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제천 배론성지 입구 친환경 산채정식집

1801년 발생한 황사영 백서사건과 천주교 박해의 현장이었고, 1855년 국내 최초 신학교 ‘성 요셉 신학당’이 세워졌던 배론성지.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배론성지 길목에서 좁다란 개울을 건너자 황토색 흙벽과 낮은 지붕이 정겨운 느낌을 주는 식당 ‘또랑길’이 보인다. ‘또랑’은 물이 졸졸 흐르는 작은 개울, 도랑을 일컫는 사투리인데, 식당 옆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뒤편엔 야트막한 산과 절벽이 고즈넉이 서 있어 이름과 풍광이 썩 잘 어울린다.  

▲ 배론성지 가는 길 어귀에 '또랑길'이 있다. ⓒ 안형준

묵직한 나무문을 밀고 들어서자 천장에서 바닥까지 옹골찬 나무와 황토벽이 조화를 이룬 널찍한 공간에 족히 10cm 두께는 돼 보이는 탁자들이 죽 놓여있다. 최대 80명까지 앉을 수 있다는 자리 사이사이에 한 아름은 돼 보이는 통나무 기둥들이 운치를 더한다.

“어서오세요.”

아담한 키에 투박한 미소가 친근감을 주는 중년 남자가 반긴다. 또랑길 대표 이승주(57)씨다.     

직접 농사지어 상에 올리는 곤드레ㆍ방풍나물ㆍ참취

이 대표는 지난 2006년 귀농한 뒤 ‘얼떨결에’ 식당을 시작했다고 한다. 개인 사업을 하며 전국을 떠돈 지 20여 년 만에 부부의 고향인 강원도 정선과 가까운 평창에서 농사를 지으려 짐을 꾸렸다가, 잠시 들른 제천의 산과 물에 반해 그냥 눌러 앉았다고 한다. 

“처음부터 식당을 열 계획은 없었죠. 집을 마련하고, 고추 감자 고구마 등 농사를 지으면서 하나둘 손님을 받다가 그해 7월 밥장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 이 텃밭에서 나는 15가지 작물이 손님상에 오른다. ⓒ 안형준

집 앞의 520평 텃밭에서 곤드레나물, 참취, 방풍나물, 황기, 당기, 감자, 쪽파, 고추 등 열다섯 가지 작물을 직접 재배해 손님상에 올리기 때문에 또랑길의 음식들은 특별히 신선하고 몸에 좋다는 게 이 대표의 자부심이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16가지 반찬과 돌솥밥으로 구성된 ‘돌솥 산채정식’이다.

처음 찾아온 손님들은 대개 세 번쯤 놀란다고 한다. 먼저 하얀 찬기에 담긴 갖가지 반찬들이 ‘시골식당 같지 않게’ 세련되고 정갈해서다. 두 번째는 음식을 상에 놓을 때 정해진 자리를 고수하는 주인장의 꼼꼼함 때문이다. 조기구이, 수육, 산채와 애호박부침 등 반찬마다 정해진 자리가 있어서, 혹시라도 손님이 도와주려다 엉뚱한 곳에 놓으면 이 대표가 정색을 한다. ‘가장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위치’를 지켜야 한다는 고집이 있어서다. 세 번째는 깔끔하고 담백한 맛. 집에서 직접 담근 된장으로 만든 찌개와 밭에서 갓 캐 온 나물로 만든 반찬 등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고소한 향취가 입안에 오래 감돈다.

▲ 또랑길 대표 메뉴 산채정식. ⓒ 안형준

특히 산채정식에 올라가는 색색의 여섯 가지 나물이 개성을 자랑한다. 강원도 전통음식인 곤드레 나물은 사근사근 씹히는 맛과 향이 매력적이다. 중풍을 예방하는 기능이 있다고 동의보감에 나온 방풍나물이나 오가피 새순 무침 등은 쌉싸래한 맛이 낯설지만 ‘왠지 건강에 좋을 듯한’ 느낌에 젓가락질을 하게 된다.

▲ 입맛 돋우는 갖은 나물 반찬과 영양 가득한 돌솥밥. ⓒ 안형준

산채 나물 외에도 ‘밥도둑’이 많다. 금방 튀겨낸 애호박부침, 황기와 당기를 넣고 우려낸 물에 삶은 돼지고기 수육, 사람 수만큼 노릇노릇 구워 낸 조기는 ‘게 눈 감추듯’ 사라진다. 더 인상적인 것은 밥. 찰진 평택 쌀에 대추와 밤, 은행을 넣어 지은 돌솥밥은 맛과 영양을 동시에 챙겼다. 돌솥 산채정식의 가격은 1만원으로, 한 끼 식사 값으로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먹고 나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밖에 곤드레밥이 8000원, 더덕구이정식과 불고기정식이 1만5000원이다.

식재료 중 직접 재배하지 못하는 것은 가깝고 믿을 만한 단골 농가에서 직접 구입한다. ‘평택 쌀' '정선 오가피’ 등 나고 자란 곳이 분명한 식재료에 주인장의 소신이 담겼다.

“저마다 입맛이 다르니 맛은 장담 못해도, 집밥처럼 믿고 먹을 수 있게 해야죠.”

지난달 16일 돌솥 산채정식을 먹어 본 임온유(23•여•대학원생)씨는 “다른 식당들은 화학조미료를 많이 써서 자극적인 맛을 내는데 이 곳은 입맛을 당길 정도의 간만 해서 담백하고, 먹은 뒤에도 속이 편안하다”고 말했다.

안주인 음식솜씨에 일부러 주방 문 열어보는 손님도 

▲ 또랑길 이승주 대표. ⓒ 안형준

아침 일찍부터 밭에 물주고 채소 솎아내고 식당에서 손님들 맞는 일은 이 대표 몫이지만, 또랑길의 ‘맛’을 책임지는 사람은 그의 아내 전옥수(55)씨다. 야무진 음식 솜씨는 식당을 하기 전부터 소문이 났다고. 

“집 짓는 4개월 동안 공사 인부들 밥도 아내가 책임졌는데, 일 없는 인부들도 일부러 들러 밥을 먹고 가곤 했어요. 며칠 전에는 강원도에 결혼식 갔다가 뷔페를 안 먹고, 밥 먹으러 여기 온 단골도 있었다니까요.”

하루는 손님들이 갑자기 주방문을 열었다. 이 대표가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주방장 얼굴이 궁금했다’고 답하더란다. 작은 체구의 아내가 쉴 새 없이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갖가지 나물을 일일이 무쳐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수입 농산물을 쓰지 않고 화학조미료도 최소한으로 줄여 가족의 식탁을 차리듯 건강한 음식을 올리겠다는 고집이 이 부부를 인내하게 한다고.

또랑길은 ‘방송에 나온 집’이 아니다. 인터넷에 ‘제천 맛집’으로 검색해도 찾기 어렵다. 가톨릭의 대표적 순교지 중 하나인 배론성지를 오가는 신자들과 제천 사람들이 알음알음으로 단골이 되어 드나든다. 그러나 직접 기른 재료로 정성을 다해 무쳐낸 나물반찬과 밥그릇을 싹싹 긁게 하는 찰진 돌솥밥을 일단 맛보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매월 첫째 셋째 수요일에 쉬고 나머지 날은 오전 11시부터 저녁 9시반까지 문을 여는 이 식당에 찾아가려면 배론성지 가는 길을 검색하거나 제천시내에서 40번, 80번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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