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김효순 전 <한겨레> 대기자

조선에서 만주로, 만주에서 다시 시베리아로 끌려가 노역에 시달리다가 광복 후 한국에 돌아온 이들이 있다. 냉전체제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소련 붕괴 뒤 비로소 입을 열었지만, 들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영화 <마이웨이> 이야기가 아니다. 한겨울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처럼 모진 삶을 견뎌낸 이들의 모임 '시베리아 삭풍회' 이야기다.

숨겨져 있던 이 비극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진 건 한 노기자의 노력 덕분이다. 1979년 <연합뉴스> 전신인 <동양통신> 기자로 출발해 <경향신문>을 거쳐 <한겨레> 편집인까지 지내다가 다시 취재현장으로 돌아갔던 김효순 전 <한겨레> 대기자가 바로 그다.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생이던 1974년에는 박정희 유신독재에 저항하다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언론과 사회는 현대사의 피해자를 외면했다

김 기자가 2007년 취재현장으로 돌아간 뒤 주목한 분야는 '현대사'다. 언론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관심을 두지 않는 사안들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보람도 느꼈지만, 한국 언론 현실에 절박함도 느꼈다고 한다.

 ▲ '현대사 심층보도의 현실'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는 김효순 전 <한겨레> 대기자. ⓒ 양호근

그가 ‘시베리아 삭풍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88년 일본에서 나온 책 <시베리아에서 나가다초까지>였다. 저자 바바 요시미쓰는 관동군 간도특무기관에서 장교로 복무하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 11년 간 억류됐다가 1956년 일본으로 귀환했다. 김 기자는 ’억류자 중에 일본사람뿐 아니라 만주군 고위관료, 조선인, 대만인들도 있었다’는 대목에서 ‘아차’ 싶었다고 한다.

“시베리아로 끌려간 사람들을 소련군은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강제 징병된 조선인도 일본군으로 똑같이 취급한 거죠. 그 사람들은 소련에서 날벼락 같은 고생을 했지만, 당시 한국의 어떤 위정자도 강제 노역하는 한국인 송환 교섭에 힘쓰지 않았어요.”

강제 노역과 추위, 굶주림을 견딘 시베리아 억류자들은 1948년 12월 말 함경남도 흥남으로 귀환했다. 연고지가 남한인 사람들은 이듬해 38선을 넘었다.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온 그들을 기다린 건 정보기관의 혹독한 조사와 감시였다. 1990년 한국과 소련이 국교를 맺기 전까지 이들은 침묵해야 했다. 그 해 12월, ‘시베리아 삭풍회’를 결성하고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시작했지만, 주목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 김 기자가 기사에 못다 쓴 글을 모아 펴낸 책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
김 기자는 2008년 삭풍회 이병주 회장을 시작으로 한국인 생존자들과 일본에 있는 관련 단체 ‘전국억류자보상협의회’ 등을 취재했다. 칠팔십대 노인들에게서 60여 년 전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당시 복잡했던 국제정세와 사회적 배경도 철저히 조사해야 했다. 힘든 과정이 진행될수록 보도해야겠다는 결심이 더 굳어졌다고 그는 회상했다.

하지만 주변 분위기는 ‘이제 와 끄집어 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였다. <한겨레>에 세 차례 연재하고자 했던 애초 기획은 2009년 한 차례 집중보도로 축소됐다. 기사가 포털사이트 메인 페이지에 올라가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못다 쓴 글을 모아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지만 아쉬움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언론계, 정치계, 학계 모두 현대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과거로 묻어두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일을 괜히 손댄다고요? 현재 우리 사회가 사상적, 정치적 문제와 역사인식을 두고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은 이유가 뭔지 자문해보세요. 저널리스트라면 이런 사상적 노예화와 부조리, 불합리를 깨부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현대사를 이해하려면 외국 책을 봐야 하는 현실

시베리아 억류자 사례에서 보듯, 우리 사회의 과거사 청산작업은 대부분 현재진행형이다. 한국 언론과 정치권이 모두 외면하는 사이에 이를 적극적으로 탐사한 이들은 해외 언론인이다. ‘김대중 납치사건’을 가장 심도있게 분석한 책은 일본 후루노 요시마사 기자가 펴냈고, 1950년 미군이 자행한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은 통신사인 <AP>가 크게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김대중 납치사건’은 당사자가 대통령이 되면서 부각됐지만, 정치적 고려로 너무 쉽게 매듭지어졌다. 노무현 정권이 구성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도 제대로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사건 당시 <마이니치신문> 서울 특파원이었던 후루노 기자는 석연찮은 조사결과를 보고 외무부 외교문서를 꼼꼼히 보고 관련 당사자들을 취재한 끝에 <김대중 사건의 정치적 결착>과 <김대중 사건 최후의 스쿠프>라는 책을 펴냈다. 김 기자가 이 내용을 압축해 보도했지만, 다른 언론은 침묵했다.

