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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서핑이 뭔데? 호텔급 숙소가 7천원
[청춘경제119] 우리가 원하는 숙소 우리가 마련한다
2012년 08월 07일 (화) 23:52:23 이보람 기자 kanyoi@naver.com

이맘때쯤 지방대학 기숙사 밤 풍경은 적막하다. 학생들이 없으니 불 꺼진 건물만 덩그러니 서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충북 제천 세명대학교 기숙사인 세명학사에는 올 여름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4일 찾아간 기숙사는 호텔급으로 깨끗한데도 벽에 붙어있는 방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소녀시대 Room’, ‘2PM Room’… 흰 도화지에 색연필로 임시문패를 달아놓고 벽에는 제천시 교통편과 근처 여행지 정보가 붙어있다. 

   
▲ 청년 서포터즈들이 만든 '청춘 숙소'의 문패는 인기 아이돌 이름으로 꾸며졌다. ⓒ 이보람

‘돔서퍼님 환영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따라가다 C701호 문을 여니 투숙객을 맞는 호텔리어(Hotelier)처럼 반갑게 맞이하는 이들이 있다. 이곳이 바로 7월21일부터 2주간 존속되는 사회적 기업 ‘돔서핑 컴퍼니’ 사무실이다. ‘돔서핑’(Dorm-surfing)이란 방학 중 여행하는 젊은이들에게 대학기숙사를 개방해 싼값으로 안전하고 깨끗한 숙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대학 기숙사에서 하룻밤 어때요?
 
방은 4인1실 6개를 개방하고, 숙박비는 1박에 일반인 1만원, ‘내일로 티켓’을 가진 청소년 7천원이다. '내일로 티켓'은 25세 이하 청소년이 새마을호, 누리로 등의 자유석이나 입석을 7일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기차여행 상품이다.
 
이용자들이 ‘청춘 숙소’라고 부르기도 하는 돔서핑 서비스는 김태연(23·성신여대) ‘돔서핑 컴퍼니’ 대표와 서포터즈(도우미) 18명이 함께 운영한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지원한 서포터즈들은 3~4인씩 5개 조를 구성해 3박4일간씩 기숙사를 관리한다. 체크인·아웃 관리부터 주제가 있는 밤을 위한 이벤트를 만드는 것도 그들 몫이다. 어울림을 주제로 한 ‘파자마 조’를 비롯해 ‘막걸리나 조’, ‘숙대위 조’, ‘불가마 조’ 등이 있었고, 마지막 ‘카페더블루 조’는 아침마다 메이크업과 모닝콜 서비스를 제공했다.
 
저녁에는 여행가 모임인 ‘여행견문록’의 청년작가들 강연도 있었다. 여행기 출판을 통한 개인 브랜드 만들기, 국내여행 비법 등 다양한 주제로 이뤄진 이번 강연은 ‘캠퍼스 밖으로 행군하라’의 저자 조명화(31) 씨를 비롯한 작가 6명의 재능기부로 이뤄졌다.

   
▲ 여행객들은 밤마다 모여 이야기를 나눴고 돔서핑에 대한 의견도 교환했다. ⓒ 이보람
 
술 없어도 수다가 있어 즐거운 ‘청춘 숙소’

돔서핑 서비스의 장점은 여행자끼리 어울리는 데 있다. 밤 9시마다 운영진방에서는 이용자들과 함께하는 ‘수다의 장’이 펼쳐진다. 일상적 대화를 시작으로 여행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남녀 인원이 비슷한 날엔 ‘방팅’도 한다. 기숙사라 흡연과 음주가 금지되지만, 이야기만으로도 밤을 지새울 수 있는 게 청춘 아니던가.
  
지난 3월부터 돔서핑 서비스를 준비해 온 김태연 씨는 올해 초 해외탐방을 하며 영국ㆍ프랑스 등의 대학에서 방학 중 비어있는 기숙사를 여행자들에게 개방하고 그 수익을 장학금으로 주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청춘 숙소'로 이용된 세명대학교 기숙사 '세명학사' ⓒ 세명대학교
 
그녀는 영국 옥스퍼드대 등 다섯 곳 사례를 조사해 만든 보고서를 들고 청와대와 서울시청 등 스무 곳을 찾아가 아이디어를 발표했지만 ‘좋은 생각’이라는 말뿐 정작 실현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었다. 결국 김 씨는 1인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 하지만 숙소 선정부터 쉽지 않았다. 국내에서 처음 진행되는 낯선 서비스였기 때문이다. 전국 기차역 근처 대학 20여 곳에 연락했지만 답변이 온 곳은 세명대 한 곳뿐이었다.
 
