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부채 고공행진 속 중소기업 돈 가뭄에 ‘헉헉’
[두런두런경제] 김광진 제정임의 경제카페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걱정에 이어 기업부채도 우려할 수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보험연구원 등의 분석인데요, 지난해 1분기의 우리나라 기업부채 총액이 국내총생산(GDP)의 107%로 전년 동기의 104%에 비해 3%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는 이 수치가 11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요. 국제적인 비교연구에 따르면 기업부채가 GDP의 90%를 넘으면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우리는 이 수준을 한참 넘어 위험한 수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기업부채는 97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증가해 2000년에 93%를 기록했다가 2004년 78%까지 떨어졌는데요, 2008년 글로벌위기 때 107%로 치솟은 뒤 2009년 110%, 2010년 104% 등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 우리나라 기업부채 수준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어떤 상태인가요.

제: 우리나라보다 심각한 나라들이 많긴 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들과 비교하면 2010년을 기준으로 기업부채 수준이 미국, 독일, 호주, 오스트리아, 그리스 등은 우리보다 낮고 일본, 영국, 프랑스 등 나머지 회원국들은 우리보다 더 높은 경우가 많아요. 아까 말씀드린 국제비교연구에서 기업부채는 GDP의 90%, 가계와 정부부채는 각각 85%를 넘을 경우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는 분석인데, 우리나라는 기업부채가 이미 임계치를 넘겼고 가계부채도 81%로 우려할 수위에 이르지만 정부부채는 33%로 비교적 낮은 수준입니다. 이 셋을 합한 총부채수준도 221%로 OECD의 다른 회원국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건전한 수준이고요.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 가계, 기업, 정부의 부채수준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제비교연구에 따르면 부채의 수준 자체보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가가 위기의 주된 변수가 되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이 부채가 급증하면서 위기에 빠진 경우죠. 그래서 우리나라도 급속히 늘어나는 가계, 기업, 정부 부채를 관리하는 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 우리나라의 기업들의 부채가 이렇게 크게 증가한 이유는 뭘까요. 

제: 최근 상황을 중심으로 보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유럽 등 선진국으로의 수출이 둔화하는 등 전반적인 경기가 나빠진 탓이 큽니다. 여기에 원유 등 국제원자재 가격은 올라가서 기업들의 전반적인 성장성, 수익성, 안정성이 모두 하락했죠. 기업들의 채산성과 현금흐름이 나빠지고, 주식시장 침체로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시중의 투자자금은 국채나 은행예금 등 안전자산에만 몰리면서, 기업들은 금융권 대출에 더욱 의존하게 된 것이죠. 또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한 정책도 기업들의 금융권 대출을 증가시킨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신용도 낮은 중소기업에는 자급유입 차단, 부채상환능력 악화

김: 기업들의 부채가 증가했을 뿐 아니라 기업들의 부채상환능력이 나빠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던데요.

제: 맞습니다. 기업들이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 즉 영업이익을 기업들이 내야 하는 이자비용으로 나눈 숫자를 이자보상배율이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기업들의 이자지급능력, 즉 부채상환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상장기업들의 이자보상배율이 4.17배를 기록해서 1년 전의 5.15배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만큼 부채상환능력이 악화했다는 의미죠. 또 대상기업의 31.2%는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을 만큼 상황이 나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수치는 전년 동기보다 5.1%포인트 증가한 것입니다. 이와 함께 기업들의 원금상환능력을 보여주는 영업현금흐름대비 차입금배율이라는 지표가 있는데요, 이 숫자는 높아질수록 원금상환능력이 약화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 숫자가 2010년 2.5배에서 2011년 2.9배로 높아져 그만큼 기업들의 원금상환능력이 나빠졌음을 보여줬습니다.

김: 그런데 기업들 중에서도 대기업들은 자금사정이 나은 편이고,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특히 크다는 지적이 있던데 구체적으로 어떻습니까.

