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선수 출신 축구해설가 김태륭

2012년 런던올림픽 무대를 누비고 있는 선수들은 메달을 따지 못해도 이미 스타라고 할 수 있다. 국가대표로서 세계적 경쟁자들과 겨룬다는 것 자체가 ‘바늘구멍’을 통과한 걸출한 재목이란 뜻이니까. 그렇다면 그 무대에 오르지 못한 나머지 선수들은 실패한 사람들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원하던 분야에서 ‘최고’가 되지 못해도 꿈을 향해 달리는 멋진 인생이 계속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다. 축구선수 출신 해설가 김태륭(29)도 그런 경우다.

그는 촉망받는 축구선수였다. 파리특파원으로 일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간 프랑스에서 명문구단인 파리 생제르맹의 유소년 팀에 들어가 축구를 시작했고, 고려대학교를 거쳐 2006년 프로구단 전남드래곤즈에 입단했다. 하지만 대학시절 잦은 부상의 후유증이 쌓였고 코치와의 불화까지 겹쳐 정상적인 몸상태가 아니었던 그는 케이(K)리그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이적을 생각하고 있던 그는 뜻밖의 기사를 접하고 경악했다. 구단이 그를 은퇴시키고 유소년지도자로 선임했다는 뉴스였다.

“한마디 상의 없는 일방적인 결정이었죠. 하지만 하라니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코칭스태프 중 막내였는데, 일과 끝나고 코치들끼리 술 마시러 가면 뒷정리를 도맡아 했어요. 새벽 3시쯤 겨우 숙소에 들어가면 울었어요.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걸까 하면서 말이죠. 말 그대로 ‘멘붕(멘탈붕괴/충격으로 무너진 정신상태)’이었어요.”

▲ U-17 월드컵 조직위 운영팀원으로 활동했던 당시의 김태륭(가장 왼쪽). ⓒ 김태륭

그는 유소년 팀의 코치자리를 약 1년 만에 그만두고 2007년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U-17)월드컵조직위 운영팀원으로 일했다. 또 2008년에는 그해 출범한 케이쓰리(K3)리그(현 챌린저스리그. 아마추어 축구리그 중 최상위 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인 ‘부천에프씨(FC)1995’의 간판선수 겸 코치로 활약했다. 그 해 풋살(실내축구) 국가대표팀에 뽑혀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다. 대학 시절부터 활동한 아리수리그(서울지역 아마추어 축구리그)에 속한 구단 ‘강남 티엔티(TNT)'에서는 선수 겸 감독을 맡았다. 

빠르면 초등학교, 늦어도 중학교 때부터 공부는 제쳐놓고 운동에만 몰두해 온 우리나라 프로스포츠 선수들이 은퇴한 후 선택할 수 있는 진로는 크게 두 가지다. 지도자가 되거나 자영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대부분 안정적인 지도자 자리를 선호하지만 모두에게 길이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서는 그가 주어진 지도자의 생활을 이어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다양한 모색 끝에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해설가가 되기로 한 것이다.

축구 팔방미인, 마이크 앞에 앉다

그는 지난 3월부터 스포츠전문채널인 에스비에스 이에스피엔(SBS ESPN)에서 잉글랜드 프로축구리그(프리미어리그)의 해설을 시작했다. 선수 출신인데다 지난 2년간 한국 내셔널리그(실업리그) 해설로 쌓은 ‘내공’을 인정받아 발탁됐다. 선수로 뛴 경험을 살린 상세한 설명으로 시청자 반응도 긍정적이다.

