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10만 유기동물, 절반이 안락사•자연사

‘송송이’의 소원, ‘죽기 전에 날 데려가 주세요’

내 이름은 송송이(4․암컷․슈나우저 믹스견). 나는 아기 코끼리 ‘덤보’를 닮은 큰 귀와 하얀 털을 가졌다. 지난 해 8월까지 다른 이름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이름도 주인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과거의 흔적은 당시 입고 있던 빨간 옷과 작은 목줄이 전부다. 지나가는 차에 치일까 노심초사하며 경기 포천시 죽엽산 터널을 걸었던 게 거리 생활의 마지막이다. 누군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나는 피부병에 걸려 등쪽 피부가 일부 벗겨진 상태였다. 

 

▲ 지난해 8월, 송송이 발견 당시 사진. ⓒ 동물사랑실천협회

생명의 은인은 경기도 포천시 동물사랑실천협회(CARE) 동물보호소에 나를 맡겼다. 보호소에서 치료받고 1년 남짓 오매불망 주인을 기다렸다. 버림받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보호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먼저 꼬리를 흔들며 다가갔다. 사람들이 내 주인을 찾으려고 여러 보호소와 경찰에 연락했지만 소식은 없었다. 지난달 29일 새 주인을 만나기 위해 구호동물 입양전문센터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이곳에 온 지 한 달 남짓, 함께 지내던 다른 친구들은 벌써 새 가족을 만났지만 나는 남겨졌다.
 
하루 중 우리(케이지)를 벗어나는 유일한 때는 산책하는 시간이다. 함께 걷는 이와 연신 눈을 맞추며 길을 걸을 때는 정말 행복하다. 사람이 들어오면서 출입문에 달린 종이 울리면 나도 모르게 흥분해 우리의 유리를 긁어댄다. 앞발을 번쩍 들어 있는 힘껏 문을 치거나 때론 짖기도 한다. 모두 자원봉사자들을 향한 외침이다. '나 여기 있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내 말이 들렸는지 아님 내 표정이 애처로웠는지 한 자원봉사자(김수진•26•여)가 “송송이와 산책하겠다”고 말했다. 갑갑한 케이지에서 벗어난 기쁨에 앞발을 들고 애교를 부렸다. 연두색 목줄을 매고 거리로 나섰다. 이 목줄은 나와 산책하는 사람을 잇는 생명줄이다. 옛 주인과 헤어진 것도 이 목줄을 놓친 탓이다. 하루 만이지만 일주일 만에 쐬는 듯한 바깥 공기다. 가로수 밑 작은 풀 더미에 자주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이제야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자칫 잘못해 터널에서 차에 치였다면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 수진씨와 산책을 나선 송송이. ⓒ 박다영
▲ 주인과 헤어진 뒤 송송이는 언제나 사람의 손길과 따뜻한 품을 그리워한다. ⓒ 박다영

 남산공원은 언제나 반갑다. 무거운 날 번쩍 안아 주고 시원한 물을 준 자원봉사자를 위해 재롱도 보여줬다. “송송이, 손”이라는 말에 앞발을 턱 하니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렸고, “앉아, 누워”라는 말에도 순종했다. 내친 김에 배도 드러냈다. 개들이 배를 보이는 건 ‘복종’의 의미다. 배를 쓰다듬어주는 이 사람이 새 주인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담았다.

남산공원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더 많다. 한 할머니는 “강쉐이 귀엽네, 이리와 봐”라고 관심을 보이며 손을 내밀었지만, 할아버지들은 대개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들 앞을 지나갈 때면 코를 땅에 박게 된다. 오늘도 역시나 한 할아버지가 공원 한 쪽에서 오줌 누는 내게 고함쳤다. 
 
“무슨 개새끼가 공원에 오냐? 오줌, 똥도 아무 데나 누고! 개들이 오니깐 공원 공기도 안 좋아지고 개털이나 날리고. 저번에 대통령 나온다던 김문수도 여기서 개 데리고 산책하더니. 나라 꼴이 어떻게 되는 건지!”

처음 듣는 말이 아닌데도 상처로 다가왔다. 아직도 나 같은 동물은 인간과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저 집을 지키거나 보신용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우리를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해줄 순 없을까? 나는 이 세상에서 불필요한 존재일까? 그래서 난 버림받았을까?

1시간 남짓 짧은 산책을 끝내고 센터로 돌아가는 길. 산책 갈때는 신이 나 이리저리 날뛰었는데 지금은 발걸음이 무겁다. 길바닥에 주저앉고 싶지만 혹시나 그런 내가 미워 공원에 버리고 갈까 봐 억지로 발을 뗐다. 센터에 도착한 나는 익숙하게 내 우리로 들어갔다. 이번만큼은 헤어지고 싶지 않다.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될수록 옛 주인을 향한 그리움이 커진다. 하지만 간사님과 몇 마디 주고받던 그 사람은 결국 내게 작별인사를 했다. 
 
