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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자본주의 대안, 협동조합
[현장]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협동조합’ 포럼
2012년 07월 07일 (토) 00:12:16 박경현 기자 ouida1211@gmail.com

협동조합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

   
▲ UN이 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 로고와 슬로건 'Cooperative Enterprises Build a Better World(협동조합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 ⓒ 유엔(UN)

올해는 유엔(UN)이 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다. 협동조합은 150여 년 전 생겨나 주식회사가 대부분인 자본주의 경제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2008년에 다시 도래한 세계적 금융위기까지 효과적으로 이겨내면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할 대안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유엔은 "협동조합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Cooperative Enterprises Build a Better World)"는 슬로건 아래, 협동조합이 연대를 통해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업 방식임을 알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협동조합이 있지만, 농협과 생협 등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특수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 외에는 법인격이 부여되지 않아 설립과 운영에 한계가 있다. 올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 5명 이상만 모이면 금융과 보험업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서 누구나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협동조합의 결성과 활동이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풀뿌리사회적기업가학교가 주최한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협동조합’ 포럼이 지난 5일 서울 YMCA에서 열렸다. ‘왜 사회적 협동조합인가’라는 주제로 발제한 최혁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기반조성본부장은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 사회적 협동조합이 가장 주목받는 협동조합 형태가 될 것”이라며 “사회적 협동조합이 성공하려면 개인의 이익을 지역사회 공동의 이익과 결부시키는 시민사회의 창조력과 상상력, 도전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쟁과 이익 추구의 경제학만 배우는 학교

   
▲ 5일 서울 YMCA에서 열린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협동조합'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 박경현

그러나 협동조합은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단어다. 최근 한국에서도 주목받고 있지만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어떤 원리로 운영되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은 “대학 때까지 줄곧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는 경쟁과 이익 추구의 경제학을 배우다 갑자기 ‘협동을 하자’고 말하니 당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표현했다. 그는 정책적인 정비도 중요하지만 교육이나 금융제도, 시장 거래 관습 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들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동조합기본법 하나로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아직도 학교에서는 경쟁 중심의 경제 교육, ‘이기심’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가르치는 교육을 받고 있어요. 금융제도나 상업적 거래관습도 대부분 주식회사 위주로 돌아가고 있죠. 사회적 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정책 정비와 함께 이런 문제들도 개선해나가야 합니다.”

김 소장은 최근 2~3년 사이 자치단체에서 사회적 기업 육성조례를 제정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말 16개 광역자치단체는 모두 사회적 기업 육성조례를 제정했고 기초자치단체는 228개 중 172군데가 조례를 만들었다. 중앙정부에서도 각 부처별로 경쟁적으로 사회적 기업과 유사한 조직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도입했다.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어촌공동체회사가 대표적이다.

이는 사회적 기업의 저변 확대에는 좋았지만 관련 정책이 서로 혼선을 빚으며 사회적 기업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어렵게 만들었다. 김 소장은 주택 개보수사업 관련 정책을 예로 들며 부처 간 정책 격차에 따른 비효율성을 설명했다. 현재 각 부처별 사업 정책대로라면 한 가구 내에서 온돌 바닥은 고치지만 망가진 창문은 못 고치는 황당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 <표> 주택 개보수 사업 정책 (김종걸(2012),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정책의 과제). ⓒ 김종걸

“중앙과 지방 간에 수미일관한 정책 구축이 필요합니다. 민간의 역량증진을 저해하는 중간지원조직을 통합해 민간자율성을 높여야 하고요. 별도 추가지원은 필요 없지만, 민간 진영이 최소한 제도 속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정책을 정비해야 합니다.”

