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부진, 내수침체에 ‘일감 몰아주기’ 등 대기업 횡포 여전
[두런두런경제] 김광진 제정임의 경제카페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우리나라 경제가 대기업 위주의 성장전략을 추진하면서 중소기업들이 어렵다는 얘기는 사실 늘 있었는데요, 최근 들어 중소기업들의 사정이 특히 나빠졌다는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인가요.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유럽재정위기 등 세계적인 불황이 길어지면서 체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이 한계상황으로 몰리는 모습입니다. 은행들이 매년 거래 중소기업 중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는 ‘신용위험 세부평가 대상’을 선정해 금융감독원에 보고하는데요, 올해는 1335곳이 선정됐습니다. 지난해 1129곳에 비해 약 20%나 늘었어요. 전반적인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도 지난해 12월 1.34%에서 지난 7월 현재 1.76%로 상승했습니다. 또 한국은행의 8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보면 중소기업의 업황 BSI가 69로 전달에 비해 3포인트 하락했습니다. 이 지수가 100을 밑돌면 경제심리가 과거 평균치 보다 악화됐음을 의미하는데, 이미 나쁜 상황에서 더욱 나빠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죠.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중소제조업체 가동률을 보면 7월 평균가동률이 70.3%로 전달의 70.8%에 이어 2개월 연속 하락세를 지속했습니다. 이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2009년 8월 이후 35개월 만에 최저수준입니다.
 
김: 중소기업들의 경영난, 자금난이 최근 들어 더욱 심해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우선은 유럽재정위기 등 세계적인 경제침체가 지속되면서 수출이 둔화되고, 소비심리 위축과 함께 내수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큰 원인입니다. 여기에 기름값 등 원자재 가격은 자꾸 올라서 비용압박이 커지고 있고요. 물건은 잘 안 팔리고 비용은 많이 나가니 현금창출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은행 등 금융권은 대출을 오히려 조이고 있어서 자금난에 몰리는 중소기업이 많은 것입니다. 한국은행이 16개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보면 중소기업의 대출수요지수, 즉 얼마나 대출을 필요로 하느냐는 지난해 2분기 16에서 올해 3분기 31로 상승했는데, 은행들의 대출태도지수, 즉 얼마나 적극적으로 돈을 빌려 주려 하느냐는 같은 기간 22에서 6으로 떨어졌습니다. 중소기업들은 자금이 필요한데, 은행은 ‘떼일까봐 못 빌려 주겠다’로 냉랭해졌으니 쓰러지는 기업이 늘 수밖에 없는 것이죠. 반면 대기업들은 비축해 둔 현금성 자산이 많아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합니다. 

정부 중소기업 지원책 추진…실효성은 미지수

김: 정부와 금융권은 여기에 대해 어떤 대책을 추진하고 있나요.

제: 정부는 중소기업의 자금난 완화를 위해서 신용보증기금의 보증료를 낮추는 등 대출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개선책을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또 각 은행들이 중소기업의 사업계획과 현황을 적극적으로 평가해서 전망이 있는 곳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지원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비가 올 때 우산을 뺏어가는 금융’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죠. 그러나 부실가능성을 걱정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리스크관리에 들어가면서 올 들어 지난 4월말까지 대기업 대출은 6조원 이상 늘어난 반면 중소기업 대출잔액은 2천억원이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 지난 몇 년 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강조되면서, 정부가 계열사간의 ‘일감 몰아주기’ 등 대기업의 횡포를 단속하겠다고 밝혔는데, 실제로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면서요?

제: 네. 중소기업들의 경영사정이 더욱 악화되는 배경에는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거래 관행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탓도 큽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한 2011년 대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을 보면 재벌들의 일감몰아주기가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전년도에 비해 거래금액 기준으로 30%나 늘어났습니다. 특히 총수일가 지분율이 30%를 넘는 대기업계열사 중 주요 10개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평균 68%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기업총수나 총수자녀의 지분이 많을수록 내부거래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해서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경영권을 편법 세습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김: 기업간의 거래가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감독하고 규제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있고, 대기업 중소기업의 협력을 위해 동반성장위원회도 가동되고 있는데 일감몰아주기 등 대기업의 횡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제: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독과점,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내부거래, 하도급단가 후려치기 등 대기업의 횡포를 감시하고 거래질서를 정상화하는 책임을 진 기관인데요, 전보다는 분발하고 있는 모습이지만 상황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만큼 제 몫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특히 문제가 적발된 경우에도 과징금 책정 등에 있어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거나, 대기업의 불법행위를 검찰에 고발하지 않고 봐주는 경우가 있어서 시민단체 등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정위만이 갖고 있는 불법행위 고발권(전속고발권)을 다른 기관과 공유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동반성장위원회도 지난 2010년 설립된 후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제 등 여러 가지 제도적 대안을 내놨지만 아무 실권이 없는 민간기구여서 관련당국의 비협조, 대기업들의 형식적인 참여 등으로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제양극화, 경제성장 전략 전환 필요

김: 중소기업들이 어렵다는 것은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사정도 어렵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우리 경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을 방치한다면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제: 네, 중소기업중앙회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기업 중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연도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기업수로 볼 때 약 99%, 종업원 수로 보면 약 80%인데, 생산액 기준으로는 50%에 못 미쳐. 숫자로는 1%도 되지 않는 대기업들에게 경제력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죠. 문제는 수출중심 대기업들의 매출이 늘고 이익이 늘어도 고용은 좀처럼 늘지 않는 게 우리 경제구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가 외형적으로는 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일자리는 늘지 않고, 중소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경영난의 여파로 보수나 처우 면에서 열악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기업들이 인건비 절감을 추구하면서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등 고용의 불안정성이 더욱 커져, 이것이 경제양극화를 심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고 경제양극화가 심화되는 경제구조에서는 필연적으로 국민들의 구매력이 떨어져서 내수가 침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어렵게 되는 것이죠. 지금 우리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도 크게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김: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동반성장을 가능하게 할 대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 근본적으로 수출대기업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을 전환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대기업을 대표선수로 내세워서 국가적 자원을 몰아주고 수출을 늘리는 방식의 경제성장 전략을 펴왔다면 앞으로는 중소기업과 내수를 중심으로 한 성장전략으로 전환해야할 것입니다. 수출대기업에 집중됐던 자금, 세제, 정책상의 혜택은 이제 줄여 나가고, 내수중소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서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재벌 등 대기업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는 경제력을 분산시킬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선 등 과감한 재벌개혁을 추진해 합니다. 또 일감몰아주기, 납품단가후려치기, 기술과 인재 빼가기 등 대기업의 횡포를 강력단속해서 공정한 거래질서가 확립될 수 있게 해야겠죠. 이를 위해서는 징벌적배상제나 집단소송제 등 강력한 법적 수단을 구비할 필요가 있고, 공정거래위원회 등 감독당국출신들이 퇴직 후 대기업의 로비스트가 되는 구조도 차단해 기업과 관료의 유착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 이 기사는 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8월 8일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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