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읽어주는 남자] 연애기술에 대한 고찰

얼마 전 교회에서 콩트를 준비한 적이 있다. KBS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 멘붕스쿨의 포맷에 따라 대본을 만들었는데, 내가 해야 했어야 했던 역은 심히 부담스러운 '납득이'역할이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주인공 친구에게 말도 안되는 연애기술을 온 몸으로 표현해준 '납득이'캐릭터를 벤치마킹한 패러디 캐릭터. 나름대로 캐릭터 연구를 한다고 방송 전편을 찾아봤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연애(또는 사랑)에 자신만만한 납득이는 정말 연애 고수일까?

 
#1. 연애 못하면 열등하다?

사랑의 시대다. 사랑하면 우대까지 받는다.(솔로들에게는 심사가 뒤틀리는 일이다) 더구나 20대 중반부터 시작되는 폭풍 경쟁시스템에 고립되는 인간성, 낙엽처럼 떨어지는 자존감은 모태와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다시금 갈구하게 한다. 사춘기 시절 무르익었던 이성에 대한 감각이 20대에 들어와 완성되면서 하나 둘 연애 전선에 투입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연애'는 사랑의 표상이다. ‘사랑받고 있다, 사랑하고 있다’라는 증거다. 그 말은 즉, 온 세상에서 자신만의 유일한 서포터즈가 되어주고, 광적인 팬이 되어주며, 때론 엄마, 아빠가 되기도 하고, 미래의 아내, 남편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 엄청난 혜택이 있는 연애에 목매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보통의 젊은이라면 그렇게 자신만의 연애를 꿈꾼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연애에 목매달지만 정작 목이 마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연애 불능자'. 연애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모태솔로나 장기솔로는 은근히 우리 주변에 많다. 그런데 이 '연애 못함' 기운이 숙성되다 보면 아주 재밌는 현상이 나타난다. 세상이 이들을 대하는 방식 말이다. 세상은 이들에게 말한다.

어리숙하고, 모르고, 그래서 계몽해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이 가장 보편적이면서 고질적인 현상은 주변 인물들로부터 시작된다. 분명히 '상담'형식을 빌려 고민을 토로하지만, '훈계'로 끝난다. 대화가 끝난 후에는 피상담자는 어딘가 부족하고 열등하며 남들 다하는데 자신 혼자 못하는 뭔가가 이상한 인간이 되어있다.

A: 나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맞아?
B: 이 바보야. 말이 되냐. 그게 아니라 이렇게 해야지.
A: 이렇게? 어떻게 그러냐.
B: 야, 그러니까 니가 그러니까 평생 모솔인거야.

이렇듯 연애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구박이 시작된다. 그러면 한껏 주눅이 든 채 친구가 전해주는 개똥 연애철학을 듣고 있다. 그래도 나름대로 이런 상황에는 이런 행동을, 저런 상황엔 이런 멘트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준다. 한껏 안타까워하는 얼굴하고서 열변을 토해낸다. 그 얼굴 앞에서 피상담자는 '그래, 내가 연애는 못하지만 지금 이 친구 이야기를 들었으니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다.

자, 우리 주변에는 이런 '납득이들‘이 있다.(가끔은 자신이 납득이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납득이,  수상하지 않은가?

 
#2. 연애기술학 배웠습니까?

‘납득이, 자네 정체가 뭔가?’ 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친구 돕는 존재죠 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도움이 될까? 어줍잖은 연애 기술로? '친구'라는 존재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분명 자신도 좋은 의도로 친구의 안타까운 현실을 개선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그런데 난 이런 기술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원래 내 것이 아닌 외부 지식을 순간적으로 배운 기술 말이다. 그리고 그 기술의 출처도 의심스럽다. 납득이 친구가 말하는 흔히 '연애할 수 있는 법'이 어디서 왔는지 말이다. 보나 마나 100% 자기 경험담이다. 납득이 친구가 당당하게 '연애비법'을 강의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이유는 그가 '솔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자신이 겪었던 솔로탈출법을 연애할 수 있는 법으로 탈바꿈해 꾸민다. 분명히 하자.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적인 기술이며, 본인에게 최적화된 기술이란 걸.

문제의 납득이 캐릭터가 나온 '건축학개론'을 다시 보자. 재훈과 수지는 결국 이뤄지지 않는다. 관객들은 지나간 첫사랑과 잊었던 아픔까지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관객이 말했다.

