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붐비는 주말과 달리 지역 주민의 편안한 쉼터로 각광

“나랑 놀 사람 없수?”

지난 11일 오전 11시 무렵. 충북 제천시 모산동의 의림지 놀이동산에는 인형자판기에서 나오는 어린아이 목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전날 밤 10시까지 관광객들이 밀려들어 밥 먹을 새도 없이 바빴다는 놀이동산 대표 김준경(38)씨는 어린이용 미니 기차를 정비하며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주말에는 아르바이트 학생 10여 명이 필요하지만, 오늘 같은 평일엔 저와 형님, 어머니, 이렇게 세 명으로 충분합니다.”

맞은 편 ‘의림지 테마파크’의 주인 신동근(25)씨도 어린이들이 즐겨 타는 오색기차의 먼지를 천천히 닦아내고 있었다. 바이킹, 범퍼카, 야구연습장 등 소소한 오락거리들이 갖춰진 이곳의 문을 언제 여느냐고 묻자 “아침에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오전 10시쯤 나와서 준비되는 대로 영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주말에는 관광지, 주중에는 지역주민 쉼터

야외공연장 앞 카페 ‘라디오 커피’에서는 60대로 보이는 푸근한 인상의 안주인이 “저녁이 돼야 바쁘지, 이 땐 사람 없어”라며 느릿느릿 진열대에 컵라면과 과자들을 올려놓았다.

▲ 평화로운 평일 오전 의림지 전경. ⓒ 김태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인 의림지는 휴일이면 하루 1천 여 명이 찾는 제천의 대표적 관광명소다. 하지만 평일이 되면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제천 주민들의 고즈넉한 쉼터로 돌아온다. 2킬로미터(km) 남짓한 호수 주변을 휘적휘적 산보하거나, 나무그늘 아래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주민들의 표정은 바로 집 앞에 ‘마실’ 나온 듯 편안하고 여유롭다.

소나무, 벚나무 등이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나무의자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50대 주부들 중 한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지나가는 연인에게 “나도 옛날에는 저랬지”하며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의림지 관광안내소에 일하는 유성옥(55ㆍ여ㆍ제천)씨는 “나도 첫 데이트를 의림지에서 했다”며 “제천 시민들에게 이 곳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소나무가 울창한 산책로에는 분홍, 빨강, 연두 등 알록달록한 색깔의 운동복을 차려 입은 중년 남녀 10여 명이 빠르게, 혹은 느리게 산보하고 있었다. 산책로 중간에는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사먹을 수 있는 매점이 있는데, 앞에 놓인 10여 개 테이블 중 한 곳에서 40, 50대 주부 네 명이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다. 매일 아침 의림지에 출근 도장을 찍어 ‘만근녀’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신정애(59ㆍ제천)씨가 의림지 예찬론을 편다.

“눈 뜨면 의림지가 생각 나. 공기 좋고 물 좋으니까. 하루라도 안 오면 숙제를 안 한 듯 찜찜하지. 나이 든 소나무 보면 내 친구 같아 정겹기도 하고. 운동하고, 여기서 친구들과 커피 한 잔 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게 행복 아니겠어?”

▲ 친구들과 함께 의림지를 찾은 제천주민들이 담소를 나누며 걷고 있다. ⓒ 김혜인

친구를 기다리며 산책로 입구에 앉아 있던 고경숙(46ㆍ주부ㆍ제천)씨는 “운동하러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오는데 새벽 6시쯤엔 사람들이 많아 북적이지만 이 시간은 한가한 편이라 좋다”고 말했다.

환경 정비로 깔끔해져…카메라만 들이대면 '작품' 나와

의림지는 한 때 무허가 상점과 포장마차들로 지저분했고 수질도 좋지 않았다. 그러다 2003년 제천시가 주변 환경 정비에 나서면서 지금의 깔끔한 모습을 되찾았다. 제천시는 의림지를 생태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 아래 수변데크, 야간경관 조명, 간이 공연장 등을 조성했다. 부채처럼 펼쳐진 호수, 바람을 따라 일렁이는 물결, 선착장에 얌전히 모여 있는 오리배 등이 정갈한 주변 조경과 어울려 멋진 풍광을 빚어내고 있다.   

올해로 4년째 매일 집에서 1시간을 걸어 의림지까지 온다는 김정자(52ㆍ여ㆍ제천)씨와 이승혜(55ㆍ여ㆍ제천)씨는 “예전에는 호수만 덩그러니 있었는데, 근래 들어 커피전문점이나 오락시설도 많이 갖춰져 좋아졌다”고 말했다.

▲ 제천시는 수 차례에 걸쳐 의림지를 찾는 관광객과 주민들을 위한 정비사업을 펼쳤다. 의림지 주변에 설치한 수변데크(왼쪽 위), 인공동굴과 인공폭포(왼쪽 아래), 야간경관 조명(오른쪽) ⓒ 김혜인, 이지현

간간이 눈에 띄는 외지 관광객들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작품’이 되는 풍경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복잡한 주말을 피해 일부러 주중에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왔다는  한성호(37ㆍ회사원ㆍ경기도 부천시)씨는 “어른들은 산책하고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점심 무렵, 카페 주인들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관광버스로 단체 손님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알록달록 등산복을 차려 입은 중년 관광객 70여 명이 3대의 버스에서 우르르 내렸다. 인근 청풍호나 강원도 영월을 찾는 길에 의림지를 들러 가는 관광객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김정자씨와 이승혜씨는 “의림지가 좀 복잡해지더라도 더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 뒤로 서울에서 온 관광객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와~, 이런 데가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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