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대학로 인기무대 <라이어 1탄>의 구도균

“아휴, 늦어서 죄송합니다.”

잔뜩 헝클어진 ‘아줌마 파마’에 후줄근한 옷차림. 개성 있는 예술인들이 모여드는 대학로 거리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행색이다. 누가 봐도 배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인기 연극 <라이어(Liar) 1탄>에서 주인공 ‘존 스미스’의 둘도 없는 친구 ‘스탠리’ 역할을 맡아 관객의 배꼽을 빼고 있는 구도균(33)씨와 지난 6월 11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 마주 앉았다.

수많은 작품들이 새로 무대에 오르고, 한편으로 소리 소문 없이 막을 내릴 만큼 경쟁적인 대학로 연극시장에서 <라이어 1탄>은 독보적인 기록을 세우고 있다. 국내 연극사상 최초로 1만5000회 공연을 돌파했고 올해로 개봉 14주년을 맞았다. 코믹한 내용과 그물처럼 촘촘하고 빠른 전개로 입소문이 난 이 작품의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새롭게 각색한 <라이어 2탄>, <라이어 3탄>이 제작됐을 정도다. 구도균 씨가 맡은 스탠리는 두 집 살림을 하는 친구를 위해 어설픈 거짓말을 늘어놓다가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감초 역할. 지난 3월 14일 첫 무대에 오른 뒤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며 인기몰이 중이다.  

대학로 연극 <라이어 1탄>에서 '스탠리' 역을 맡은 배우 구도균. ⓒ 다음 카페 <라이어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7년 <닥터 이라부>로 데뷔

구씨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3학년이던 2007년 <닥터 이라부>로 데뷔한 뒤 제작사 ‘파파 프로덕션’과 인연을 맺었다. 이 프로덕션의 전속 배우로 활동하면서 <라이어> 시리즈에 참여하게 됐는데 2011년 3탄부터 공연을 시작한 뒤 현재 1탄에 안착했다.

“라이어는 일단 작품 자체의 스토리가 무척 탄탄하고, 검증된 재미가 있죠. 스피디한 전개와 시종일관 이어지는 다양한 사건사고가 관객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어요. 기본적으로 유머러스한 작품이라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겁게 볼 수 있어요. 롱런 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죠.”

하루 두 번 공연하는 <라이어 1탄>에서 구도균 씨는 낮 공연을 담당하고 있다. 한 달 반 정도 연습하고 첫 무대에 올랐는데 극 전개가 워낙 빨라 연습을 어지간히 하고 올라가도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누군가 실수를 한다고 한다.

“대사 실수는 뭐, 매번 나오고요. 한 번은 스미스의 아내인 ‘메리’가 등장해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질 않는 거예요. 할 수 없이 스미스 역할을 맡은 친구가 직접 들어가서 데리고 나왔죠. 연극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니까 이런 위기 상황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게 중요해요.”

데뷔작 <닥터 이라부>를 공연중인 배우 구도균씨. ⓒ 파파프로덕션

수시, 정시 합쳐 ‘13전 14기’로 중앙대 연영과 합격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연희단거리패의 ‘바보각시’를 본 뒤 연극에 빠졌다고 한다. 고향인 부산 연제구의 가마골소극장에 친구 따라 갔다가 한 눈에 반했단다. 마침 그 친구가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길로 구씨도 ‘연기지망생’이 됐다.

부산 동천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청소년극단 동화(대표 전경은)의 창단에 합류하면서 연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당시 연극영화과의 명문으로 꼽혔던 중앙대학교 입시에 도전했다. 중간에 잠깐 다른 대학에 다녀봤지만 성에 차지 않아 그만 뒀다. 음식점 종업원, 공사판 일용직, 주차관리원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합격하기까지 꼬박 7년이 걸렸다. 수시, 정시 등 원서를 냈다가 총 13번 떨어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터널 같은 세월이었다.

“포기할 수 없었어요. 중고등학교 때 아무 생각도 없었거든요. 목표도 없고 희망도 없던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처음 갖게 된 꿈인데, 이걸 포기하면 너무 허망할 것 같았죠. 하고 싶고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었으니 어떻게든 끝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이 많은 신입생이 ‘군기’ 세기로 유명한 연극학과에 적응하는 게 물론 쉽진 않았다. 자존심 상하는 일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정말 연기가 배우고 싶었고 그 학교는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었기에 행복했다고 한다. 물론 무대를 만드느라 매일 쉴 틈이 없었고, 방학도 없는 고단한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작은 경험 하나 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이를 악물고 공부해 장학금을 받았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학원에서 연기 지도도

졸업 이후의 삶은 비교적 순탄했다. 독특한 외모와 강한 개성 덕분에 프로연극 데뷔작을 주인공으로 시작했고, 안정적인 프로덕션에 전속 배우로 계약돼 꾸준히 인지도와 경험을 쌓아 나갔다. 그러나 그는 안주하지 않고 대학원에서 연극이론을 공부하는 한편 입시학원에서 고등학생 연기를 지도하며 바삐 뛰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요. 과거의 제가 생각나면서 나태해진 스스로를 채찍하게 되죠. 열심히 연습하는 친구들을 보면 자극도 되고요. 입시연기 교육이라는 게 사실 시간을 엄청 많이 투입해야 하거든요. ‘입시결과’라는 성과가 바로 나오니까 책임감도 크고요. 하지만 가르치면서 배우는 게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구도균씨는 틈틈이 연극 입시 학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연기를 가르치고 있다. ⓒ '연기로 우주정복' 홈페이지.

공연이 끝난 후 관객이 진심으로 ‘연기 잘 봤다’고 말해줄 때 가장 뿌듯함을 느낀다는 구도균씨. 그는 쉬는 시간에도 대학원 논문을 준비하고, 최대한 연극을 많이 보러 다닌다고 한다. 더 배우겠다는 열정이 지독해 보였다. 그는 무엇을 향해 그토록 달리는 것일까.

“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나이 많이 들어서까지 연극을 한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수입도 일정치 않고 고되잖아요. 그래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나이 들어서도 연극무대를 지키는 선배님들이 존경스러워요. 저도 그렇게 평생 연극배우로 살아남고 싶습니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