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화투∙윷놀이∙보드게임 열기에 대선토론도 후끈

‘한 해 중 가장 풍성한 농경사회의 축제’에서 ‘빨간 날’, ‘송편 먹는 날’ 정도로 의미가 축소된 감도 있지만 아직도 추석은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한 자리에 모이는 민족의 대표 명절. 2012년 한가위에 팔도강산의 각 가정은 뭘 하며 하루를 보냈을까. <단비뉴스>가 각지의 표정을 모았다.  

명절엔 역시 ‘고스톱’이 대세 

추석 당일인 지난달 30일, 회사원 손준(31•경기도 김포)씨 집에 모인 친척들은 한 상 가득 잘 차린 점심을 느긋하게 즐긴 뒤 방바닥에 군용담요를 깔았다. ‘판’을 벌인 것이다. 올해 처음 명절 화투판에 뛰어 든 손씨는 ‘타짜’인 고모들 사이에서 어쩐지 기가 눌렸지만 운을 믿어보기로 했다. 판돈은 점당 100원. 혹시나 모를 불화(?)를 예방하기 위해 한 판에서 잃을 수 있는 돈의 상한선도 1만 원으로 정해두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수십 년  관록의 고모들 사이에서 두 번이나 ‘쓰리고’를 한 손씨는 ‘명절 고스톱’의 묘미를 알게 됐다.

 

▲ 화투에 열중하는 ‘선수’도, 구경하는 ‘갤러리’도 진지한 손씨네 화투판. ⓒ 손지은

고스톱 ‘초짜’ 손씨가 실수를 할 때마다 고수들의 힐난이 쏟아지고, 오고가는 화투패 속에 환희과 좌절이 교차했지만 분위기는 줄곧 화기애애했다. 소 뒷걸음에 쥐 잡듯 손 씨의 선전이 몇 번 있었어도 결국 최종 승자는 큰고모 손창순(52)씨. 승자는 딴 돈을 조카들에게 ‘쿨’하게 쾌척했다. 

보드게임으로 아이들과 하나되기

권문혁(51•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교수 일가는 경북 대구에 사는 부모님이 역(易)귀성해서 경기도 일산의 권 교수 집으로 모였다. 조카 등 아이들이 모이면 늘 보드게임을 즐기는 편인데, 이번 추석엔 ‘모노폴리’의 변형인 ‘호텔왕게임’을 펼쳤다. 재미도 있고 경제감각도 키울 수 있는 놀이여서 만장일치로 선택했다. 

 

▲ 가족끼리 편을 갈라 대결하다보면 경쟁의 열기가 월드컵 못지 않게 고조되기도 한다. ⓒ 권문혁

권 교수와 남동생 장혁(45∙교수)씨는 각자의 자녀들과 한 팀을 이뤄 게임을 즐기는데, 경쟁의 열기가 ‘올림픽이나 월드컵 수준으로’ 치닫기도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조카들과 오랜만에 만나면 처음엔 다소 어색할 때도 있지만 함께 핏대를 올리며 보드게임에 열중하다 보면 어색함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한 팀이 된 부모와 자녀간의 유대도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여러 세대를 한데 묶어주는 윷놀이

지신밟기, 연 날리기, 강강술래 등은 전통의 민속놀이지만 실생활에서 다소 멀어진 반면 윷놀이는 여전히 일상 가까이에 있다. 양경종(57∙제주시 애월읍 수산리)씨 가족은 이번 추석에도 윷놀이를 즐겼다. 10대 청소년부터 60~70대 어르신까지 함께 즐기는 데 윷놀이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 마당에 멍석을 깔고 빙 둘러 윷판을 지켜보는 눈매들이 자못 진지하다. ⓒ 양호근

제주에서는 과거에 윷놀이 판을 경찰이 단속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뱃사람들이나 귤농사하던 이들이 한 번에 큰 돈을 만지기 때문에 때때로 윷놀이가 큰 도박으로 변질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명절 윷놀이는 물론 도박과 거리가 멀지만, 작은 상품이나 돈을 걸어놓고 편을 갈라 경기를 하다 보면 모두가 흥미진진한 게임의 세계에 빠져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제주의 윷놀이 판과 윷은 다른 지방과 좀 다르다. 저 윷판에는 어떻게 말을 놓는 걸까? 다른 지역에 비해 윷도 작고 깜찍하다. ⓒ 양호근

한옥마을 등 도심 나들이로 귀성 못한 아쉬움 달래   

경남 진주가 고향인 김민정(38•여•서울 영등포구)씨는 올해 사정이 생겨 귀성을 포기했지만 딸에게 추석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 서울 중구 필동의 ‘남산골 한옥마을’을 찾았다. 이곳에서 는 추석 연휴(9월 29일~ 10월 1일)동안 ‘민족한마당 축제’가 열렸다.   

 

▲ 민속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하다. ⓒ 손지은

행사장은 김씨처럼 귀성을 포기했지만 명절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이들로 붐볐다. 아이들을 위한 윷놀이, 전통팽이, 투호 등 전통놀이 체험장은 물론, 전통 연과 탈, 팽이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자리도 있었다. 한옥마을 곳곳의 천막에서는 전통주와 떡, 한과도 팔고 있어 명절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이들이 추석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진행된 중앙 무대에는 약 600여명의 시민들이 일찌감치 자리 잡고 앉아 사물놀이, 소고춤, 판소리를 감상했다. ⓒ 손지은
▲ 남산골한옥마을 민속대축제 한켠에서는 짚공예 시연행사도 열렸다. ⓒ 손지은

세대간 팽팽한 대립 펼쳐진 ‘밥상 백분토론’

별다른 놀이 없이 ‘밥상 앞 대선토론’으로 가족 모임의 열기가 후끈해진 집도 적지 않았다. 대학원생 안형준(28∙서울 잠원동)씨 집에 모인 일가친척들은 ‘12월 19일에 누구를 찍을 것인가’를 두고 세대간 설전을 펼쳤다. 50~60대 어른들은 ‘뭘 모르는 요즘 젊은 것들이 뭘 모르고 문재인•안철수를 지지한다’고 비난했다. 그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에 이뤄진 경제발전을 칭송하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20~30대 젊은이들은 박정희 시대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유린을 비판하며 진정으로 그 시대를 반성하지 못하는 세력의 집권은 막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들의 팽팽한 설전은 세대간의 간극을 메우지 못한 채 어떤 결론도 없이 끝났다. 돌아오는 2013년 설에 웃으며 떡국을 먹을 수 있는 세대는 과연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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