제: 세계경제 불안이 지속하면서 시중 자금이 안전한 단기금융상품이 집중되고 중장기 회사채 발행이 거의 불가능해지면서 중견,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이 심각해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특히 불황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는 건설, 조선, 해운업종의 중견 중소기업들 사정이 어렵습니다. 요즘 건설업계는 중견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고요. 최근 들어 가계부채의 심각성이 부각되고 리스크관리가 강화되면서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대출을 더욱 조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2011년 한 해 동안 은행들의 대기업 대출은 전년 대비 30.3% 늘어난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2.4%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가 밝히고 있습니다. 주식과 채권 등 직접금융시장에서도 올해 상반기 대기업들이 29조 5천여 억 원의 자금을 조달해 전년 동기 대비 20.6% 줄어든 반면, 중소기업은 3389억 원을 조달해 전년 동기 대비 79.7%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소기업의 직접금융조달 감소 폭이 대기업의 4배에 이른 것이죠.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일부 수출 대기업들은 영업이익이 늘면서 현금을 쌓아놓고 있는데, 대기업 쪽으로는 더욱 많은 자금이 들어간 반면 자금 보릿고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에는 자금유입이 차단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현금 대신 어음 주는 대기업, 지난해 현금결제비율 오히려 감소

김: 한동안 대기업 중소기업 동반성장이 강조되면서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거래할 때 현금결제비율을 높이겠다고 앞 다퉈 약속했는데 이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요.

제: 맞습니다. 한동안 정부가 대기업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 대기업들이 협력중소기업에 대해 현금결제비율을 높이겠다고 공언했었죠. 그런데 중소기업중앙회가 1,363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상반기 현금성 결제비율은 68.9%로 지난해 하반기의 71.55%보다 오히려 2.65%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대기업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들이 현금으로 대금을 받은 비율은 66.5%로 중소제조업체 전체 평균보다 낮았습니다. 대기업들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업계에서는 유럽발 재정위기 등의 영향으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상당수 대기업이 현금을 확보하려고 중소기업들에 현금 대신 어음을 주는 관행을 고수한 탓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 실제로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얼마나 심각한가는 대출연체율이 얼마나 높은가로 나타나는데요, 최근 대출연체율 추이는 어떻습니까.

제: 원화기준으로 기업대출 연체율은 2009년 말 0.97%에서 2010년 말 1.13%로 올랐다가 지난해 1.10%로 소폭 떨어졌었는데 지난 5월 1.71%로 다시 크게 올랐습니다. 이를 중소기업과 대기업으로 나눠보면 대기업의 연체율은 지난 2010년 말 0.35%에서 지난 5월 말 0.97%로 증가했고, 중소기업은 같은 기간 1.30%에서 1.95%로 높아져 중소기업이 훨씬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의 올 3분기 기업자금사정지수는 87로 전 분기보다 3포인트가 더 떨어졌는데, 이는 중소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앞으로 더욱 나빠질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김: 유럽위기 등 세계경제의 어려움이 지속되는 가운데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더 나빠지면 연쇄부도사태와 금융시장 불안이 나타날 가능성도 높은데,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요.

제: 우선 기업들 스스로 재무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죠. 국내 기업들은 단기차입금 의존도가 높아서 금융시장 불안에 취약한데요, 자금이 필요할 때 가급적 장기자금으로 조달해서 단기부채 의존도를 줄이고, 일정 수준의 유동성을 미리 확보해서 외부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대기업 중소기업 관계에서 자금난으로 더 큰 타격을 받는 중소기업들을 위해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대기업들이 현금결제비중을 높이는 등 ‘공존’의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도 뺄 수 없습니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외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자본의 건전성을 높이고 대출자산이 부실해지지 않도록 면밀한 모니터링을 해야 할 것이고요, 감독 당국도 금융회사에 대한 건전성 감독을 강화하면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는 공시 강화 등 제도개선을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 이 기사는 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8월 8일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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