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 과실 부유층 편중, 가계부채와 내수침체 심화
[두런두런경제] 김광진 제정임의 경제카페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일반적으로 가계의 소득이 줄어도 그동안의 관성 때문에 소비는 그만큼 쉽게 줄지 않는다는 것이 경제학 교과서의 설명인데요, 최근 우리 경제는 경기하락세 보다 소비위축이 더 뚜렷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나요.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우선 가까운 지난해 4.4분기 경제통계를 보면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에 비해 0.3% 증가했는데, 민간소비는 0.4%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그리스 재정위기가 부각되면서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경제전망이 나빠진 게 소비심리를 얼어붙게 만든 것으로 분석됩니다. 또 장기적인 추세로 봐도 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성장세에 비해 소비증가세가 부진합니다. 1988년부터 97년까지 10년간은 GDP성장률이 연평균 8%였고, 연평균 소비증가율은 8.1%로 소비증가율이 더 높았습니다. 반면 97년부터 2011년까지는 연평균 GDP 증가율 4.2%에 비해 소비증가율은 3.1%로 낮아졌습니다.

김: 최근 소비심리가 얼마나 위축됐는지를 보여주는 다른 지표들도 있죠?

제: 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경제심리지수(ESI)가 있는데요, 이것은 기업경기실사지수(BSI)와 소비자심리지수(CSI)를 합성한 것으로 종합적인 민간경제심리 추이를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2012년 6월 경제심리지수가 97로 전월대비 4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지수가 100을 넘으면 기업과 소비자의 경제상황에 대한 판단이 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100에 못 미치면 그 반대입니다. 내수흐름을 보여주는 소매판매 지표도 지난 2월의 경우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5.4% 늘었는데 3월은 0.1%, 4월은 0.4%로 크게 꺾였습니다. 이마트가 상품판매량을 분석해 소비경기를 평가하는 ‘이마트지수’라는 게 있는데요, 올해 1분기에 95.5를 기록해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습니다. 이 지수가 100에 못 미치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소비가 악화됐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축률 OECD 하위권으로 추락, 불안심리 확산이 원인

김: 소비위축과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는 저축률의 하락도 심각하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입니까.

제: 지난 5월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을 보면 우리나라 가계저축률(가처분소득 대비 저축비중)은 2011년에 3.1%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1998년 23.2%에서 13년 만에 20.1%포인트나 떨어진 것입니다. 조사대상 18개 회원국 중 가장 큰 폭의 하락을 기록해서 이 기간 중 가계저축 1위 국가에서 하위권으로 추락한 것이죠. OECD는 올해 한국의 저축률이 2.9%로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참고로 우리보다 낮은 성장률과 높은 사회보장비용을 감당하는 유럽 국가들도 저축률이 우리보다 높은데요, 프랑스 16.8%, 독일 11%, 영국 7.4%입니다. 또 소비대국인 미국도 4.7%로 우리보다 높죠. 반면 우리보다 가계저축률이 낮은 국가는 일본 2.9%, 노르웨이 0.8%, 덴마크 -1.3% 등입니다. 가계저축률 하락은 소비위축, 성장잠재력 저하, 거시경제 안정성 훼손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김: 이렇게 눈에 띄게 가계 저축률이 떨어지고 소비가 위축되는 원인은 뭘까요.

제: 단기적으로 보면 유럽재정위기와 미국 경제지표부진 등 대외여건이 불안해서 소비자 불안심리가 확산된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구조적으로는 실질소득 정체를 먼저 지적해야겠죠. 일자리 사정이 악화되고 특히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들 형편이 나빠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세보증금 인상 등으로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교육비 등 필수지출의 부담도 여전히 높아 다른 소비에 쓸 돈이 부족하다는 서민가정의 현실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산 감소도 원인이 되는데요,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주식값이 떨어져 재산이 줄어든 가정이 많기 때문에 소비심리위축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가계부채 증가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빚을 줄여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니 소비를 늘리기보다 절약하려는 가정이 늘 수밖에 없죠. 특히 무리해서 집은 산 뒤 주택대출금을 갚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하우스푸어’가 많아 중산층 소비도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 등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이 모든 것의 배경에 소수의 대기업과 부유층이 부를 독식하고 중산층이 얇아지는 경제양극화가 있다, 즉 소득불균형이 저축률 하락과 소비부진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김: ‘소비둔화의 근본원인은 소득양극화’라는 주장에 대해 좀 더 살펴볼까요.  

