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감히 누가 김해숙을 '국민엄마'라 부르나...그녀는 진화 중

이 배우,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 앳된 소녀 배우가 성인 연기자가 됐다는 말이 아니다. 영화 <도둑들>의 배우 김해숙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때 업계를 주름잡았던 도둑 '씹던 껌', 은퇴 후 자식들에게 돈을 바쳐가면서도 욕을 먹어야 하는 독거노인 직전 상태였던 이 캐릭터가 김해숙을 만난 순간 여자가 됐다. 업계에 복귀해 큰 작업에 참여하게 된 씹던 껌은 남자, 그것도 호남에 매너까지 갖춘 잘나가는 홍콩 도둑 첸(임달화 분)과 사랑을 나누는 인물이었다.

▲ 영화 <도둑들>에서 씹던껌 역 배우 김해숙이 2일 오후 서울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고혹적인 미소를 짓고 있다. ⓒ 이정민
 
"영화 보시고 멋있어졌다는 말을 많이 해주셨어요. 여자로서 매력이 나온 거 같다고요. 특히 마지막 장면에선 짧은 순간의 표정이지만 수 만 가지 감정이 보였다고 하신 분도 있었어요. 여배우로서의 매력을 더 표현 못하고 나이가 들 수 있었는데 이 시점에 그 모습을 보일 수 있었네요."

변신, 또 변신...김해숙에게 <도둑들>은 불꽃같은 사랑 이야기였다
 
흔히 김해숙을 두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었다. '국민엄마'라는 별칭이다. 안방극장에서 온갖 엄마 역할은 도맡았던 그녀는 대중의 기억에서 여자가 아닌 엄마로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한 가정의 엄마이기 전에 그녀도 배우였다. 당연히 변신과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욕구는 있었다고. 김해숙은 스스로 운이라고 표현했지만 알게 모르게 그녀는 자신의 캐릭터 영역을 넓혀오고 있었다. 이미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2009)를 통해 그 가능성을 증명했다.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아마도 변신 김해숙의 결정판이라 봐도 좋겠다.

"항상 변신을 부르짖었는데 <박쥐>의 라 여사 하고 이번 역은 또 완전히 다른 거예요. 씹던 껌을 두고 지인 분들에게 진짜 깜짝 놀랐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특히 마지막 촬영 후 1년 동안은 씹던 껌으로 살았어요. 감히 이 나이 될 때까지 제가 해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말해도 될 거 같아요. 살면서 영화 같은 사랑을 못해봤어요. 근데 이번 영화에선 찍는 내내 그 여자의 감정을 느꼈죠. 행복했고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특히 총격전 당시 촬영에서는 이미 난 내가 아니라  '씹던 껌'이란 여자였죠."
 
그러고 보니 <박쥐>의 라 여사와 <도둑들>의 씹던 껌에게 치명적이게 매력적인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눈물 한 방울의 힘이었다. 온갖 감정이 뒤섞인 가운데서도 두 캐릭터는 끝까지 크게 움직이지 않다가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이에 김해숙은 "그 눈물 한 방울은 지금껏 내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었던 그 눈물보다 훨씬 진한 눈물이었어요"라 말했다. <도둑들>에서의 김해숙을 유심히 본다면 그녀 말의 의미를 아마 알 수 있을 것이다.
 
김해숙과 떼어놓을 수 없는 배우, 임달화

씹던 껌의 사랑이 완성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녀가 이 남자, 첸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홍콩의 유명한 액션 배우 임달화 말이다.
 
"운이 좋은 거죠. 임달화씨가 접한 첫 한국 배우가 나였으니까요. 최동훈 감독님에게 정말 중국 배우를 쓸 건지 물었는데 그렇다고 하셨어요. 그 사람이 임달화씨인지 몰랐던 거죠. 처음에 임달화란 이름을 얼핏 들었는데 동명이인인줄 알았다니까요. 바로 포털을 뒤지며 그에 대해 찾아봤죠. 예전 모습을 지금도 그대로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 2일 오후 서울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배우 김해숙. 영화 <도둑들>에서 씹던껌 역을 맡아 인상깊은 연기를 선보인 김해숙이 고혹적인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 이정민

바로 폭풍 다이어트에 들어갔단다. 이래봬도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엄마 배우가 임달화에 비했을 때 모자라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물론 체중을 좀 줄여야겠다는 최동훈 감독의 주문도 있었던 터였다)
 
"다행히 임달화씨가 인간적으로도 좋은 분이었죠. 나라와 언어는 달라도 배우들의 열정은 똑같다 생각해요. 첸을 완벽히 소화하려던 임달화씨에게서 씹던 껌을 정말 사랑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어요. 평소에도 제게 "달링, 달링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캐릭터의 감정을 유지하더라고요. 또 씹던 껌 발음을 잘 못해서 절 '추잉 껌'이라고 불렀어요(웃음)."
 
그래도 김해숙의 '엄마 역할'은 특별하다

김해숙이 처음부터 엄마 전문 배우였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 역시 한창 멜로 배우로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1986년 방송했던 <꾸러기>라는 드라마에서 처음 엄마 역할을 맡은 이후 정말 지금의 '국민엄마'에 자리하게 된 셈이었다.
 
"당시엔 여배우의 수명이 짧았던 거 같아요. 서른이 넘으면 끝이었죠. 전 그때 결혼을 이미 했기에 엄마 역할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민우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내가 그의 엄마로 나왔죠. 그게 첫 엄마 역할이었어요. 지금은 민우를 보면 징그럽죠(웃음). 그나저나 민우는 나에게 잘해야 해요. 어릴 때 모습부터 다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젠 '민우야!' '민우씨!'라고 불러야만 할 것 같은데(웃음)."
 
맞다. 분명 그는 여자인 모습으로 관객들 앞에 서는 대변신을 했지만 동시에 현실에선 엄마다. 이 말은 언제고 다시 엄마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거다. 김해숙에게 엄마라는 캐릭터는 어떤 모습일까. 

▲ 영화 <도둑들>에서 씹던껌 역 배우 김해숙. 2일 오후 서울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며 미소를 짓고 있다. ⓒ 이정민
 
"엄마 역을 계속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질까봐 반대로 해석하려고 애썼어요. 같은 엄마지만 또 수많은 엄마기도 하잖아요. 이 엄마든 저 엄마든 따지고 보면 김해숙이 하는 엄마는 타성에 젖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선택의 여지가 엄마밖에 없다면 같은 엄마를 표현하지 않겠다고 나름 정한 거죠. 소매치기 엄마든, 직장인의 엄마든 세상엔 수많은 엄마가 있어요. 하지만 결론은 다 엄마고 성격은 비슷할 수 있지만 거기서 다른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제가 타성에 젖어 연기를 했다면 배우를 아마 그만뒀을 겁니다. 배우로서 오래 일해도 나이와는 상관없는 식지 않는 열정이란 게 있어요. 화가 나는데 그걸 참으면 병이 되듯 타성에 젖어 달려왔다면 다른 방법은 못 구했겠지요."
 
그런 면에서 김해숙의 엄마는 특별하다. 온갖 어려움을 겪은 뒤에 만날 수 있었던 <도둑들>은 분명 김해숙에겐 또 다른 영역의 확장으로 남을 게다.

* 이 글은 오마이스타 이정민 기자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재학중인 이선필 기자가 오마이스타에 보도한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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