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안철환 '시골똥 서울똥'

물과 흙, 운명의 갈림길에 선 똥

요즘은 똥을 눌 때마다 어쩐지 죄책감이 든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사는 서울의 아파트에서 볼일을 본 뒤 변기 레버를 잡는 순간 마음이 찜찜해진다. 저 똥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한 적이 없었는데, 그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 안철환 귀농운동본부 도시농업위원장의 <시골똥 서울똥>. ⓒ 들녘

안철환 귀농운동본부 도시농업위원장이 쓴 <시골똥 서울똥>은 똥의 두 가지 종착역을 알려준다. 물과 흙, 둘 중 어느 곳을 향하느냐에 따라 똥의 운명이 극적으로 갈린다. 수세식 화장실에서 태어난 똥은 바다로 가 영원한 죽음을 맞는다. 우리가 변기 레버를 한 번 내릴 때마다 5~17리터의 깨끗한 물이 소비된다. 물과 섞인 똥은 구더기가 번식하고 병원균이 들끓는 쓰레기로 전락한다. 

똥은 퇴비가 되어 흙으로도 간다. 퇴비로 부활한 똥에는 구더기가 끼지 않을뿐더러 병원균을 죽이는 좋은 미생물들이 증식한다. 그러니까 똥은 아주 귀한 거름 재료다. 수세식 화장실은 똥이라는 유용한 자원을 쓰레기로 바꾸는 몹쓸 장치인 셈이다. 

순환의 상징, 똥

우리 조상들은 똥을 흙으로 되돌려 보내고 이 흙에서 음식을 얻는 순환의 삶을 살았다. 땅에 뭍은 용기에 똥이 차면 퍼내는 푸세식 뒷간, 왕겨나 재를 똥과 섞는 잿간, 똥을 돼지에게 먹이는 통시, 주로 절에 지어진 해우소 등 종류도 다양한 뒷간에서 똥은 퇴비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뒷간 문화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달동네처럼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서 뒷간이 좁고 습한 곳으로 밀려났다. 결국 도시의 뒷간은 오염의 온상이자 비위생적인 장소의 대표가 됐다. 

88서울올림픽을 개최한다는 자부심에 무척이나 들떠있던 시절은 서양 것은 모든 게 다 좋아 보이던 열등감의 시대이기도 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김치나 마늘 냄새보다 감추고 싶었던 것은 비위생적인 재래식 변소였다. 정부는 올림픽을 준비하며 그때까지만 해도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던 전국의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꾸어 버렸다. 

순환이 끊어지자 화학비료가 태어났다

▲ <시골똥 서울똥>을 쓴 안철환 대표. ⓒ 박경현

수세식 화장실이 보편화하면서 먹고 싼 똥을 땅으로 돌려보낼 길이 막히자 땅이 우선 메마르기 시작했다. 먹은 만큼 다시 땅에 돌려주지 않으면 땅은 이내 황폐해진다. 흙에서 얻은 것을 다시 땅으로 돌려주는 과정의 핵심이 똥이다. 똥과 음식물 찌꺼기, 땅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잡초들까지 모두 다 돌려주면 땅은 영원한 자원순환의 바탕이 된다. 

그러한 순환 없이 영양분이 빠져나간 땅에서 계속 농사를 지으려면 뭔가 다른 것을 보충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화학비료였다. 땅을 계속해서 쓰고 싶으면서도 똥을 다시 땅으로 되돌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화학비료를 만들어냈다. 

화학비료에 함유된 질소가 바다로 흘러들면 일명 데드존(Dead Zone)을 만든다. 산소가 적어 생물이 살 수 없는 지역이다. 과도한 질소는 온실가스를 만들어내 기후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비료를 반복해서 사용하면 토양 내 크고 작은 생물을 죽여 결국 지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그 외에도 불임과 유산, 천식, 아토피 등 화학비료가 인간에게 주는 피해는 셀 수 없이 많다. 