"남자 주인공이 너무 답답했다. 고백 한 번만 했다면"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남자 주인공은 아무 문제 없었다. 그 나이에, 그 수준에 적절한 순서를 무리 없이 걷고 있었다. 문제는 납득이다. 풍기는 면모로 봤을 때는 '연애 고수'라고 할 수 있는 납득이의 충고, 그게 문제였다. 주인공은 고민이 생기면 바로 납득이에게 달려와 보고했다. 헤쳐나갈 방도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주인공에게(이 주인공은 정말 백지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납득이는 나름의 이정표를 세워준다.

그리고 동시에 현재 뭔가 잘 못하고 있다는 인식과 혼자서는 절대 일어설 수 없는 수동성도 안겨줬다.

오랫동안 연애를 해보지 못한 사람이 흔히 겪는 함정이 바로 여기서 일어난다. 세상이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자신을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평가가 낮다고 생각되면 자신이 생각하기에 평가가 높은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싶어진다. 어떻게 하면 연애를 할 수 있을까요?

납득이가 세워준 이정표대로 ‘난 모르기 때문에 알아야지’ 하면서, 그리고 쥐어진 한 권의 연애기술학.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 이성에게 멋지게 대시하는 법. 바야흐로 21세기형 연애비법들. 서점에는 한 코너가 아예 연예 관련 서적들이다. 모두 연애 고수의 탈을 쓴 납득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책 하나를 들어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뜨끔 하는 게 한둘이 아니다. 아, 이래서 내가 솔로구나. 라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웃긴 건 거기에 쓰여 있는 남녀 심리나 매너 등은 지금 잘 사귀고 있는 커플들도 대부분 모른다. 그들은 배워서 사귀는 게 아니다. 납득이도 물론 마찬가지다.

납득이의 지시, 충고와 글로 배운 지식으로 연애하려다 패가망신한다. 모태솔로가 평생 솔로 된다. 자, 그럼 또 물을 것이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난 대답하겠다.

 
#3.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이 것이 기본이다. 모든 것의 기본이다. 납득이가 실패한 건 '넌 어딘가 부족하고 못났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에서부터 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연애하는데 부족하고 못난 사람, 하나 없다. 모두 연애할, 사랑할 자격 있는 사람이다.

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것을. 과연 나는 사랑받을 존재 가치가 있는 걸까, 라는 물음이 떠오르기도 한다는 걸. (이 과정에서 외부의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솔로를 탈출할 유일한 비법은 이 떨어지는 자존감을 잡아 키우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자신에게 당당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이성에게도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중요한 건 말 그대로 나를 사랑하기 시작해, 남을 사랑하는 과정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자신 안의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야 만이 흘러나와 남에게 줄 수 있기 마련이다.

이건 연애비법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종교적인 방향이라고 할까. 연애하는 법이 아니라 사랑하는 방법이다. 세상에 수많이 널린 납득이와 연애비법서와 이 글이 다른 점이다. 상대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연구하기 전에 내 안의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지금 자신의 이상형을 믿는가? 자신하건대 100% 틀렸다. 내가 누군지, 내 안의 모든 것을 낱낱이 깨달은 뒤에야 자신에게 이상적인 짝을 만날 수 있다. 현재 자신이 꿈꾸는 이상형은 단지 세상이 만든 신기루일 뿐이다.

자, 오늘부터 따라 해보자. 한껏 이나 떨어진 자존감을 조금씩 회복시키고 외부로 흘러나오게 하는 행동학적인 방법이다. 아침저녁으로 화장실에 모두 갈 것이다. 그때 거울을 보고 하면 된다.

1.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2. 나를 향해 웃어준다. 아무 말 없이 30초 이상 바라본다.
3. 그리고 말한다. "사랑한다." 10번을 반복해 말한다.

 
#. 나가며

예전에 KBS 스폰지 작가에게 연락이 온 적이 있다. 연애 고수들을 출연시키는 프로그램을 기획 중인데 출연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블로그에 썼던 연애 관련 글을 보고 연락한 듯했다. 그때 난 알게 됐다. 지식과 연애는 아무 상관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 내가 연애 고수가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애 고수 따윈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연애는 머리나 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연애는 사랑이다. 사랑을 어떻게 배워서 하겠는가. 잘하고 못함도 없다. 그 마음 귀한 것 누구나 알고 있으니 그저 사랑, 소중히 품고 나아가면 된다. 짝은 분명히 나타난다.

그리고 납득이에게는 이제 말로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지 말고 좋은 이성 친구 있으면 소개나 해달라고 하자.

그게 낫다.

필자: 아스트랄. 연예연애블로그(http://www.cyworld.com/badboy132) 운영 중이며 이제까지 실컷 납득이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본인은 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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