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영상'의 창의성과 불굴의 기자 정신 살려야

  ▲ 김정섭 성신여대   방송저널리즘스쿨 원장
보도전문채널 YTN의 노종면은 ‘기자 정신’과 ‘콘텐츠 차별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언론인이다. 그는 민주화가 일보 진전하느냐 과거로 크게 후퇴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이 시대, 이 사회에서 언론이 왜 존재하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 행동으로 보여 준 사람이다. 또 PD를 맡았던 시절 YTN의 대표상품으로서 채널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린 <돌발영상>을 창안해낸 주역이기도 하다.

그는 우선 올바른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를 실천하려고 애쓴 젊은 언론인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갖은 고초를 감내해야 했던 장기간의 ‘공정보도 쟁취 투쟁’을 이끌면서 방송 보도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고민을 진정성 있게 보여주었다.

방송사상 최장기 259일 투쟁 이끈 노조위원장

노종면 기자는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움직임이 가시화하자 전국언론노조 YTN지부장을 맡아 YTN 최초의 파업이자 국내 방송사상 최장기 투쟁(259일)을 이끌었다. 투쟁의 목적은 대통령선거 캠프에 가담했던 인물의 사장 취임을 반대하고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방송을 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자는 것.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였을 때 방송특보를 맡았던 구본홍씨가 2008년 7월 이른바 ‘날치기 주총’을 통해 사장이 되자 뉴스 앵커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공정방송 수호 및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에 적극 참여했다. 한 달 후 전임 노조위원장이 사퇴하자 “YTN에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도 한가하게 뉴스 진행만 할 순 없다”며 위원장 보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방송을 멈추지 않겠다며 파업 대신 ‘사장 출근 저지투쟁’이란 방식을 택했다.

절대군주제나 독재 치하가 아닌 민주사회에서 언론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이나 대통령선거 캠프에 가담한 인물이 언론사의 경영자나 편집 보도 책임자로 오는 것이 금기(禁忌)가 된지도 오래다. 언론사 경영진은 외부 압력으로부터 보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수호해야 한다. 그는 “이 같은 상식을 기반으로,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사람을 고집스레 사장으로 앉히려는 ‘몰상식’과 싸우겠다”며 투쟁을 이끌었다.

당시 평기자들이 주축이 된 YTN 노조는 시위 경험이 없는 신세대가 대부분인데다 YTN 창사 이래 이렇다할 노사 대립도 없었던 터라 ‘투쟁 이력'이 극히 미약했다. 그래서 얼마나 잘 싸울지, 얼마나 오래 버틸지, 이른바 ’언론운동권‘ 조차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들은 언론인의 자존심을 지키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순수함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투쟁 의지는 언론계를 놀라게 했다.

이들의 진정성이 전달되면서 시민들의 지지가 잇따랐다. YTN의 투쟁 기간은 1990년 KBS 노조가 노태우 정권의 KBS 장악에 맞서 싸운 36일을 7배나 웃돌았다. 시청자들의 지지가 이어지면서 이 기간 동안 YTN의 채널 인지도가 급상승하는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다. 시청자들은 내부가 좀 시끄럽더라도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보도채널이 훨씬 더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노종면은 당시 “자녀를 셋(11세, 9세, 6세)이나 둔 가장으로서 고민이 많았지만 ‘기자인 당신이 하는 일이 옳다’며 무한 신뢰를 보내준 아내 덕분에 큰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YTN 사측이 노 위원장을 포함한 6명을 무더기 해고하고 4건의 민·형사상 고발 조치로 대응했을 때도, 경찰이 아침 일찍 그의 집에 찾아가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긴급 체포했을 때도 그는 의연하고 담대했다. 

▲ 노종면 YTN 전 노조위원장 ⓒYTN 제공
‘자유언론상’ 등 영광 불구 해직 풀리지 않아

2009년 4월2일 YTN 노사가 형사고소 취하 등에 합의하면서 ‘미완의 파업’은 끝났다. 일시적으로 구속됐던 노 위원장도 법원 판결에 따라 석방됐다.  YTN사태는 현 정부의 언론 장악 기도에 대한 저항으로 상징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은 이에 대한 공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언론학자들은 YTN을 ‘2008년 한국 언론의 공정성 평가 부문 1위’로 선정했고, YTN 노조는 ‘안종필자유언론상’ 등을 받았다.

