정부가 화폐와 곡물을 통제해 물가를 안정시키고 국가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도록 한 것이다. 일부 상인들의 이윤독점을 예방하고 중산층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경제 안정과 균형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한 셈이다. 장 교수는 "다산 정약용이 쓴 <경세유표>도 관자의 경제사상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자는 세부적인 복지정책도 만들었다. 70세 이상 노인에게 먹을 것을 주고, 아이를 많이 낳는 가정에는 세금면제와 보모를 붙여주는 혜택을 주었다. 장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현대에 와서야 복지개념이 생겼다고 알고 있지만 이천년 전부터 세부적인 복지정책이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 장승구 교수는 한국 최초로 <관자> 완역본(공동집필)을 발간했다.

관자는 경제뿐 아니라 인재관리도 중시했다.

"일년지계 막여수곡(一年之計, 莫如樹穀) 십년지계 막여수목(十年之計, 莫如樹木) 백년지계 막여수인(百年之計, 莫如樹人)이라는 말이 <관자>에 있습니다. 일년 간의 단기 투자로는 곡식 심는 것이 최고 이익이고, 십년간 중기 투자로는 나무 심는 것이 최고 이익이고, 백년을 내다보는 장기 투자로는 인재를 기르는 것이 최고라는 뜻입니다. 제나라가 천하를 뒤흔든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인재를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덕'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유교와 달리 관자는 '덕'과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 인재등용책은 삼선제(三選制)다. 먼저 고을의 관리로부터 천거를 받아 인재를 뽑은 뒤, 소속 기관장이 1년간 실무능력을 검증해 보고하고, 최종적으로 군주의 면접을 거쳐 관직을 수여하는 제도다.

국가 지도자는 선악개념보다 포용력 커야

<관자> 패언편에 나오는 ‘천하를 얻고자 하는 자는 먼저 사람을 얻으라’는 말처럼 능력 있는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국외로 ‘헤드헌터’를 파견하기도 했다. 장 교수는 “당시 인재 양성 방법은 2500년 전이 아니라 지금이라 해도 믿을 만큼 뛰어난 정책”이라고 평가한다. 인재 관리에서 덕이 지위에 맞는지, 업적이 녹봉에 맞는지, 능력이 업무에 맞는지를 항상 고려했다. 등용된 관리들에게는 엄격한 상과 벌도 뒤따랐다. 매년 업적평가를 해 우수한 관리를 승진시켰고 열등한 자는 강등시켰다. 

▲ '어떤 자질을 갖춘 국가 지도자가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 손지은
 
임종을 앞둔 관중은 과거 포숙이 환공에게 자신을 재상으로 천거했던 것과 달리 포숙을 재상으로 추천하지 않았다고 한다.

"관자는 군자처럼 선과 악에 대한 관념이 분명한 포숙은 국가경영의 총책임자로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 평가했습니다. 재상이 되려면 포용력이 있어야 하는데 군자적인 태도는 모든 것을 포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지도자는 전체 시스템을 다루고 공동체의 이익을 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게 관자의 시각입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II>는 이주헌, 이권우, 한홍구, 장승구, 김진석, 신형철, 정희준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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