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기자포럼] 유필문 하나로의료재단 의료원장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못 자요.’ 커피를 두고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각성 성분인 ‘카페인’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흔히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유난히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증상을 커피 탓이라고 말한다. 커피에 카페인이 들어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카페인의 일부 부작용만으로 매도당하는 커피로서는 억울한 구석이 없지 않다.

커피 안에는 카페인 말고도 주요 성분이 많다. 무엇보다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다. 폴리페놀 등 커피 속에 들어있는 항산화 물질은 노화의 주범인 유해산소를 없애준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섭취하는 항산화 물질의 절반가량은 커피를 통해 얻는다.

▲ 잘 익은 커피나무 열매. ⓒ John Pavelka

지난 5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열린 제3회 ‘한국식품기자포럼’(회장 박태균)에 식품 관련 기자, 교수, 의사, 업계 종사자와 여인홍 농식품부 식품산업실장 등 120여 명이 강연을 듣고 토론을 했다. 이날 포럼은 박용우 리셋클리닉 원장이 ‘말랑말랑한 식품: 영양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박인구 한국식품산업협회장(동원그룹 부회장)이 식품업계가 겪고 있는 제도적 어려움을 설명하는 등 식품 관련 다양한 의제들이 등장했다.

커피는 정말 암을 발생시킬까

유필문 하나로의료재단 의료원장은 “예전부터 커피 관련 기사를 보면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았다”며 화두를 던져 특히 기자들의 관심을 유발했다. 그는 “암 발생을 증가시킨다고 했다가, 얼마 뒤에는 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무엇을 믿어야 할지 고민일 것”이라며, 그 이유로 커피 연구 과정의 허점을 지목했다.

▲ 하나로의료재단 유필문 원장(오른쪽)이 커피 관련 기사를 보면 왜 혼란스러운지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식품기자포럼 박태균 회장. ⓒ 한국식품기자포럼

칠팔십 년대 커피 관련 연구 중에는 실험자들을 모집할 때 커피 외에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요소들을 걸러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암 발생 요인이 될 수 있는 술이나 담배 같은 이른바 혼전요소(Confounding Factor)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다.

동물실험에서 비현실적인 조건으로 연구를 진행한 사례도 있다. 198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카페인이 기형 발생을 증가시킨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쥐 실험을 통해 얻은 이 연구 결과는 사람으로 치면 하루 100잔 이상 커피를 지속적으로 마신다는 조건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이었다. 유 원장은 이처럼 신뢰성이 낮은 연구 결과들이 아직도 통용되며 커피가 무조건 건강에 해롭다는 오해를 받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총 4단계 발암물질 중 커피를 2B단계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1단계는 명백히 발암성이 입증된 ‘발암물질(Carcinogenic to humans)’이다. 술, 담배, 벤젠 등이 대표적이다. 2A단계는 ‘발암성이 있다고 추정’되는 물질이고 2B단계는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이다. 커피가 속한 2B단계에는 절인 채소나 휴대전화 전자파도 포함되어 있다. 유 원장은 발암성에 대한 증거도 제한적이고 동물실험에서도 불충분한 결과가 나온 물질이 2B 단계에 포함된다며 사실상 커피가 암을 유발시킨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등급별 발암물질 ⓒ 박경현

즐겨 마시는 것을 ‘중독’이라고 한다면

유 원장은 그 밖에도 커피를 둘러싼 오해가 많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커피가 중독성, 습관성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습관처럼 커피를 마실 수는 있지만 ‘중독’이라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 중 8~9%는 커피를 마시지 않을 경우 우울하고 기분이 처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스스로 충분히 조절 가능한 정도라고 유 원장은 설명했다.

태아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것도 과거 혼전요소(Confounding Factor)를 고려하지 않은 실험에서 얻은 결과가 통용되며 생긴 오해다. 새롭게 밝혀진 것은 태아가 보통 3.5kg이라고 한다면 커피를 즐겨 마시는 여성의 태아는 평균 150g 정도 체중이 덜 나간다는 사실 정도다. 그는 그 외에는 태아의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고 볼만한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커피가 위장장애를 일으킨다는 건 이미 위가 아픈 사람에게 한정되는 말이다. 위벽이 상해있는 사람이 카페인을 섭취하면 통증을 느낄 수 있다. 커피에 들어있는 여러 종류의 탄닌 물질이 상한 위벽을 자극해 메스꺼움과 불편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는 카페인이 함유된 차 같은 음료도 마찬가지다. 커피가 골다공증을 초래할 수도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유를 함께 마시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수준이다.

▲ 세미나실을 가득 메운 120여 명 참석자들이 강연을 듣고있다. ⓒ 한국식품기자포럼

한밤에 커피 마시고 푹 자는 비법

▲ 커피와 카페인에 대해 강연하는 유필문 원장. ⓒ 박경현

커피를 멀리하는 사람들이 꼽는 이유 중 하나는 카페인 때문에 쉽게 잠이 들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대사 능력에 따라 카페인을 받아들이는 수준에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카페인을 섭취할 경우 우리 몸은 어느 정도 적응력을 보여준다. 유 원장 본인도 20대 시절에는 오후 네 시 이후에 커피를 마시면 쉽게 잠들 수 없었으나 이제는 밤에도 커피를 즐기고 숙면을 취한다고 했다.

유 원장은 카페인에 대한 대사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위해 카페인 농도를 적게 해서 마시는 방법을 추천했다. 커피 속 카페인 양은 커피를 추출할 때 걸린 시간에 비례한다. 진한 맛과 농도 때문에 흔히 에스프레소가 카페인 함량이 높은 커피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고압 증기로 단시간에 추출한 에스프레소는 뜨거운 물로 오랜 시간 추출한 드립커피보다 카페인 함유량이 적다. 유 원장은 집에서 간편하게 커피를 내릴 때도 추출하는 시간을 줄이면 카페인이 적은 커피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유기농’ 커피 마시면 건강해질까?

▲ 여름 오후,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 ⓒ 박경현

최근 ‘웰빙’(Well-being) 열풍은 커피 시장에도 상륙해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유기농 커피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유 원장은 물로 씻은 뒤 과육제거-건조-도정-로스팅-추출 과정을 거치는 만큼, 마시는 사람에게 ‘유기농’ 커피의 의미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커피 외에도 작물 재배에 사용되는 농약이 우리가 마시는 음식에 남아있는 비중은 생각보다 적다는 것이다.

우리가 즐겨 먹는 사과, 당근, 토마토 등 거의 모든 과일과 채소에는 스스로 만들어낸 천연살충제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이와 같은 음식물을 통해 사람이 섭취하는 천연살충제 성분은 하루 1,500mg 정도다. 반면 재배 과정에서 사용한 농약은 하루 섭취 음식물 가운데 0.09mg 정도만 남아있다. 우리는 매일 잔류농약의 1만 배가 넘는 천연살충제를 섭취하는 셈이다.

유기농 커피는 마시는 사람보다 커피를 재배하는 농부와 그 지역 주민, 동물, 토양의 건강까지 지킨다는 점에서 더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현지 농부에게 합리적인 가격을 지불해 농가를 보호하는 공정무역 커피도 유기농 커피와 함께 ‘착한 커피’라는 이름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올 여름, 몸은 시원하고 마음은 따뜻해지는 ‘착한’ 아이스커피 한 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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