돈 들여 거름을 버리는 사람들

우리가 먹는 농작물을 키울 때 똥을 거름으로 쓰기도 하지만 그 똥은 대부분 동물의 똥, 곧 축분(畜糞)이다. 문제는 대부분 축분이 공장식 축산의 부산물이어서 항생제, 중금속, 호르몬제 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람 똥이 거름으로 쓰기에 낫다고 말한다. 특히 도시사람은 고기와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먹고 매일 스트레스 과잉 속에 사니, “서울 사람 똥은 거름도 못 만든다”는 말도 있지만, 사람 똥은 사실 영양분이 풍부하다. 사람은 먹은 것의 30% 정도만 소화하고 나머지는 배설한다. 또 농약 등으로 키운 농작물과 항생제를 맞은 동물의 고기를 먹는다 해도 깨끗이 씻고 조리해서 먹으니 사람 똥이 축분만큼 오염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염된 축분을 돈 주고 사서 농작물을 키우고, 그 농작물을 먹고 건강을 위협받는다. 비교적 덜 오염된 인분은 수세식 변기에서 많은 물로 씻어 내린 다음 오수처리장에서 다시 비싼 돈을 들여 분해한다. 마지막 찌꺼기는 먼 바다에 버려 바다를 오염시킨다. 자체 분뇨처리장을 갖추지 않은 대도시에서 배출되는 인분은 포항, 부산, 군산 등지의 먼 바다에 흩뿌려진다. 

똥의 순환에서 멀어진 ‘웰빙’

저자는 최근 웰빙식 먹을거리가 유행하면서 오히려 우리 농업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한다. 친환경 기저귀와 생리대, 유기농 비누와 샴푸 등 사람들이 유기농 제품에 집착하다 보니 유기농산물 수입을 막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유기농이면 됐지 수입이면 어떠냐’는 인식은 우리 농민과 농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생각들이다. 

▲ <시골똥 서울똥>을 쓴 안철환 대표. ⓒ 박경현

‘웰빙’ 열풍은 생산과 유통 과정에도 모순을 만들었다. 유기 재배 인증을 받을 수 있는 퇴비는 화학약품을 전혀 쓰지 않는 가축의 똥이어야 한다.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제를 다량으로 쓰는 공장식 축산에서 나오는 축분을 퇴비로 쓰면 인증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 국내 축산농가는 공장식 축산을 한다. 깨끗한 축분이 유기 재배 농가 전체에 공급될 만큼 충분치 못해 대부분 유기 재배 농가에서는 공장식 축분 대신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을 쓴다. 그것도 값싼 중국산을 주로 쓰고 있다. 국내의 축분은 비싼 돈을 들여 해양에 투기하고, 남의 나라 거름을 비싼 돈 주고 사오는 셈이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만을 중시하는 ‘웰빙’족들이 알아야 할 것은 유기 재배 작물을 먹고 내보낸 배설물이 수세식 화장실을 통해 자연을 오염시키는 쓰레기가 된다는 사실이다. 흙으로 돌아가면 유기 재배에 맞는 귀한 거름으로 쓰일 똥이 바다를 더럽히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저자는 말한다.

“참된 유기농사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 입에 들어갈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재배하는 일이 아니라, 내 몸에서 나온 똥오줌과 쓰레기가 자연을 오염시키지 않고 흙을 비옥하게 하는 거름으로 만드는 일을 우선으로 하는 겁니다.”

똥의 부활, 답은 도시농업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유기농 제품 깨나 찾아먹었던 웰빙족이었다는 사실이 편치 않았다.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라면 수입산도 상관없었고, 아무 생각 없이 수세식 변기 레버를 빈번하게 내렸다. 안철환 대표가 일구는 경기도 안산 ‘바람들이 농장’의 회원들 가운데는 도시에 살면서도 음식물 찌꺼기와 오줌, 심지어 똥까지 받아오는 이들이 있다. 아파트 베란다에 잿간식 뒷간을 만들어 거름을 만드는 열성파도 있다고 한다. 

선뜻 따라 하기는 망설여지지만 언제까지 깨끗한 물로 똥오줌을 밀어낼 것인가? 도시인들이 자원으로서 똥의 가치를 잊게 된 것은 도시의 삶에서 농업이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도시농업이 다시 자리를 잡게 된다면 잊혀진 똥의 가치도 되새기게 되지 않을까? 나의 먹을거리를 직접 키운다면 당연히 거름도 가장 좋은 것을 찾게 될 것이다. 

▲ 상자 텃밭에 무와 당근 모종을 심고 치커리 씨를 뿌렸다. ⓒ 박경현

지난주, 베란다에 똥으로 만든 퇴비에 흙을 섞어 상자텃밭을 만들었다. 치커리 씨를 뿌리고 무와 당근 모종을 심었는데 새끼손가락만한 모종을 보며 벌써부터 직접 키운 채소를 먹을 꿈에 부풀어 있다. 난생 처음 키우는 내 새끼 같은 생명에 화학비료를 주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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