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노동현장 누비는 다큐멘터리 감독 태준식

 “전태일에 관한 영화와 다큐멘터리는 많이 만들어졌죠. 그런데 사실 전태일이라는 인물이 노동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온갖 탄압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버텨준 그녀의 강인한 모습과 그 이면의 소소한 일상을 꼭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 영화 <어머니> 포스터. ⓒ 어머니 공식 사이트

수많은 현장을 누비며 노동자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에 담아 온 태준식(41)감독. 지난 4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이야기로 다큐 <어머니>를 만들어 대중 앞에 내놓았다.  5월 말 서울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태 감독은 지난해 7월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이 여사가 작고하는 바람에 완성된 영화를 보여드리지 못한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저항가, 일상에선 따듯한 할머니였던 이소선 
 
노동자들이 탄압받는 현장에서 저항적인 운동가로, 또 그들을 보듬는 어머니로 늘 대범하게 비춰진 그녀였지만 일상에서의 이소선은 이웃집 할머니처럼 소박하고 따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를 촬영하는 내내 태 감독은 전혀 힘들지 않고 굉장히 행복했다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할 무렵에 말했답니다. 내가 죽어 작은 창구멍 하나 낼 테니까, 노동자 학생들과 힘을 합해 그 창구멍을 조금씩 넓히는 데 힘을 보태달라고. 그래서 어머니는 평생을 그 약속을 붙들고 사신 것이죠.”
 
 
▲ 지난해 9월, 이소선여사 영결식 현장. ⓒ 어머니 공식 사이트
 
그러나 어머니는 쌍용차, 한진중공업 등에서 노동자들이 여전히 고통 받는 것을 목격하면서 ‘약속을 다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태 감독은 이런 현실과 함께 촬영 과정에서 어머니를 많이 귀찮게 해드린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태 감독은 80년대 말 민주화 운동 바람 속에 결성된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95년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해 <민주노총 건설속보 제2호>를 시작으로 2003년 <필승 버전 1.0 주봉희>까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현대중기산업 노동자를 다룬 <인간의 시간>(2000)으로 인권영화제에서 대상을 받는 등 다큐계에서 인정을 받았고, 쌍용자동차 파업투쟁을 담은 <당신과 나의 전쟁>등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내놨다. 
 
“대학에서 영화 동아리를 하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죠. 당시 동아리 선배들과 함께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 노동자의 삶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 지난 5월 31일, 서울 충무로 한 카페에서 만난 태준식 감독. ⓒ 김태준
 
그는 건국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마음은 늘 영화에 가 있었다. 군복무를 마친 후 교내 동아리 ‘햇살’에서 본격적으로 감독의 꿈을 키웠다. 그러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사회운동에 빠져들게 됐다. 대학 3학년 때 백기완 선거운동본부에서 막내로 카메라를 들었고, 대학졸업 후엔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러다 2003년부터는 한 프로덕션에 들어가 ‘영화 노동자’로서 밥벌이를 했다. 
 
“내가 찍은 다큐멘터리가 노동자를 대상화시키는 경향이 있지 않는지 고민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노동자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 몇 년간 프로덕션에서 일했죠.”
 
지금은 독립 다큐멘터리 피디(PD)로서, 만만치 않은 제작여건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난 2009년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모은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이후 다큐멘터리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졌지만 독립 다큐멘터리의 제작 형편은 여전히 어렵다. 학생들도 대부분 지상파 TV에 취업하길 희망한다. 그러나 태 감독은 자신의 일에 단단한 자부심을 보였다. 
 
“독립PD의 매력은 지상파와는 다르게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대한 자기 발언을 강렬하게 전달할 수 있는 영상이라는 무기로 갖고 있는 것이죠.”
 
독립PD의 경제적 여건 등이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도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특히 요즘 청년들이 무언가를 빨리 결정하려고 안달하고 한순간의 실패에 크게 좌절하고 낙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생은 길게 봐야한다는 게 그의 신조다. 
 
파업은 노동자들의 학교
 
인터뷰 당시 한창이었던 방송사 등 언론사 파업에 대해 ‘노동 다큐 전문가’인 태 감독은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었다. 
 
“파업은 '노동자들의 학교'라고 생각해요. 약자의 입장에서 고통을 겪으면서 자신이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다른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방송노동자들이 파업이라는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여의도를 벗어나 같은 노동자로서 다른 파업 현장과 연대를 해야 합니다.”
 
파업에 나선 언론인들이 쌍용차나 재능교육 노동자들과 연대할 수 있어야 하고, 그간의 보도에 대해 진지한 반성을 하고 현장에 돌아가야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했다면 그 후 많은 사람들이 계속 목숨을 잃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언론의 사회적 영향력과 사명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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