한겨레신문사도 협동조합 전환 가능

토론에 나선 김현대 <한겨레> 선임기자는 농촌과 지역문제 전문기자로서 요즘 신바람이 난다고 말했다. 주로 남의 일을 쓰게 마련인 기자 생활 중에 관심을 가진 협동조합이 바로 ‘나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겨레신문사가 외형은 주식회사지만, 사실상 사회적 기업이자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한겨레신문사는 배당이나 수익극대화를 요구하는 주주가 없고, 사원들이 1인 1표로 대표이사를 선출한다는 점이 협동조합을 닮았다. 그는 스위스 미그로 사례를 볼 때 한겨레신문사가 진짜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그간 진통을 겪어온 농협에 대해서도 따끔한 충고를 했다. 농협은 ‘돈장사’인 신용사업이 본업처럼 되어 농민에게서 멀어졌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래서 지난 3월부터는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쪼개는 ‘신(信)•경(經)분리’가 이뤄져 ‘1중앙회, 2지주회사’ 체제로 가동되고 있다. 김 기자는 구조 개편 후 농협이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지만, 농협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협동조합들이 이제 막 활성화하고 있지만 각 조합의 인적, 물적 자원은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에 반해 농협은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어요. 제대로 된 조합장 하나만 나서도 우리 사회에 건전한 협동조합 생태계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겁니다.”

협동조합 향한 뜨거운 관심, 뿌리 내릴까

이날 포럼에는 협동조합기본법을 발의한 손학규 민주통합당 고문과 사회적기업육성법을 발의한 진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말고도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일반 시민들이 많이 참석했다. 애초 주최측은 200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예상을 훌쩍 넘어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들이 강당 앞뒤 바닥에 앉거나 서서 포럼을 지켜봐야 했다.

   
▲ 축사를 하는 손학규 민주통합당 고문과 진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 박경현

‘녹색건강나눔’ 운영자 허인회 씨는 발제자들에게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경제의 대안이 된다고 하지만 근본적인 경제구조 변화에 기여하는 바가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협동조합의 역할이 해당 조직 내에서만 자위적, 자조적 형태로 그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 이성수 ‘신나는 조합’ 상임이사는 “역사적으로 협동조합이 사회 변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적은 없다”면서도 생활 속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적 역할을 한다고 답했다.

“협동조합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시민들은 협동조합 안에서 연대하지만 다른 정치•사회적 문제의 책임까지 질 수는 없지요. 단, 저는 현재 협동조합 조합원이 대체적으로 진보적이고 구조 변화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지하철 승무원으로 근무하는 백세광 씨는 ‘하루 400만 시민이 이용하는 지하철도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냈다. 새로운 협동조합이 생겨나는 것도 좋지만 국가 기간산업 등 기존 기업을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에 대해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사단법인 씨즈의 이은애 대표는 “지하철 등 공적 서비스 사업은 기본적으로 협동조합이 들어가지 말아야 할 영역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협동조합을 운영하며 들어가지 않아야 할 두 가지 영역을 정했는데 하나는 서민들이 대다수인 소상공인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공공서비스 영역입니다. 협동조합이 공공서비스 기업을 민영화하는 도구로 이용되진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하지만 최근 지하철9호선 같은 경우라면 협동조합 형태로 전환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는 게 개인적 생각입니다.”

   
▲ 이날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참석해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강당 앞뒤 바닥에 자리를 잡고 포럼을 지켜봐야 했다. ⓒ 박경현

‘협동조합의 날’ 맞아 다채로운 행사

'2012 세계협동조합의 해 한국조직위원회'는 6일부터 8일까지 서울광장, 청계광장, 무교로 일대에서 '협동조합 난장 한마당 행사'를 진행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협동조합'이라는 주제로 무대행사와 전시, 체험행사 등을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협동조합의 날’인 7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개막식에는 박원순 시장과 박재완 기획재정부장관 등이 참석하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폴린 그린 국제협동조합연맹(ICA) 회장의 축하 영상도 상영된다. 이날 박 시장은 다양한 협동조합이 활성화할 수 있도록 '협동도시 서울 비전'을 선언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성공회대에서 6,7일 이틀간 ‘2012 청년협동조합 컨퍼런스’가 열리는 등 협동조합 관련 각종 행사와 심포지엄이 진행된다. 시민사회의 높은 관심이 공동체 복원이라는 협동조합의 가치를 복원시키는 것으로 이어져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초석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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