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 50만평 벼농사, 우렁이가 짓게 된 사연

"농촌이 안정된 노후생활을 하다가 여생을 마칠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을 우리 국민이 가져야 됩니다… 농촌을 도회지 사람도 가 보고 싶고, 또 나아가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2005년 3월 농림부 농촌종합개발사업계획 보고를 받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는 농촌을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농민이 이익을 크게 못 보고, 젊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2월 대통령직에서 퇴임하고 고향 봉하마을로 가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농촌'을 만들려고 애썼다. 마을을 살리기 위해 그가 선택한 벼농사 방법은 '오리농법'이었다.
 
친환경 벼농사 170가구 중 5가구만 오리농법
 
그는 농약을 사용하던 농민들에게 유기농 오리농법으로 전환할 것을 권했다. 2008년 농민 13명이 참여해 전체 논 79만2천m²(24만여 평) 중 7만9천m²(2만4천평)에 오리를 풀었다. 쌀 50톤을 생산했는데, 예약자가 많아 추첨을 통해 판매할 정도로 ‘봉하오리쌀’은 주목을 받았다. 다음해부터는 오리농법과 우렁이농법 중 농민이 원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했다. 친환경농법 재배면적은 점점 늘어 현재 봉하마을과 인근 다섯 마을에서 170여 농가, 165만m²(50만 평)에 친환경 벼농사를 짓는다. 
 

▲ 봉하마을 친환경 생태농업 시범단지. ⓒ 김강민

하지만 올해 오리농법을 쓰겠다는 농가는 다섯밖에 없다. 면적으로 따지면 1만2천평으로 첫 해에 견주어 반으로 줄었다. 오리농법이 방제와 양분공급 측면에서 효과가 뛰어나지만 관리하기 버거운 탓이다.
 
청와대 비서관이었던 김정호 ‘영농법인 봉하마을’ 대표는 오리농법이 다른 친환경농법보다 까다로운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아침에 새끼오리를 논에 풀고 저녁에 다시 보호망으로 가둬 넣어야 한다. 너구리 같은 천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보호망과 오리가 쉴 오리막을 설치해 줄 필요가 있다. 오리의 건강도 신경 써야 한다. 벼 이삭이 나올 때까지 두 달 정도 오리를 논에 푸는데, 이후에는 사료를 먹여 키우고 출하해야 하는 점도 번거롭다. 김 대표는 “작년에 오리 2천마리를 바비큐로 만들어 팔았는데 30만원 이득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오리농법을 활용하는 농가수가 적지만,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을 친환경농법 마을로 만들기 위해 처음 도입한 것이 그 농법이어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까다로운’ 오리보다 ‘단순한’ 우렁이에 끌려
 
오리농법의 핵심은 오리의 습성을 농사에 이용하는 것이다. 모내기 뒤 1~2주 사이에 태어난 지 10일 이내인 새끼오리를 논에 넣는다. 오리가 발이나 부리로 일으킨 흙탕물 덕분에 잡초 종자가 수면에 뜨거나 태양광선의 조도가 떨어져 잡초의 광합성이 줄어든다. 각종 해충을 잡아먹기도 한다. 오리 배설물은 유기질 비료가 된다. 열 평당 오리 한 마리를 방사한다. 
 

▲ 모내기 한 논에서 몰려다니고 있는 오리새끼들. ⓒ 사람 사는 세상 봉하마을

영농법인 앞에서 ‘봉하빵’을 파는 김아무개(62·여)씨는 40년간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귀향 후 오리농법을 활용하다가 올해부터는 우렁이 농법을 쓰기 시작했다. 
 
“오리농법을 쓰니 훨씬 맛 좋은 쌀이 나오고, 소득이 늘었지예. 그런데 아침저녁으로 오리 풀어주고 막에 넣어야 해서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우렁이농법을 써 볼라꼬요. 걔들(우렁이)은 풀어만 놔도 알아서 농사짓는 답디다.”
 
우렁이농법은 오리농법보다 단순하다. 물 밖으로 드러나 있는 풀은 먹지 않고 물속에 잠겨 있는 식물만 먹는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건강한 우렁이들을 구해다 모내기한 논에 방사해 수초나 잡초 등을 먹어 치우게 한다. 모의 포기가 물속에 잠기지 않을 정도로 물의 깊이를 관리해주는 것으로 쉽게 할 수 있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렁이가 수초를 먹어 제초 효과는 뛰어나지만, 해충과 벌레를 처리할 수 없어 병해충 효과는 낮다. 들짐승의 공격에 대비해 오리망을 설치해 줘야 하는 것처럼, 우렁이는 새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어 새그물이나 방제테이프를 쳐야 한다. 우렁이는 물길을 따라 멀리 이동하기 때문에 배수구나 논둑의 망울타리를 수시로 확인해 우렁이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노무현의 이상 ‘오고 싶어하는 농촌’ 실현
 
관리 방법과 효과는 다르지만, 경제효과는 둘 다 뛰어나다. 친환경인 탓에 일반 쌀보다 최소 30% 이상 높은 값에 벼를 수매한다. 봉하마을 농민들은 예전보다 큰 이득을 보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이 늘 말하던 '농민들이 안정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는 농촌'을 만든 셈이다.
 