이후 ‘낙하산’의 주역이었던 구본홍 사장은 자진 사퇴했다. 그러나 노종면과 그의 동료 5명은 여전히 해직 상태다. 그가 제기한 해고무효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순수한 열정으로 취재 현장을 누볐을 그가 ‘저항의 아이콘’이 되어 ‘현장 진입’을 거부 당하고 있다. ‘저항 정신’ 외에도 언론인으로서 아주 많은 가능성을 보여 준 그로서는 한이 맺힐 일이다.     

노종면 기자는 법학을 공부한 뒤 1994년 YTN에 입사했다. 이후 사회부·경제부·국제부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를 맡았다. 2003년 5월부터 촬영기자들이 취재한 영상물 가운데 자투리를 활용해 <YTN 돌발영상>을 제작했다.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YTN의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지상파 등 기존 방송들은 뉴스를 제작할 때 대통령, 정치인, 재벌총수 등 권세가들에 대해이른바 ‘스타일 구기는 화면’ 대신 말끔한 모습으로 이미지를 살려주는 편집 기법을 썼다. 오랜 관행이었다. 그 관행이 ‘정극(正劇)’적 관점이었다면 노종면은 ‘퓨전 시대극’같은 포맷을 택했다.

기존 보도의 틀을 깨고 자투리 영상을 모은 뒤 풍자와 해학적 요소를 곁들여 전혀 새로운 콘텐츠로 발전시킨 것이다. 명태가 생태, 동태, 북어, 황태, 코다리, 명란, 창난 등으로 다양하게 가공돼 ‘버릴 것 없는 생선’이라 불리듯, 촬영해온 보도 영상물을 버릴 것이 없게 활용했고 나아가 ‘비틀기’와 ‘꼬집기’ 등이 가미된 제 2의 창작물로 승화시킨 것이다.

▲ 노종면 YTN 전 노조위원장 ⓒ뉴시스 제공
정치인과 관료 떨게 했던 ‘돌발 영상’ 인기몰이의 주역
 
<YTN 돌발영상>은 정보와 시사, 재미가 곁들여지면서 인기몰이를 했다. 정치인, 고위 관료들에게는 화제 거리이자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상처에 소금을 치는 듯한 ‘고약한 풍자’가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와 비슷한 ‘짝퉁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다른 채널에서 급속히 생겨났다. 방송사들은 <YTN 돌발영상>의 성공 사례를 보고 각종 영상물을 재활용하거나 다양하게 가공해서 부가가치 높은 2차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 같은 기발한 착상과 성실하고 꼼꼼한 일처리, 말쑥한 외모와 간결한 전달력 덕분에 그는 2005년 11월7일 뉴스 앵커로 발탁됐다. <돌발영상>을 진행했던 유현주 앵커와 함께 평일 오전 8시부터 2시간동안 방송되는 <뉴스 오늘>의 공동 앵커를 맡았다. 그는 전통적 뉴스 형식에서 벗어나 그날의 이슈를 쉽고 친절하게 풀어주며 시청자와 소통하는 방식으로 앵커의 역할을 변모시켰다. 시청자의 관심과 박수 속에 ‘인기 앵커’의 자리를 굳혀갔다. 그러나  뉴스의 독립성이 위협당할 때 그는 그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마이크를 놓고 투쟁의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떳떳한 방송’을 지키기 위해서.

창의적인 발상과 탄탄한 콘텐츠 제작 능력, 바른 저널리즘을 실천하려는 뜨거운 가슴을 지닌 그를 이제 제작 현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기자는 이래야 한다’며 그를 가르쳤던 선배들, 그리고 그가 가르쳤던 후배들과 함께 정직한 뉴스를 만들고 전달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YTN이 이런 결단을 하지 못한다면 시청자들에게 YTN을 봐달라고 할 자격이 없다. 누가 어떻게 물꼬를 터야할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김정섭 / 성신여대 방송영상저널리즘스쿨 원장, 전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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