“혼자 원룸에 살아서 널 데리고 가지 못해. 대신 다음에 또 올게.”

 

▲  유기견이 잊지 못하는 건 '밥'이 아닌 사람과 나눴던 '교감'이다. ⓒ 박다영

이 사람도 내 주인이 될 사람이 아니다. 갑자기 산책의 피로가 몰려와 턱을 괴고 누웠다. 산책 중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의 따스함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조금 전 간사님과 그 사람이 하는 대화를 엿들었다. “작은 아이들은 빨리 입양되지만 큰 아이들은 키우기가 힘들 것 같아 많이 망설여진다”는 말. 이게 다 내 큰 덩치 때문일까? 나는 똥, 오줌을 확실히 가리고 한번도 말썽을 부린 적이 없다. 주인님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더 많은 재주를 배울 수도 있는데......

동물, 사지만 말고 입양하세요 

 

▲ 충무로 동물사랑실천협회 입양센터. ⓒ 박다영

  ‘송송이’가 있는 동물사랑실천협회의 ‘구호동물 입양전문센터는 국내 최초로 유기된 개와 고양이를 일반인에게 입양하는 일을 한다. 입양센터가 있는 서울시 중구 쌍림동과 500m 남짓 떨어진 곳은 충무로 애견센터 거리다. 2000년대 초반까지 ‘애견=충무로’라는 인식이 강한 곳에 자리 잡은 이유는 “사지 말고 입양하라는 유기동물보호소 취지와 어울리는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박의종(21) 간사는 설명한다. 주변을 지나는 일반 시민들 반응도 좋다. ‘도심에 있어서 쉽게 유기동물을 접할 수 있다’는 이유다.

경기 포천시 내촌면 유기견보호소에서 치료한 뒤 보호하고 있는 200여 마리 중 선별된 개 14마리, 고양이 8마리가 센터에 입주했다. 1층은 개, 2층은 고양이가 있으며, 이 곳에 상주하는 간사가 전체적으로 센터를 관리한다. 산책, 목욕, 청소, 미용 등 일손이 많이 가는 일은 자원봉사자들 도움을 받는다.

 

▲ 유기견과 산책 중인 영교씨와 유현씨. ⓒ 박다영

지난 22일 오영교(26․서울 강남구)씨와 송유현(여․28․서울 영등포구)씨는 ‘별이’와 ‘예쁜이’의 산책을 맡았다. 산책 코스는 센터와 1km 떨어진 남산공원이다. 인근 거주자나 공원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산책하는 유기견의 존재를 잘 안다. 한 시민은 “또 왔냐”며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물론 모두가 우호적이지는 않다. 유현씨는 “저번 주에는 중년 아저씨들이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개랑 산책은 왜 다니냐’는 질문을 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유기견이라는 말에 접촉을 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현씨도 유기견을 입양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느꼈다. 버려진 개에 대한 편견이다.
 
“전 괜찮지만 연세가 든 어머니는 버려진 개는 건강상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세요. 대부분 훈련이 안된 채 버려졌기에 입양 후 다시 훈련시켜야 하는 부담도 있구요.”

 
‘상처’받은 유기견도 ‘사랑’받으면 달라지더라
 
하지만 ‘편견’을 깬 사례는 가까이 있었다. 영교씨의 친구는 유기견 두 마리를 13년째 키우고 있다. 과거 주인에게 늘 맞고 자라던 개들이었다.
 
“맞고 자란 애들이었지만 키워보니 별 문제 없었어요. 얼마나 사랑을 주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13년 간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니 개들도 달라지더라구요.”
 

 

▲ 구청에서 발견돼 '구청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개는 다행히 새 주인을 빨리 만났다. ⓒ 박다영

김지아(여․29)씨는 지난달 30일 새 가족을 맞았다. 코카스파니엘 믹스견 ‘구청이’가 그 주인공이다. 우연히 센터 앞을 지나다 반갑게 꼬리를 흔들던 ‘구청이’를 봤다. 장난감을 좋아해 종일 공을 물고 다니는 사랑스러운 개를 보자 입양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난해 10년간 부모님이 애지중지 키웠던 반려견이 세상을 떠난 것도 한 이유였다. 입양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한 건 당장의 외로움 해소나 개를 기르고 싶은 욕망이 아닌 반려견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냐는 점이었다.
 
“유기견 입양은 처음이라 제 환경에서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특히 사람에게 상처받은 유기견이라면요. 다른 개들보다 더 큰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할 텐데, 가족이 돼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사랑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봤어요.”