건강한 흙에서 양질의 쌀을 생산하는 것도 노 전 대통령이 바란 바였다. 그는 “2014년, 수입쌀이 전면 개방되어도 우리 쌀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좋은 쌀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일반 쌀보다 비싸지만, 쌀 소비가 줄어드는 추세에 국민들은 조금이라도 좋은 국산 쌀을 찾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오리농법과 우렁이 농법의 이점은 경제효과에 그치지 않는다. 김 대표는 "친환경농법이 환경과 생태계를 살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리든 우렁이든, 친환경농법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깨끗한 물이라고 말했다.  

▲ 김정호 '영농법인 봉하마을' 대표가 친환경 농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김보민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한 해, 봉하마을 27만평 들판에 농수를 공급하는 농수로와 배수로는 축산폐수와 공단폐수로 오염돼 있었다. 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오리농법은 엄두도 못 낼 처지였다. 노 전 대통령은 한국지하수개발협회 도움으로 세 군데 지하수를 개발해 매일 450톤 이상 깨끗한 물을 확보하도록 했다. 
  
이후 논은 미꾸라지가 살 정도로 깨끗해졌다. 산란을 위해 내려온 붕어와 잉어도 눈에 띄었다. 농약과 폐수로 땅이 오염되고 물이 더러웠다면 수서곤충과 물고기는 물론 주변에 살던 짐승들도 삶의 터를 잃었을 것이다. 김 대표는 논을 생물들의 서식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봉하마을 농가는 겨울에 철새에게 놀이터를 만들어주려고 논에 일부러 물을 채워 넣는다. 
 
“논은 인간과 다른 생물이 공존하는 습지”
 
"논은 생물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습지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농촌이 ‘쌀 공장’이지 뭐겠습니까."
 
2009년 오리농법 창시자인 후루노 다카오 박사가 봉하마을을 직접 찾아 노 전 대통령에게 ‘둠벙(웅덩이)과 수로로 고기가 다닐 길을 만들어 논의 생물다양성을 살리면 좋겠다’며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이후 봉하마을 웅덩이 열 곳을 연못 크기로 확장했다. 웅덩이는 논에 살던 잉어와 붕어에게 겨울을 보낼 안식처가 됐다. 

▲ 논 근처 곳곳에 웅덩이가 있다. 봉하마을은 웅덩이를 연못 크기로 넓혀 다양한 생명체가 살도록 했다. ⓒ 김강민

▲ 오염되지 않은 물에서 자라는 연꽃이 꽃망울을 밀어올렸다. ⓒ 김강민

오리농법 등 우리나라 친환경농업 재배면적은 꾸준히 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유기농법 재배면적은 2004년 전체 대비 1.5%였지만 2010년에는 11.3%로 상승했다. 친환경농산물 생산량도 2.5%에서 12%로 뛰었다.
 
2002년 농림부가 분석한 친환경재배 현황자료를 보면, 친환경 재배면적 11,077ha 중 오리농법이 27%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했다. 키토산 농법(26%), 우렁이 농법(17%)이 뒤를 이었다. 농림부는 이 통계 이후 농법별 재배현황 자료를 내지 않고 있다. 김 대표는 건강한 땅에서 좋은 쌀을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친환경 농가에 정부가 지원을 많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대규모 농가보다 영세농이 소득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117만 농가 중 76만 가구가 재배면적이 1㏊에도 못 미치는 소농이다. 
 
"정부는 대농과 기업농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왔는데, 정책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대농과 영세농 간 양극화가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이용해 대량 생산하는 기업농의 일반 쌀은 값싼 수입쌀이 들어오면 경쟁력을 잃을 겁니다. 친환경농법을 쓰는 영세소농이 질 좋은 쌀을 생산하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농업이 살 수 있습니다."
 
다행히 지난 4월 정부는 친환경농업직불금을 인상하고 지급기간을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친환경농업직불금은 친환경농법으로 작물재배를 전환한 농가가 입는 초기 소득손실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제도다. 유기재배 농가 직불금을 ha당 30만2천원에서 60만원으로 인상했고, 1년에 한번 총 3번 지원하던 것을 총 5번 지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