‘노근리 사건’은 한국 언론이 먼저 보도했는데도 흐지부지 묻힌 사례다. 당시 아들과 딸을 잃은 정은용 씨가 책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펴낸 뒤 시사 월간지 <말>과 <한겨레>가 사건을 보도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사건을 공론화한 주역은 <AP> 특별취재팀이었다. 희생자 유족, 생존자, 당시 미군 병사를 인터뷰하고 조사전문기자가 공식문건들을 뒤져 ‘노근리 부근에서 발견되는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에 따라 미군이 학살사건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편집국 간부들은 노근리 사건 보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특종이 될 수도 있었던 노근리 사건 보도가 크게 부각되지 못했습니다. <AP> 보도를 계기로 한•미정부 차원에서 합동조사가 진행되었고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법안이 마련되었습니다.”

김 기자는 한국전쟁을 가장 상세히 다룬 책으로 데이비드 핼버스텀 기자가 쓴  <가장 추운 겨울(The Coldest Winter)>을 추천하면서도 “한국 현대사를 외국인이 쓴 책을 통해 이해하는 현실에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다.

“현대사는 ‘비사’나 ‘야사’가 아니라 ‘정사’가 돼야 합니다. 하지만 현대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학계에서 주류가 될 수 없는 게 현실이에요. 사학과에서 현대사로 논문을 쓰려고 하면 교수가 세 가지 이유를 들며 말렸다고 합니다. 첫째, 다친다, 둘째, 감옥 간다, 셋째, 이상해진다. 현대사가 학계 주류가 되고 언론 역시 특종보도하는 것이 앞으로 과제입니다.”

 ▲ 퓰리처상을 받은 <AP> 특별취재팀의 기사를 모아 펴낸 책 '노근리 다리'(왼쪽)와 한국전쟁을 상세히 다룬 데이비드 핼버스텀 기자의 책 '가장 추운 겨울'.

현대사는 케케묵은 사건 아닌 오늘의 문제

현대사 취재 과정에서 김 기자가 느낀 가장 큰 문제점은 두 가지다. 박약한 지성인 의식과 척박한 언론 풍토다. 역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에서, 역사의 산증인들은 하나 둘 무덤으로 들어가고 있다. 수없이 터지는 사건들을 충분하지 못한 인원으로 다루다 보니 고리타분해 보이는 역사 분야는 소외받게 되었다.

그는 “매일매일 터지는 사건을 쫓아가기에도 버거운데 왜 케케묵은 사건들을 뒤쫓느냐는 간부들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백발 노기자가 현장에 뛰어든 이유는 이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바로잡으면서, 젊은 저널리스트들의 분발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현대사 심층보도를 통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 이미 죽어 보상할 길도 없는 이런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조금이라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기사와 책을 통해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후세의 누군가가 기억해주지 않을까요?”

 ▲ 김 기자는 주제 강연이 끝난 뒤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에게 기자가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 얘기했다. ⓒ 양호근

이런 마음가짐으로 한국 언론에서 보기 드물게 현대사를 탐구한 김 기자는 “좋은 기사를 써서 독자들의 평가를 받는 것이 기자로서 가장 큰 기쁨이며 보람”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고 발품 판 흔적이 가득한 현장감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움직이다 보면, 일상사 하나하나도 기삿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문제가 있음에도 기사가 재미없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기사는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문제인가’라는 문제의식이 중요합니다. 문제의식이 분명하고, 잘 취재해서 잘 썼다면 좋은 기사가 됩니다. 예비언론인으로서 취재하고 글 쓸 때 좀 더 다양한 접근, 다양한 방식을 고민해보세요. 충분히 흥미 있는 기사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마감시간 없는 시대' 어떤 언론인이 될 것인가?

올해 초 한겨레신문사에서는 드물게 정년퇴임한 김효순 대기자는 기술 발달로 뉴스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는 시대에 기자는 어떻게 수명을 연장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했다.

전화기가 귀했던 시절인 1963년 케네디 미국 대통령 암살 사건을 특종보도한 통신사인 <UPI>의 메이먼 스미스 기자는 본사에 "케네디 피격. 치명상인 듯" 두 마디를 이야기한 뒤 전화기를 부숴버렸다. <AP> 기자는 7분 늦게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휴대폰뿐 아니라 무선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오늘날에는 7분이 아니라 초 단위로 특종과 낙종이 갈린다. '마감시간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사 수명도 그만큼 단축됐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하루만 지나면 웬만한 기사, 아무도 안 봅니다. 내가 쓴 기사가 의미가 있었나, 종종 회의가 들 정도죠. 그렇다면 어떤 기사를 써야 할까요?"

그는 지금 같은 흐름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오히려 '기본이 중요하다’며 생전에 리영희 선생과 인터뷰했던 내용을 소개했다. 리 선생에 따르면 기자의 역할은 두 가지다. 매일매일 일어난 사건을 쫓아가는 것과 표피가 아닌 밑바닥을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리영희 선생은 그날그날 변화하는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인간생활 저변의 기본적 요소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김 기자는 "일상적인 취재 외에 다른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저널리즘특강>은 보도와 칼럼, 방송제작, 매체창업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담론형성과 의사소통에 크게 기여해온 분들이 진행합니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언론사의 핵심간부와 논객들이 한 특강을 <단비뉴스>가 중계합니다. 이 특강은 우리 저널리즘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도 흥미롭지만, 학생이 쓴 기사를, 함께 강의를 듣는 강좌책임교수가 데스크를 봄으로써 ‘강연ㆍ연설기사 쓰기’ 수련을 겸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특히 언론인이 되려는 학생들의 관심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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