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김두식 '헌법의 풍경'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헌법정신

분노해야 한다. 프랑스의 93살 노투사, 스테판 에셀이 요구한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무관심이야말로 이를 대하는 최악의 태도다. 분노하고 정의를 위해 힘써 싸워야 한다. 그러나 그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김두식 교수는 <헌법의 풍경>에서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에 시민이 당당한 주체로서 참여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국가, 법, 법률가, 인권의 문제"라고 말한다.

▲ 경북대 김두식 교수의 책 <헌법의 풍경>.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북한 주장도 문제이지만 이들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우리 내부 종북 세력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내 민족해방(NL) 계열인 당권파 문제가 연일 언론에 부각되면서 진보진영에 대한 여론 호응이 예전 같지 않자 진보진영에 '종북'이란 색깔을 씌우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정치권 내부 일이라며 거리를 두다가 통진당 당사 압수수색 등 강공을 선택한 검찰의 최근 행보도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자가 될 자유'가 있는 나라다. 저자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정신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6월 9일 일본 공산당 시이 가즈오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을 인용했다. '나는 한국에서도 공산당 활동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나라 보수 정치인들과 언론은 발칵 뒤집혔다. '공산주의자가 될 자유'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가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노 전 대통령 발언은 지극히 교과서적인 이야기라고 평했다. 공산주의자들처럼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해주는 것이 사상의 자유다. 저자는 "상당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헌법정신은 종교•표현•사상•양심을 기본권의 하나로 받아들였다"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 정신을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정의한다.

"우리가 이제까지 배워온 헌법정신은 '인정한다, 그러나' 쪽에 가깝습니다. 온통 공자님 말씀 같은 좋은 말로 한 페이지 정도를 장식하고, 막상 구체적인 사례에 들어가면 왜 그 권리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는 데 10페이지를 할애한 법률책들이 다 여기에 속합니다. 권력자들은 누구나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인정한다, 그러나'의 논리를 들이대며 자기 눈에 거슬리는 것을 마음대로 제한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막지 못하면 이미 헌법이 아닌 것이지요."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 "법은 여전히 삶으로부터 유리되어 저 멀리 '전문가들의 세상'에 존재하는 '그림의 떡'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법률전문가들은 우리와 구별되는 뛰어난 사람들이므로, 그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저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일종의 신화도 존재하는 것 같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전문가의 탈을 쓴 법률가들 한마디에 주눅 들어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시민들 삶이었다. 그리고 그런 억울함이 쌓여 법에 대한 엄청난 불신의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저자는 "헌법과 법률의 목적은 흔히 오해하듯 국민을 통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국가 권력의 괴물화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특히 시민에게 주어진 위대한 방패, 진술거부권에 대해 설명한다. '말하지 않을 권리'를 통해 형사사건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지 배우고 익힐 좋은 교범을 제시한다. 아무 말도 안 하는 것, 진술거부권이야말로 피고인이 갖는 가장 강력한 대화 수단이라고 말한다.

검사에 비해 아무 무기도 지니지 못한 나약한 피의자나 피고인이 그나마 존엄성을 지닌 채 자신을 방어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는 절대적인 무기가 진술거부권이란 설명이다. 헌법 12조 2항은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말한다. 진술거부권의 기초가 되는 규정이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특강을 하는 김두식 교수. ⓒ 주상돈

"조사받을 때 거짓말을 해서라도 자기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속한 문제입니다. 진술거부권의 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인간에게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누구나 자기 방어를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침묵하기 마련이라면, 수사기관도 더 이상 진술에 큰 가치를 두지 말고, 달리 증거를 확보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미 서구의 여러 나라들이 이런 정신 아래 과학수사기법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그동안 이름뿐이었던 기본권들을 하나씩 찾아가야 할 때입니다."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

헌법과 법률이 권력통제라는 제 기능을 다하도록 돕는 일차적 책임은 변호사, 판사, 검사를 비롯한 법률가에게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률가들은 자기 집단과 권력자를 옹호하는 데 지식과 능력을 악용해온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어떤 고문이나 조작도 법률가들과 완전히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예컨대 고문의 전제가 되는 구속은 검사의 영장 청구와 판사의 발부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물론 유신헌법 치하의 불법 불량국가 시절에는 판검사의 개입 없이도 정보기관들이 마구잡이로 사람을 잡아다 고문하는 일이 없지 않았지요. 그러나 그런 무지막지한 경우에도 결국은 법률전문가들의 손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엉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법치국가의 탈을 쓰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자기 집단과 권력자를 옹호하는 법률가는 역사에만 존재하는 것 같지 않다. 지난 5월 18일 창원지검 이준명 차장검사는 공식브리핑에서 "노건평씨 자금관리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계좌에서 의심스러운 수백억 원 뭉칫돈이 발견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을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현 수사공보준칙에 따르면 추측성 보도 방지 목적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기소 전에 수사 상황을 공개하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런데 이 차장검사는 추측성 보도 방지 목적은커녕 언론으로 하여금 추측성 보도를 쓰도록 부추겼다. 이 차장검사의 행위는 명백하게 피의사실 공표죄에 해당될 수 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에 고의적으로 흘리려 한 의도가 짙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국가 권력이 괴물로 변할 경우 그 첨병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검찰입니다. 더군다나 우리 검찰 지도부는 대부분 군사독재정권하에서 인권과 거의 담을 쌓고 지내던 조직 분위기에서 잔뻐가 굵은 사람입니다. 이들 중 다수는 과거 옳지 못했던 관행으로부터 한때 자유롭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사족인지 모르지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가지고도 제대로 일할 자신이 없는 검사들은 저처럼 빨리 옷을 벗고 나와야 한다는 말씀으로 검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마칩니다."

형사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사와 증거이다. 그리고 수사와 증거를 통틀어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이 검사다. 특별히 수사와 관련해 생각해보면 검사는 우리 형사소송법상 유일한 수사의 주재자이며, 기소편의주의, 기소독점주의에 따른 엄청난 권한을 지니고 있다. <헌법의 풍경>은 엄청난 권한의 존재는 곧 엄청난 책임도 의미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불법적인 수사가 자행되고 있다면 그에 대한 최종 책임은 검사의 몫이라고 말한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