해설가로 변신할 기회는 지난 2008년 우연히 찾아왔다. 프로축구 선수를 그만 둔 뒤 한동안 그의 꿈은 축구행정가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지도자는 한 팀을 바꿀 수 있지만, 행정가는 축구판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활동했던 팀마다 이런저런 행정업무를 도맡아했고,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다. 그러다 예기치 않은 만남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 지난 4월 8일, 스포츠전문채널 축구해설가로 처음 TV에 등장한 김태륭. ⓒ SBS-ESPN

“인터뷰했던 잡지 기자가 한준희 케이비에스(KBS) 축구해설위원을 소개시켜줬어요. 한동안 그냥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가 어느 날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저녁 7시에 시작한 자리가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이어졌어요. 축구 이야기만 하면서 말이죠. 그 자리를 계기로 친해졌고, 얼마 후 한 위원의 추천으로 프랑스 프로리그 경기 해설에 투입됐어요.”

김 위원은 현재 비정규직이다. 프리미어 리그가 끝나는 5월부터 다음 시즌이 시작하는 8월 말까지는 쉬어야 한다. 때문에 비정규직 해설위원들은 대부분 다른 생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좋은 자리를 포기하면서 해설에 ‘올인’했다.

“작년 말에 모교인 고려대학교 코치가 됐는데요, 해설과 코치직을 병행할 경우 양 쪽 모두 충실하기 어려울 것 같았어요. 고민 끝에 코치직을 그만 두겠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렸죠. 지금까지도 정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현장감 죽지 않은 해설자가 될 터 

축구 해설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는 해설에 지장을 주지 않는 다른 일을 찾았다. '레퀴프 티알세븐(L'EQUIPE TR7)'이라는 개인코칭 아카데미의 대표로서 초중고 선수들을 대상으로 기술 훈련과 심리 트레이닝을 하는 일이다. 학생선수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축구해설계는 양분되어 있다. 선수 출신으로 현장감은 있지만 최신 축구지식이나 언어 구사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해설위원들이 한편에 있다. 반면 유럽 축구열풍을 타고 등장해 축구지식을 두루 꿰고 있지만 현장감은 부족한 사람들도 있다. 김 위원은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해설위원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활약하는 현직 지도자들 못지않은 현장감과 지식을 말로 풀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년 안에 ‘힐링캠프’에 출연할 거예요.(웃음)”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말은 “절박함을 가져라”

어린 시절 프랑스에 살았고, 브라질 축구유학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김 위원은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영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하다. 전남드래곤즈 소속일 때 대학원생이 되었을 만큼 공부 욕심도 많다. 체육계가 추진하는 ‘공부하는 엘리트스포츠인’의 모범사례로 뽑아도 괜찮을 법 한데, 그는 선수 개인의 노력만 강조하기보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김태륭 SBS-ESPN 해설위원. ⓒ 임종헌

“엘리트선수를 추구하면서 공부까지 잘 하기는 어렵잖아요. 제가 있었던 파리 생제르맹 구단의 유소년팀 같은 경우에는 정규수업에 무조건 참여하되, 불가피 할 경우에는 선생님이 구단 쪽으로 와서 보충수업을 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요. 진짜 엘리트로 키우고 싶다면 가능한 범위 안에서 특별하게 관리해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는 후배 선수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절박함’과 ‘자기 주도적인 삶’이다.

“프로에 있을 땐 절박함이 없었어요. ‘에이, 경기 못 뛰면 행정하면 되지’ 이랬어요. 끝날 때쯤 돼서야, 부천에 와서야 그게 생겼어요. 자기가 서 있는 자리는 정말 소중한 거예요. 정말 힘들게 차지한 자리인데, 거기에 서는 순간 잊는 선수들을 많이 봤어요. 그러다간 얼마 못가 자리를 뺏길 수도 있는 데도요.”

아픈 경험을 통해 김 위원은 삶의 주도권을 찾았다. 유소년 지도자에서 행정가로, 행정가에서 해설위원으로 목표는 바뀌었지만, 선택은 본인의 몫이었다.

그는 잠깐 나태해졌던 순간 “하고 싶은 것 하시면서 사시는 것 같아요”라는 트위터 멘션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게 큰 축복임을 절감한다는 김 위원은 ‘현장감과 지식을 겸비한 최고 해설가’의 꿈을 향해 전진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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