 
‘구청이’는 지아씨 부모님이 거주하는 캐나다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모든 유기견이 쉽게 입양되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견종은 크기가 작은 소형견이나 나이가 어린 개다. ‘송송이’는 사람을 잘 따르고 순한 성격이지만 7kg의 중형견이라 새 가족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이 밖에도 ‘크면서 못난이가 됐다’, ‘대소변을 못 가린다’, ‘애기 때는 말을 잘 듣다가 크면서 포악해졌다’는 불만으로 ‘파양’, 곧 입양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박의종 간사는 “강아지 성격은 주인이 좌우하는 법”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유기견은 ‘아프다’는 편견이 있는데 보호소에서 철저히 검사하고 접종도 다 한 상태에서 일반인에게 분양합니다. 입양 조건에서 크기가 많이 좌우되는데 대형견이 아니고서야 웬만큼 큰 견종은 가정에서 키울 수 있어요. 물론 다시 버려지지 않도록 오랫동안 고민하고 입양을 결정했으면 합니다.” 

 
유명무실한 동물보호법, 지자체 조례로 실천해야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가 밝힌 ‘유기동물 발생 및 처리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적으로 발생한 유기동물은 9만6268마리에 이른다. 이는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보호소의 집계일 뿐 거리를 떠돌거나 사설 보호소에서 안락사한 경우는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문제는 유기동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송송이’나 ‘구청이’처럼 유명 동물보호단체 보호소나 입양센터에 있는 유기견들 사정은 그나마 낫다. 전국에 난립한 열악한 시설의 사립 보호소는 수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현황조사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보호소를 방문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맡겨져 있을 뿐이다. 
 
근본 원인은 국가와 지자체의 시스템 부재다. 그나마 최근 유기동물이나 동물 학대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면서 한 발 나아간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개정된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시도지사는 동물의 구조, 보호조치 등을 위해 농림수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맞는 동물보호센터를 설치•운영할 수 있다고 한다. 동물보호센터의 준수사항은 시•도의 조례 제정으로 명시하게 했다. 하지만 시•도의 적극적인 조례 제정이 뒷받침되지 않아 동물보호법 자체가 유명무실한 형편이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동물보호 관리 시스템이 허술한 점도 지적된다. 지난해 농림수산식품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전체 유기동물 중 46% 이상이 자연사 또는 안락사했다. 지자체 보호소에 맡겨지는 유기동물은 공고한 날부터 10일이 경과해도 소유자를 알 수 없으면 해당 시•군•구 자치구가 소유권을 취득하게 된다. 대부분 안락사의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전체 유기동물 중 분양률은 26%에 불과했다. 지자체에 따라 지정보호소가 적거나 수의사 없이 운영되는 곳도 있어 유기동물단체에서 시 지정보호소를 믿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8일 녹색당과 사단법인인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현행 동물보호법의 모순점을 지적하며 바람직한 법 개정 방향을 제시했다. 이유봉 박사는 국회 입법 의안 중 5% 정도만 통과된다는 점에 주목해 “경기 안성시 맞춤형 동물복지농장 등 지역에서 조례를 만들어 성공한 사례를 많이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법까지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인 구달, “인간에겐 동물 다스리는 권한 대신 보호 의무”

 

▲ '별이'는 언제 새 주인을 만날 수 있을까. ⓒ 박다영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서울시는 지난 5일, 반려동물을 지원하는 동물복지 전담부서 신설을 확정했다. 동물 등록제, 유기동물 보호 및 관리 시설 설립, 동물보호 명예감시원 제도, 동물보호단체 육성 등을 내용으로 한다. 반려동물과 사람이 공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이번 조처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변호사 시절부터 동물보호단체에서 활동한 이력과 취임 후 돌고래 ‘제돌이’ 방사 등 동물 복지에 관심을 기울여 온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 서울대공원 입양센터 공고. ⓒ 서울대공원 페이스북

다음 달 중순에는 서울대공원 ‘반려동물입양센터’ 개원도 앞두고 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반려동물입양센터 담당자는 “서울시 각 구청과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가 양해각서를 체결해 데려 온 10여 마리 반려동물이 입주했으며 일부는 이미 새 가족을 만났다”고 말했다.
 
동물학자 제인 구달은 사람에겐 동물을 다스리는 권한 대신 모든 생명체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인간만을 믿고 평생 곁을 지킨다. 오늘도 거리에 버려진 유기동물은 주인과 헤어졌던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빙빙 맴돈다. 버려지고 상처받은 유기동물에게 절실한 건 이름을 불러주는 다정한 목소리와 사람의 손이 전하는 따뜻한 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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