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절반이 ‘나는 빈곤층’, 계층 상승의 희망도 깜깜
[두런두런경제] 김광진 제정임의 경제카페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요즘 들어 ‘우리 사회의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다’, ‘중산층의 어려움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어느 정도의 소득과 재산이 있는 사람들을 중산층이라고 하는지 기준부터 살펴볼까요.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일반적으로 활용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기준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우리나라 전체가구를 소득 순서에 따라 한 줄로 세웠을 때 가장 가운데 있는 것을 중위소득이라고 하는데요, 이 중위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분류합니다. 중위소득의 50%미만은 빈곤층, 150%를 넘는 계층은 부유층이 되는 것이죠. 2011년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의 중위소득은 약 350만원입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월 소득이 대략 175만원에서 525만원 정도인 가구를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전체가구를 소득수준에 따라 20%씩 균등하게 5등분했을 때 중간인 2,3,4등분에 속하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정의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밖에 설문조사를 통해 중산층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알아보는 비공식 기준도 있어요. 얼마 전 직장인 대상의 한 설문조사에서 ‘소득과 재산이 어느 정도면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이냐’는 질문에 대략 공통적으로 제시된 기준은 이렇습니다. 대출 없이 아파트 30평 이상 보유, 월급여 500만원 이상, 2000cc이상 자동차보유, 예금잔고 1억원 이상, 해마다 해외여행 1차례 이상 갈 수 있는 여유. 하지만 이 정도에 해당하려면 중산층 숫자는 확 줄어들 것입니다.

중산층 줄고 빈곤층 늘고...국민 50% '나는 빈곤층'

김: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의 붕괴나 위기라고 할 만한 현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제: ‘붕괴’라는 표현은 다소 과격하게 보이지만 중산층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는 지표는 확인됩니다. OECD통계를 기준으로 한 중산층이 1996년 74.5%에서 2011년 64%로 10%포인트 이상 줄었습니다. 거꾸로 빈곤층은 같은 기간 약 7%에서 15%가량으로 늘었고요. 또 중산층의 형편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자료도 있는데, 중산층 가운데 적자인 가구의 비중이 1990년 15.8%에서 2010년 23.3%로 늘었다고 합니다. 중산층의 비중자체가 줄고, 경제적 형편도 어려워졌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김: 객관적인 지표를 볼 때 중산층에 속하는가 아닌가와는 별도로,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 같은데요, 이런 주관적인 인식에는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제: 현대경제연구원의 최근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 중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중은 46.4%에 불과했습니다. 통계청의 2011년 조사 기준 중산층 비율 64%에 크게 못 미칩니다. 조사대상 중 50.1%는 자신을 저소득층으로 인식했는데요, 이는 통계청의 빈곤층비율 15.2%의 3배를 넘는 수준입니다. 객관적인 소득 수준을 떠나 ‘내가 사는 형편을 생각하면 빈곤층에 해당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특히 자신의 계층이 하락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가운데 98%가 ‘재상승할 가능성이 없다’고 답해 얼마나 실망감, 좌절감이 만연해 있나 알 수 있었습니다.

김: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중산층의 위기가 심화한 이유는 뭘까요.

제: 우선은 외부적인 충격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1997년의 외환위기, 2003년의 카드사태,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경제양극화가 급진전되고, 이 과정에서 경제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중산층이 상당수 빈곤해진 것이죠. 최근에는 경기 부진 속에 50대 은퇴자들이 자영업에 진출했다가 실패하고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경우, 청년실업이 장기화하면서 20,30대가 사회진출의 문턱에서 아예 중산층으로 진입할 기회를 잃게 되는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고요. 근본적으로는 우리사회의 불균형 성장, 즉 경제양극화가 심해진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출과 내수의 불균형,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이죠. 경제력집중으로 성장의 기회와 과실을 소수의 수출대기업들이 독식하고 중소기업, 근로자, 자영업자, 농민들이 상대적으로 위축되면서 경제양극화가 심해지고 중산층이 위축되는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에 한국 가계의 독특한 지출구조도 영향을 미칩니다. 가계가 적자상태인데도 자녀교육을 위해 과다한 지출을 하고 빚 더 지게 되는 ‘에듀푸어’가 전국적으로 82만 가구나 된다는 통계가 있고요, 주거비, 의료비도 중산층의 생활고를 가중시키는 요소로 지적됩니다. 중산층이 혜택을 볼 수 있는 복지체계, 즉 사회안전망이 튼튼하지 않아 소득이 줄거나 실직하거나 아픈 사람이 생기는 경우 빈곤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입니다. 

중산층 붕괴 정치사회 대립으로 이어질 위험, 경제양극화 완화가 해법

김: 최근에는 가계부채를 갚지 못해 개인워크아웃 등을 신청하는 사람 가운데서도 중산층이 늘었다고 하던데, 어느 정도입니까. 

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지난 연말 900조원을 훌쩍 넘었고, 계속 증가하고 있어 우리 경제의 최대 위험요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데요, 최근 들어 저소득층 뿐 아니라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개인워크아웃(부채구조조정)신청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월소득 150만원 이상인 사람들이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는 비중이 2010년 전체의 12%에서 2012년 상반기 18%로 늘었다고 해요. 또 올해 2분기를 기준으로 월 20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 소득자가 개인워크아웃이나 그 전단계인 프리워크아웃을 신청한 경우가 전기 대비 각각 11%와 7% 늘었고, 300만원 초과 소득자의 신청도 각각 17.3%와  8%가 늘었다고 합니다. 불경기 탓에 소득이 줄고 부동산 경기하락으로 자산가치도 줄고 있어서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중산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김: 이렇게 중산층 기반이 점점 줄어들거나 중산층의 여건이 어려워질 경우 경제적으로, 또 정치사회적으로 부작용이 클 것 같은데요. 

제: 맞습니다. 중산층은 구매력이 있는 계층인데, 중산층이 줄고 이들의 쪼들려 소비를 하기 힘들게 되면 내수 침체를 불러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성장률이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중산층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불만이 많아지면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높죠. 중산층이 두터우면 계층간 갈등이 줄어 정치안정을 이룰 수 있고 민주주의 토대가 굳건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계층간 갈등이 심해지면서 이념적인 양극화 등 극단적인 정치사회 대립이 빚어질 수도 있습니다.  

김: 그렇다면 중산층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종합적으로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요.

제: 한 사회가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중산층이 두터운 구조, 즉 다이아몬드형이나 달항아리형의 계층구조가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지적됩니다. 이렇게 사회의 허리인 중산층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부익부빈익빈의 추세, 즉 경제양극화를 완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선 가시적으로 필요한 게 질 좋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대폭 늘리는 것이죠. 복지나 교육 등 사회복지서비스 분야나 신재생에너지, 신농업 등 미래유망분야에서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우선 재정을 통해 이 분야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적극 유도할 필요가 있고요, 기업에 대한 지원도 고용창출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적극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처우개선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과도한 장시간근로를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정책도 과감하게 시행하면 좋겠습니다. 또 우리 사회의 복지안전망을 강화해서 주거와 의료비 등의 부담 때문에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일이 줄어들 수 있게 해야 하고,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소득 외에 연금, 수당 등 공적소득이 늘어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대다수 가정의 고민인 과도한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도록 공교육을 내실화하는 노력도 필요하죠. 다각도의 대책이 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합니다. 


* 이 기사는 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9월 12일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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