제: 네, 경제성장률에 비해 소비증가율이 낮아진 이유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부자들의 손에 집중된 뒤 거기 머물러 있고, 일반서민들에게 흘러내려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낙수효과’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부자들은 이미 많은 재산이 있기 때문에 소득이 는다고 해서 그만큼 소비를 늘리진 않습니다. 또 소비도 해외여행과 세계적 명품구입 등으로 외국에서 하는 경향 두드러져 내수에 별 도움 안 되죠. 반면 중산층과 서민은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소비하는 성향이 높은데, 경제양극화로 중산층이 줄고 서민의 실질소득은 악화되는 상황이어서 국민경제 전체로 볼 때 구매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통계청의 2012년 1.4분기 가계동향을 보면 상위 20% 소득계층은 평균소비성향이 전년 동기대비 1.5%포인트 상승했지만, 하위 20%는 6.6%나 줄어 소득불균형에 따른 소비양극화 추세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클린턴 정부시절 미국 노동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는 “세계적 금융위기를 부른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도 경제양극화로 인한 서민의 구매력 악화를 빚으로 해결하려던 정책이 낳은 재앙”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자크 사피르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원 교수도 유럽재정위기의 근본원인이 국민 다수의 소득정체를 빚으로 메운 때문이라고 지적했고요.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증가와 소비위축도 이런 맥락이라고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경제 성장잠재력 하락 가능성 높아…실질소득 높여줄 정책 필요

김: 이렇게 소비침체가 지속되면 경제에 많은 악영향을 끼치게 될 텐데요, 어떤 현상들이 나타날까요.

제: 기업들이 물건을 팔아도 사 줄 수요가 부족하니 경기가 침체될 가능성 높죠. 수출대기업의 경우 수출이 잘 되면 문제가 없겠지만 국내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내수기업들은 매출 부진, 수익률 하락 등으로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러면 추가투자가 부진해지고, 일자리가 줄고, 근로자에 대한 처우도 나빠져 더욱 소비가 부진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장기적으로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하락할 수밖에 없죠.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5월에 낸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소비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잠재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하고, 매년 96만개의 일자리가 줄었고, 고용률이 2.5%포인트 낮아졌다”고 분석했습니다.
 
김: 그렇다면 위축된 소비를 다시 활성화하고 경제의 활력을 되찾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요.

제: 우선은 ‘근로자의 지갑에 돈을 채워주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바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근로자, 자영업자의 소득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죠. 외환위기 후 대기업의 ‘고용 없는 성장’추세가 지속되고, 비정규직 중심의 고용이 늘면서 대다수 국민들의 실질소득이 제자리 걸음을 했습니다. 따라서 일자리를 많이 늘릴 수 있는 중소기업을 집중 육성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별을 줄이고, 가장 바닥층에 있는 근로자들이 받는 최저임금을 현실화해서 경제성장 만큼 근로자 소득이 늘어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현재 최저임금은 근로자 평균임금 30% 수준인데 이를 선진국 수준인 50%까지 단계적으로 높여 나가야 할 것입니다. 복지안전망 확충도 중요한데요, 서민들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지출이 전세보증금 등 주거비, 아이들 학원비 등 사교육비, 어린 자녀들 보육비, 병에 걸렸을 경우 써야하는 의료비 등이죠. 이런 기초 민생부분에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다면 같은 수입으로도 가처분 소득이 늘어 소비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심각한 수준에 와 있는 가계부채 대책도 시급합니다. 빚에 쪼들리는 서민들에 대해 만기를 연장하고 금리를 낮춰주는 등 수입 내에서 갚을 수 있도록 부채를 구조조정해주거나, 고금리 대출의 저금리로 전환을 지원하는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기사는 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7월4일 다시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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