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울증 시달린 폰 트리에 감독의 경고

결혼은 왜 그녀에게 무의미했나

하마터면 속을 뻔 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만큼이나 눈부신 미소로 결혼식장을 향하던 신부 저스틴(커스틴 던스트 분)의 모습은 세상 어떤 여자보다 행복해 보였다. 결혼을 앞둔 신부라면 마땅히 그럴 것이라고 우리가 가정하는 것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겉모습만 화려한 결혼식은 저스틴에게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 익스트림필름

결혼식은 골프장이 딸린 호화주택에서 벌어진다. 누구나 꿈꿀 법한 결혼식이건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진다. “이게 얼마짜리 결혼식인지 아느냐”며 유난을 떠는 형부와 자기 계획대로 ‘완벽한 결혼식’을 만들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언니 클레어(샤를로뜨 갱스부르 분). 이혼한 부모도 참석했지만 아버지는 젊은 여자들을 옆에 끼고 있느라 정작 딸 결혼에는 관심이 없다. 화난 얼굴로 앉아있던 그녀 어머니는 축사 대신 결혼이라는 제도에 반대한다며 독설을 퍼붓는다. 그리고 시종일관 곁에 붙어 광고 문구를 따내려는 회사 상사가 그녀는 귀찮기만 하다.

저스틴에게는 이 모든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편 마이클(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분)도 답이 될 수는 없었다. 화려한 껍데기만 남고 정작 행복의 주인공은 없는 것이다.

우울이 잠식한 존재의 파국

내면의 우울을 견디지 못한 저스틴은 결국 결혼식을 망치고 직장도 사랑도 잃게 된다. 아무 것도 잃을 게 없을 때 사람은 가장 용감해진다고 하던가? 그녀는 자신을 집어삼키는 우울증에 몸을 던져 버린다. 클레어는 아픈 그녀를 집에 데려와 극진히 보살피지만 고기를 입에 넣으며 담뱃재를 씹는 것 같다는 그녀에게 산다는 것은 더 이상 어떤 기쁨도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거대 행성 ‘멜랑콜리아’의 침공이 조금도 두렵지 않다.

 

▲ 결국 내면에 존재하던 우울증을 인정한 저스틴에게 산다는 것은 아무런 기쁨도 되지 못한다. ⓒ 익스트림필름

그녀가 극단적 결과에 이르기 전 구원의 여지는 없었던 걸까? 결혼식 내내 피로한 표정의 저스틴은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이 허황된 결혼식의 모든 의식이 그녀에게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를. 그러나 “내 안에 있는 잿빛 연기 탓에 걸음을 떼기조차 힘들다”는 그녀의 호소에도 가족들은 외면과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표면적으로 영화 <멜랑콜리아>는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이 지구를 습격한다는 판타지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저스틴과 클레어의 이야기를 통해 행성의 근원이 바깥이 아닌 ’내면의 우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저스틴의 결혼식에서 볼 수 있듯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고 있는가? 호화로운 식장과 웃고 떠드는 하객들, 그 중 어느 것 하나 저스틴이 원하는 게 있었을까? 아니, 애초에 그녀는 ‘결혼’ 자체를 원하기는 했던 걸까? 남들이 하는 대로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그렇게 맞춰 살아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저스틴의 모습은 가슴의 소리를 따르기보다 부와 명예를 좇아 직업을 선택하고 사랑보다는 조건을 앞세워 결혼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닮았다.

우울증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

그 사이 내면의 우주에 존재하던 ‘멜랑꼴리아’라는 우울의 행성은 ‘지구’라는 현실의 삶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부딪힐 듯 말 듯 죽음의 곡선을 그리면서. 어둠을 온통 파란빛으로 물들이며 치명적 아름다움을 뿜어내던 멜랑콜리아처럼 현실을 향해 다가오는 우울의 그림자는 너무도 유혹적이다. 그 그림자에 잠식되는 순간 우리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을 테니까.

 

▲ 영화 <멜랑콜리아>의 한 장면. ⓒ 익스트림필름

마침내 멜랑콜리아가 지구에 닿아 지구가 종말한다는 영화의 결말처럼 내면의 행성 ‘멜랑콜리아’가 자아를 집어삼키면 모든 것은 잿빛이 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지구의 종말이라는 가정을 빌려 우리 안에 잠재한 우울증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자기의 목소리를 듣는 데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들에게 멜랑꼴리아의 침공은 언제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올 수 있다. 누군가는 저스틴처럼 ‘자연의 이치’인 양 그 종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지 모른다. 누군가는 종말의 순간마저 근사한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시고 싶다는 클레어처럼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움에 떨며 멜랑콜리아의 습격을 부정할 수도 있다. 어쩌면 어린 아이처럼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그 폭격을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 멜랑콜리아라는 우울의 행성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언제든 찾아와 삶을 파괴시킬지도 모른다.  ⓒ 익스트림필름

덴마크의 거장이라 불리는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는 웬만한 마음가짐으로는 끝까지 보기 어렵다. 사랑스럽지 못한 주인공들은 두 시간 내내 관객을 지치게 하고 영화가 끝나도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모호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영화 전반에 깔린 음울한 분위기는 가끔 견디기 어려울 정도다.

우울한 영화만큼이나 폰 트리에 감독 역시 지난 2007년부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왔다. 그의 충격적 걸작이라 꼽히는 영화 <안티 크라이스트>(2009년 작)는 그가 밀실공포증과 우울증을 앓으며 완성한 작품이라 알려졌다. 이후 그가 우울증에서 벗어났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 <멜랑콜리아>를 통해 그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멜랑콜리아의 침공은 가까워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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