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한방바이오박람회] 제천이 ‘한방도시’가 된 사연

지난 22일 개막한 ‘2012제천국제한방바이오박람회’가 28일 끝난다. 박람회가 끝나는 시점에서 문득 떠오르는 의문은 ‘왜 소도시 제천에서 해마다 국제한방박람회가 열리느냐’는 것이다. 원래 조선의 3대 약령시는 대구·전주·원주에서 열리지 않았던가?

약령시 개설은 효종9년, 곧 1658년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한데, 경상·전라·강원도의 주읍인 세 곳에 먼저 열렸고 다른 도시에도 잇달아 개설돼 약재 거래의 중심지가 된다. 그러나 양방이 도입되면서 대구와 서울을 빼고는 한방약재시장이 대부분 쇠퇴하게 된다. 그런데 조그만 도시 제천이 2010년에 국제한방바이오박람회를 처음 열고 매년 대회를 개최하게 된 이유는 딴 데 있었던 게 아니다.

약초생산 중심지에 바이오밸리와 한의대가 있는 곳

 

▲ 숙박시설까지 갖춘 산채건강마을과 한방명의촌에서는 휴식과 함께 다양한 한방체험을 할 수 있다. ⓒ 한방명의촌

우선 대구와 서울의 약재시장이 거대 소비지를 끼고 있다면 제천은 약재의 거대 생산지를 끼고 있다. 제천시는 그 점을 부각시키고 한방과 결합된 바이오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시로서는 상당한 재정부담을 감수하면서 한방바이오박람회를 열게 된 것이다. 제천에는 두 개의 ‘바이오밸리’ 산업단지가 있다. 또 의과대학은 없지만 한의과대학이 세명대에 설립돼 있고, 부속 한방병원에서 제천 인근 주민들에게 양질의 한방의료 서비스를 하고 있다. 또 제천시 봉양면 명암리 산자락에 들어선 산채건강마을에는 한옥으로 지은 깔끔한 숙박시설들이 있고, 한방명의촌까지 개설돼 다양한 한방체험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제천의 유명식당들은 저마다 한약재를 이용해 건강에 좋고 독특한 맛을 내는 음식들을 내놓는다.

‘한방도시’ 제천은 사실 역사가 깊다. 세종 때 집현전 학사로서 한글 창제에 공이 큰 정인지는 충청감사로 부임한 뒤 제천을 이르기를 “가는 곳 마다 물이 넘치고 청산의 위엄이 준엄한 곳”이라 했다. 실제로 제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인 의림지와 청풍호가 아름다운 물빛을 자랑하고, 제천을 둘러싼 치악산 월악산 소백산이 저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명산들이 자태를 뽐내는 곳이다. 산 깊고 물 맑으니 천혜의 조건을 갖춘 약초 생산지일 수밖에. 제천은 조선 후기부터 양질의 한약재 생산과 유통의 중심지가 됐고, 지금은 대구 약령시, 금산 약초시장과 더불어 3대 약초시장으로 꼽힌다.

제천 약초의 특별함은 오래된 역사뿐 아니라 빼어난 품질에 있다. 제천에서 생산되는 약초는 대개 GAP 마크를 획득하고 있다. GAP이란 ‘농산물우수관리인증’을 뜻하는데, 농산물의 안전성 확보와 농업환경 보호를 위해, 농산물의 생산·관리·유통의 각 단계에서 농약이나 중금속 또는 유해생물 등 위해(危害) 요소를 적절히 관리하는 제도이다.

제천에서 나는 약초들 중 지금 한창 수확하고 있는 약초들의 효능을 한번 살펴보자.

환절기엔 영계백숙 대신 ‘황기’백숙을 

 

▲ 황기의 꽃. 뿌리를 약재로 쓴다.

인삼의 사촌격인 황기는 인삼과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인삼보다 길고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잔뿌리는 없다. 잘 말린 황기를 입에 넣고 씹으면 질긴 섬유질 사이에서 단맛이 느껴지고 입안에 은은한 향기가 감돈다.

황기는 생으로 사용하면 땀을 멎게 하고 피부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으며 꿀에 한번 볶으면 몸의 기운을 돕는 데 그만이다. 길고 늘씬하지만 단단하고 질긴 몸으로 우리 몸의 깊은 곳에서부터 원기를 쭉 끌어올려준다.

황기는 제천 약초의 대표주자다. 제천산 황기는 전국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고 약효 또한 으뜸이어서 ‘명품황기’로 통한다. 향긋하고 은은한 단맛 덕분에 요리에 사용해도 제격이다. 황기백숙, 황기찐빵, 황기해물찜 등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가을의 여인 ‘오미자’

 

▲ 다섯 가지 맛을 내는 오미자.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제천의 가을은 새빨갛게 익어가는 오미자의 자태로 더욱 곱다. 포도송이마냥 주렁주렁 열리는 오미자는 고운 외모만큼이나 맛 또한 상큼하다. 콩알만한 열매가 혀끝에 닿는 순간 달짝지근하면서도 상큼한 신맛이 입안에 금세 침을 고이게 한다. 오미자를 설탕에 재어 놓았다 여름에 물에 타서 먹으면 갈증해소에 좋다.

오미자의 매력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오미(五味)’라는 이름에 걸맞게 과육 가운데 들어있는 씨앗을 깨물면 쓴맛과 짠맛 매운맛까지 느낄 수 있다. ‘팔방미인’답게 기침, 불면증, 간염에도 효과가 좋고 정력에도 좋다. 제천의 혹독한 더위를 이겨내고 다섯 가지 맛의 비결을 얻어낸 ‘오미자’란 여인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빠지면 서운한 ‘약방의 감초’

 

▲ 감초는 단맛만 내는 약재가 아니라 다양한 효능이 있다.

감초는 모든 약을 조화롭게 만드는 효능이 있어 ‘약방의 감초’라는 속담을 얻었다. 실제로 대부분 한약처방에 감초가 포함된다. 속살이 노란 감초를 혀끝에 대는 순간 진한 단맛이 느껴진다. 그 누구보다 노랗고 그 누구보다 달콤하다. 이런 부드러움으로 너무 힘센 약, 너무 찬 약, 너무 더운 약 등 모두를 제압해 화해시킨다.

남들을 화해시키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위나 심장 기능이 약할 때 사용하기도 하고, 염증을 치료하거나 통증을 줄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설탕을 듬뿍 먹으면 몸이 무거워지고 체하듯이 감초도 한꺼번에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이 밖에도 제천에서는 두통에 좋은 천궁, 여자에게 좋은 당귀, 부종을 빼는 데 좋은 율무 등 다양한 약초를 생산한다. 매년 가을 풍광 좋고 약초 향기 그윽한 제천을 방문해 지친 심신을 치유한다면 겨울나기가 한결 쉬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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