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유치원 교사에서 안마사가 된 송수아씨

인적 없는 길을 힘껏 달려본다. 산 위에 올라 멀리 달리는 차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본다. 송수아(50•여)씨도 한 때는 이런 자유를 만끽했다. 마흔 두 살에 시각장애인이 되기 전까지는.

“누구나 예비 장애인 아닐까요. 살면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쾌활한 성격에 아이들을 좋아하던 그녀는 20년을 유치원 교사로 일했다. 딸(당시 16세)을 키우며 평범한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던 송씨의 시력이 급격히 나빠진 것은 8년 전이었다. 병명은 ‘망막 색소 변성증’. 망막의 시세포가 서서히 퇴화하는 희귀병이다. ‘틴틴파이브’로 활약했던 개그맨 이동우씨가 이 병으로 시각을 잃게 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증상이 심해져 서울 큰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빨리 다른 길을 찾으라고 하더군요. 조금이라도 앞이 보일 때 시각장애인으로 살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요.”

점자 공부...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 시작

유전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 외에는 원인 조차 알 수 없는 병 앞에 망연자실했지만,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점자도 배우고, 생업을 위한 훈련도 받아야 했다.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기초재활훈련과 컴퓨터훈련을 받았고, 서울맹학교에서 안마사가 되기 위한 교육도 받았다. 

▲ 20년간 유치원 교사였던 송수아씨는 시력을 잃은 후 안마사가 되었다. ⓒ 김윤정

“하루에 잠자는 4시간을 빼곤 눈 돌릴 틈 없이 스파르타식으로 교육을 받았어요. 너무 힘들었죠. 그래도 그 과정을 거치면서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생겼어요. 앞이 보이지 않아도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고요.”

사실 갑자기 시각을 잃으면 엄청난 상실감, 좌절감에 빠져 집 밖 출입도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송씨는 낙담할 여유가 없었다. 딸과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시력을 잃어가는 동안 서로가 예민해지면서 남편과는 이혼했다.  

동료들 안마시술소 취업에 자괴감 들기도

안마사가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늦은 나이에 해부학과 침술학 등 낯선 공부를 하는 것도 힘들었고 자격증 있는 안마사들의 상당수가 성매매의 온상인 불법 안마시술소에 취업한다는 사실에 자괴감도 들었다. 그래도 딸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될 수 없다고 다짐한 송 씨는 일이 고되고 큰 돈벌이가 되진 않아도 떳떳한 안마사의 길을 선택했다. 충북 제천시 서부동에 ‘삼보지압원’을 차렸다. 이제 개업한 지 4년째. 야무진 손끝이 제법 알려져 단골손님도 많아졌단다. 그래도 유치원 선생님을 하다 안마사로 전업한 후 상처 받은 일은 없었을까.

“손님들은 다 잘 대해 주세요. 그런데 가끔 시각장애인을 함부로 대하고 속이려는 사람도 있어 속상해요. 이동할 때 콜택시를 많이 이용하는데 어떤 기사들은 미터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요금을 바가지 씌우기도 하죠.”

▲ 송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점자로 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한다. 배움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 ⓒ 김윤정
    눈이 보이지 않으면 못하는 게 많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기술의 도움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센스리더’라는 기계를 컴퓨터에 부착하면 화면을 음성으로 읽어주고, 문자메시지도 핸드폰에 설치된 프로그램이 모두 읽어준다.

“불편한 일은 있어도 못하는 일은 없어요. 중요한건 장애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고 살자’라고 생각하면 장애가 크게 문제되지 않아요.”

송 씨의 목표는 돈을 모아 서울로 이사해서 안마에 대해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문학 공부도 하는 것이다. 요즘도 주말이면 여러 가지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간다고 한다. 비록 시력을 잃었지만 삶에 대한 의지는 갈수록 강렬해진다고 한다. 그녀에게 시각장애는 그저 불편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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