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눈물' 김현철 PD, '그들의 시각'을 연출하다

"다큐멘터리는 또 하나 실제를 만들어내는 것"

▲ 15년 다큐멘터리 경력을 지닌 김현철 PD가 'another reality'란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 이태희
일산 MBC 드림센터에 들어서자 눈에 띈 것은 <아마존의 눈물> 극장판 포스터였다.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기록인 20% 이상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의 포스터를 보면서 그 열풍이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으로 이어지는 것을 실감했다. <아마존의 눈물>은 지난 3월 26일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작품상(교양부문)을 받았다. 저녁에 시상식이 있던 날 낮 시간에 <아마존의 눈물>을 연출한 김현철 PD의 특강이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어너더 리얼리티(another reality)'입니다. 인간 김현철이 어떤 하나의 실제를 보고 듣고 심장으로 느끼며 걸러진 또 하나의(another) 대상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또 다른(another) 하나의 실제를 갖고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입니다."

김 PD가 'another reality'를 특강의 주제어로 던졌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가 '없는 실제'를 갖고 하나의 실제를 만드는 것과 달리, 다큐멘터리는 '있는 실제'를 대상으로 한다"고 했다. 그는 다큐멘터리가 '하나의 실제에서 또 하나의 실제(another reality)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난 소름 돋는 이야기에 달려든다"


"‘another’를 위해서 소름 돋는 이야기에 달려듭니다. <오마이뉴스>에서 '군대 영창에 있었던 사람이 10년이 지나서도 정신분열 증세를 겪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무작정 6mm 카메라를 들고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사례를 통해 한국 남성들이 군대에 안 갈 때 행복해질 수 있는 현실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간접적으로라도 모병제를 사회에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 강의 사이사이에 김현철 PD 자신이 연출했던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있다. ⓒ 이태희
그는 자신이 연출했던 <PD수첩> '고문에 갇힌 10년, 권대현을 아십니까'(2002년 1월 방영) 편을 보여주면서 그에게 다가왔던 ‘소름’을 전했다. 권대현 씨는 군대 영창에서 10개월을 보낸 뒤 10년이 지나도록 정신적 유폐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권 씨가 자신의 얼굴을 청테이프로 칭칭 감은 채 방에서 나가지 않고 생리현상도 방 안에서 해결하는 모습이 영상에 나왔다. 김PD는 "누구든 각자에게 소름 돋는 이야기가 있다"며 "그 소름 돋는 이야기는 'another'가  된다"고 했다.

“소외된 사람 얘기 들어주는 게 내 출발점”

"PD는 분명히 자기 목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PD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reality'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부지런히 들으며 사실을 확인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는 다음으로 <PD수첩> '검사마다 달라지는 아빠'(2001년 10월 방영) 편을 보여주었다. 남편이 사망하면서 상당액의 보험금을 받게 된 젊은 엄마와 어린 딸이 있었는데, 남편의 시댁에서는 아이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며 보험금을 가져가려 하는 내용이었다. 서울대 법의학교수는 친자식이 아니라는 검사결과를 내놓았지만, 김 PD는 검사방법에 의문을 품었다. 아이의 아버지 시신을 화장해 유전자 정보를 전혀 얻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친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유전자를 채취해 아버지의 유전자 정보를 확인해야 했다. 

"친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 아버지의 실제 부모라는 전제가 있어야 검사가 유효합니다. 그런데 법의학계 최고 권위자인 서울대 교수님은 이것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 그 동네로 직접 가서 동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 집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과정이 방송으로 나가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변호사의 말을 따라 그 부분을 전부 뺐다고 했지만, 김 PD는 '부지런한 의사소통'을 강조했다. 그는 "PD가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반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연구소에 의뢰해 ‘친자가 맞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김 PD가 'reality'를 만들어가는 방식이었다.

"그 아이 엄마에게는 자신의 이야기 들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방송국에서 사람이 와 직접 눈을 바라보며 자기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그는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 얘기를 직접 듣는 것'을 PD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가 아마존에 간 것도 '듣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마존의 주인은 원주민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마존에서 일어나는 개발에 과연 원주민들의 목소리가 들어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김 PD는 "아마존의 생태계와 생물, 원주민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직접 듣겠다는 마음으로 아마존에 갔다"고 했다.

주관적 시각을 통해 드러낼 수 있는 객관성

"내 주관이 가장 객관적입니다. 다만, 내 의사소통 방법에 대해서는 평가를 받겠습니다."

김 PD는 <W> 1회 방송분이었던 '절반의 기억, 2002년 6월 13일'(2005년 4월 방영)을 내놓으며 '언론의 객관성과 주관성'이란 논점을 제시하였다. 방송내용은 김 PD가 '미선, 효순이 사건'의 장갑차 운전병 '마크 워커'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이 작품의 시점은 객관적인 관찰자가 아닌 김 PD 자신의 시각이었다. 공항에서 몸수색을 받으며 기분이 언짢음을 드러내고, 김 PD 자신이 지도를 찾아보고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 그려졌다.

▲ 김현철 PD가 연출하여 국제시사프로그램 의 첫 회 방송으로 나간 <절반의 기억, 2002년 6월 13일> ⓒ iMBC

"마크 워커의 변호사 비용을 대주었던 재미교포가 '우린 미국인입니다'라고 하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크워커가 만약 유죄 판결을 받아 죗값을 조금이라도 치렀다면 그렇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을 텐데...... 그도 어쩌면 한미관계의 피해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PD는 취재 과정을 말하면서 "이 사람들은 절반만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절반의 기억’이라는 제목이 그렇게 나왔다. 그는 이 작품 안에서 객관이 아닌 주관의 시각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또 하나(another)를 제시하기로 했다. 주관의 시각을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그의 작업방식이 흥미롭게 여겨졌다.

▲ 마지막에 다시 ‘another'를 강조하고 있는 김현철 PD ⓒ 이태희

"의사소통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의사소통에는 시각이 들어가야 합니다. 자기만의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 '시각'은 김 PD가 계속 언급했던 ‘another’를 뜻했다.

"아마존의 벌목현장에서 나무 한 그루가 몰락한다는 의미를 시청자도 같이 느끼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나무둘레에 줄을 감아서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그 카메라는 나무가 베일 때 나무의 시각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another'가 되어 시청자에게 다가갑니다."

김 PD는 'another'를 위해 아나콘다 등에도 카메라를 매달았다고 한다. 그는 "‘another’를 만들 수 있는 부분은 카메라 각도, 형식 파괴, 주관/객관의 전환, 이야기의 방향성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PD의 스트레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PD는 지겹지 않으면서도 어려운 직업입니다. 상상하기 힘든 강도의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PD 일을 잘하기 위해서 파우스트처럼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까지 팔겠다고 말하는 피디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에도 ‘another’가 담겨 있었다. ‘another’에는 경이와 묘미가 있으니 지겹지 않지만, 항상 ‘another’를 찾아가는 것은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가는 길이다. 그것이 PD의 숙명처럼 느껴졌다. 그 말을 전하는 김 PD의 목 주위에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눈에 띄었다. 아마존에서 벌레에 물려 난 그 상처에는 영혼을 팔기 위해 고민하는 파우스트가 아니라 ‘another’를 향해 길을 걷는 순례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조형진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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