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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경제권이 없으면 불안정”
‘민중권력’ 주제로 한 코리아국제포럼 폐막
2012년 09월 24일 (월) 17:42:42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식민지 시대에는 정치적 독립을 추구했다. 그러나 독립은 국가별로 부르주아 정권이 들어서고 자본주의 구조를 통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외국자본이 민족기업을 예속화시키면서 금융독점이 강화됐다. 누가 자본의 주인인가. 과거 유럽인들이 라틴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다면, 오늘날 세계는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에 예속돼 있다.”

   
▲ 코리아국제포럼에 참가한 외국인 학자와 활동가들이 지난 20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SKY 공동행동’을 찾아 지지를 표시하고 있다. ⓒ 코리아국제포럼 제공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제4회 코리아국제포럼(17~21일)에 참석한 파울로 나카타니 브라질 에스피리소산토연합4대학 교수는 포럼 둘째날 좌담회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이렇게 설명했다. 식민지 상태에서 독립하면서 뭔가 크게 바뀐 것 같지만 여전히 착취받고 있는 것은 기층 민중이라는 분석이다. 포럼 참석자 중 가장 원로급인 홀렁 베이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수석부대표(93·사진) 또한 지난 1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취지의 말을 꺼냈다.

“오늘날 국가부채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채를 어떻게 갚아나가야 하는지에만 관심이 있지만 도대체 어디서 온 부채인가, 우리가 왜 갚아야 하는가, 부채를 갚으면 누가 가져가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세계 각국의 국가재정에서 군비증강을 위해 쓰이거나 이라크·아프가니스탄·리비아 등의 전쟁에서 쓰이는 비용을 따져봅시다. 과거 왕정시대에 국가지배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벌이면서 필요에 따라 민중을 동원했습니다. 지금과 무엇이 다릅니까.”


결국 국가와 정부가 민중의 주권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민중을 도구로 삼는다면 이런 비극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베이 부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포럼 발표문에서 유엔헌장 전문에 이미 ‘민중주권’이 명시돼 있다고 밝혔다. “우리 유엔 민중은… 우리의 노력을 결집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상의 증거로서, 연합국 정부의 대표들은 이 헌장에 서명하였다”라는 문구는 곧 “정부가 민중의 결정에 따라 서명하는 것이며, 정부가 민중권력의 도구라는 것을 뜻한다”는 주장이다.

   
▲ 홀렁 베이

“그런데 브레튼우즈 체제를 거치면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중심으로 반민주적인 금융권력에 기반한 세계체제가 형성됐습니다. 유엔헌장과는 반대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낸 것이죠. 그들은 유엔헌장이 ‘정치적’인 부분만 말했고 ‘경제적’ 권리는 분리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유엔의 ‘천연의 부와 자원에 대한 영구적 주권’이라는 결의문은 각국 민중의 경제적 권리도 보장합니다. 새로운 민주적 국제 경제질서를 모색하기 위해 우리 협회를 중심으로 내년에 국제콘퍼런스도 개최할 계획입니다.”

베이는 코리아국제포럼 마지막 날인 21일 열린 ‘현 세계 정세의 초점과 제3세계 민중의 연대’라는 주제의 전체좌담회에서도 금융권력이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국제협력 관계 구축을 역설했다. 그는 “오늘날 시민권이라고도 불리는 인권은 경제권이 없으면 불안정하다”며 “힘의 관계 속에서 과거의 식민지는 신식민지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남반구에 존재하는 독재정권들도 어디서 온 것인가”라고 반문한 뒤 “지배 금융세력의 지지 없이는 (독재정권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구체적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국제관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베이는 프랑스변호사협회의 원로로 프랑스-알제리 전쟁 시기에 알제인의 권익보호에 헌신하기도 한 평화활동가이기도 하다. 국제민주법률가협회는 세계 90개국의 법률가단체와 법률가들이 활동하는 국제 평화·인권단체다.

‘민중주권’을 주제로 삼은 코리아국제포럼에서는 이 밖에도 민중의 참다운 뜻이 반영되는 정치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모색하기 위해 각국에서 온 세계적 학자와 운동가들이 갖가지 분석과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민의는 뒷전인 채 선거공학에만 함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한국의 현실에서 의미가 있다.

첫날 좌담회에 참석한 장 살렘 프랑스 파리4대학(소르본대) 교수는 “민중주권이 선거 승리인 것처럼 착각하는 현상이 있다”며 “하지만 결국 우리가 반대하는 구조 속에서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베이 부대표는 “그렇다고 선거를 방치해서는 안된다”며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뿐만 아니라 대통령 권한의 중요성도 생각해야 하며, 선거도 민중의 힘을 모아가는 훈련 과정의 일부”라고 말했다.

포럼에 참가한 외국인 학자와 운동가들은 지난 20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농성을 진행 중인 ‘SKY 공동행동’을 찾아가 지지를 표시하기도 했다. ‘SKY 공동행동’은 쌍용차(S), 강정마을(K), 용산참사(Y) 문제를 동시에 공론화하기 위해 출범한 관련 단체의 연대기구다.
 


* 이 글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졸업생인 황경상기자가 경향신문에 보도한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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