“처음엔 시범 숙소를 네 개 정도 하려고 했는데 다른 곳에서는 연락이 안 와서 우울해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세명대에) 와보니 시설이 좋고 주위 경치도 좋아서 ‘아 여기다’ 생각하고 바로 진행하게 됐죠.”

숙박업에 필요한 예약 시스템이 없어 구글 문서도구를 활용해 수동으로 예약작업을 하느라 한 달 넘게 외출이 쉽지 않았고 계약을 진행하는 데도 서툴렀다. 하지만 일이 진행될수록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생겨 무리 없이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 어머니 커뮤니티 ‘품앗이 파워’ 회원들은 전국에서 손님들에게 빌려줄 이불을 보내줬고, 돔서핑 서비스를 기다렸던 네티즌들은 SNS나 카페를 통해 적극 홍보에 동참했다. 

   
▲ 여행자들에게 개방된 '세명학사' 내부 모습 ⓒ 이보람

”값싸고 깨끗하고 펜션보다 더 좋아” 

 
260명이 묵었던 ‘청춘 숙소’는 성수기마다 치솟는 숙박료가 부담스러운 여행객들에게 좋은 기회였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유스호스텔과 게스트하우스가 충분치 않아 지역마다 ‘찜질방’을 찾아 다녔던 ‘내일로’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싸게 숙소를 제공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숙소를 찾다가 ‘영월역’ 카페를 통해 이곳을 알게 됐다는 장한슬(26) 씨도 ‘내일로’ 여행자다. 싼값에 크고 깔끔한 숙소가 좋았다는 장 씨는 “아무래도 기숙사이고 정비도 덜 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하시는 분들도 친절해서 편하게 잘 이용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온 정유진(20) 씨도 “인터넷 카페에서 추천 글 보고 왔는데 시설도 좋고 가격이 싸서 오히려 펜션보다 좋다”고 말했다.
 
2주간 숙소 운영을 마친 김태연 씨도 이번 경험에 만족했다. 준비 과정은 힘들었지만, 여행자들끼리 만나는 것 자체를 즐겼던 이용자들과 교류하면서 얻은 것이 더 많다는 얘기다. 김씨는 이번에 얻은 노하우를 이용해 겨울 방학에는 ‘청춘 숙소’ 2호점도 개설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돔서핑은 해당 학교 학생들 주최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 국내 처음으로 돔서핑 '청춘 숙소'를 운영한 김태연 대표. ⓒ 돔서핑 블로그(좌)/이보람(우)

“제가 운영하면서 느꼈던 점은 학교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거예요. 지역 안내도 학생들이 더 잘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여기 일하는 분들 중에는 학교도 한번 둘러보지 않은 분들이 많거든요. 궁극적으로는 학생회나 학교에서 자원봉사로 돔서핑을 운영하면서 거기서 나는 수익을 장학금으로 지급하면 좋지 않을까......”
 
돔서핑의 최종 목적은 각 지역 대학들이 학생들 숙박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방학 중 유휴공간인 기숙사를 개방하고,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학교는 기숙사 건물 수리비용이나 장학금을 마련하고, 홍보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제천음악영화제도 세명대 기숙사 개방
 
세명대학교 기숙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 기간에도 숙소로 이용된다. ‘청춘 숙소’였던 세명학사를 뺀 나머지 기숙사가 영화제 관람객들에게 개방된다. 제천음악영화제 주최측은 8월 10일부터 14일까지 ‘바람불어 좋은 밤’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 또는 ‘원 섬머 나잇’ 공연 티켓과 함께 세명대 기숙사 또는 청풍 리조트 중 한 곳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기숙사를 이용하면 1박 가격은 영화코스 23,000원, 공연코스 33,000원이다. 제공되는 기숙사 건물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지만, 리조트 이용 비용(각각 50,000원, 60,000원)의 절반 수준으로 싸다.
 
여수엑스포도 행사 지역과 가까운 전남대학교와 순천대학교 기숙사를 방학 동안 숙박시설로 이용했다. 비교적 싼값으로 하루 약 1500명을 수용하며 부족한 숙박시설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었다. 이런 국제행사에는 단기간에 많은 인원이 몰려 숙박시설이 매우 부족해진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만 하더라도 숙박예정인원은 3만5천명인데 호텔수용인원이 10%인 3천7백명밖에 안돼 참가자들 불만이 컸다.
 
이처럼 방학 중 빈 기숙사를 숙소로 활용한다면 여행자들은 여행비용의 태반을 차지하는 숙박비를 아낄 수 있고, 관광객이 몰리는 지역은 시설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양쪽에 이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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