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특집] 온라인시대 역사 돌아보기 ② 동창 찾기와 채팅

고등학생이었던 지난 2000년, 매주 토요일 밤 11시는 피씨(PC)통신 천리안에 둥지를 튼 ‘전람회’ 팬클럽 오즈의 정팅(정기채팅) 시간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학교에서 벌어진 재미난 일들을 떠벌이거나 영퀴(영화퀴즈), 음퀴(음악퀴즈)를 풀었다. 비록 목소리가 아닌 키보드(자판)로 수다를 떠는 것이었지만 매주 손꼽아 기다릴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 PC통신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오즈의 친구들은 그해 인터넷의 ‘김동률닷컴’으로 이사했고, 오프라인에서도 가끔 만나 공연을 함께 보러 갔다. 이 친구들은 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신촌과 대학로 등을 안내하며 홀로서기를 도와주었다. 객지 생활을 덜 외롭게 해 준 지원군을 온라인에서 만들었던 셈이다. 

2000년을 전후해 인터넷 사이트들이 본격적으로 활성화하면서 PC통신의 연예인 팬클럽들도 대거 인터넷으로 둥지를 옮겼다. 편리한 접속과 손쉬운 정보 검색, 전자상거래와 커뮤니티(모임) 등 훨씬 다채로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에서 본격적인 ‘신세계 탐험’이 시작됐다. 그 중에서도 연락이 끊긴 학교 친구들과 늘 궁금했던 첫사랑까지 찾을 수 있는 동창 찾기 사이트와 채팅(대화)클럽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아이러브스쿨’, ‘다모임’, ‘세이클럽’, ‘하늘사랑’ 등이 대표적인 이름들이다.

추억 속 친구들과 현실에서의 조우

▲ 당시 유행했던 아이러브스쿨. ⓒ아이러브스쿨 화면캡쳐

졸업한 학교 이름을 입력하면 사이트에 가입한 동창과 선생님을 찾을 수 있었던 ‘아이러브스쿨’은 1999년에 등장하자마자 ‘친구 찾기 붐’을 일으켰다. 동창 찾기 열풍은 젊은 층에 국한되지 않았다. 주부 황 모(52)씨는 “2000년대 초반에 딸의 도움으로 아이러브스쿨에 가입해서 보고 싶었던 중학교 때 단짝을 찾았다”며 “아내로, 엄마로만 지내던 일상에 회의가 커질 때였는데 어릴 적 친구와 통화하면서 기쁨과 활력을 얻었다”고 말했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아이러브스쿨’이 시작된 후 2000년 9월까지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 결혼에 이른 사례가 다섯 커플이나 됐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한국방송(KBS) TV에서 연예인이 학교 동창을 찾는 ‘해피투게더-프렌즈’를 시작하면서 프로그램의 인기와 더불어 동창 찾기 열풍이 더욱 고조됐다.

▲ 2000년대 초반, 10대들의 놀이터였던 다모임(좌)과 커뮤니티사이트에서 음악방송으로 전향한 세이클럽. ⓒ 화면캡쳐

또 다른 동창회 사이트 ‘다모임’은 이름, 생년월일, 출신학교 등을 입력하면 지금의 페이스북처럼 알 만한 친구들의 이름이 주르륵 올라오는 방식이었다. 대학원생 최 모(29)씨는 “지난 2002년 이 사이트에서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첫사랑을 찾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남녀 공학이 아닌 학교를 다니던 중고생들은 다모임을 통해 반팅(반 단위로 하는 미팅)이나 정모(정기모임)를 시도해 남녀간 사교의 기회를 갖기도 했다. 또 다모임 안에 학교시절 선생님과 제자 간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져 소통의 장으로 활용됐다. ‘미팅 존’에 얼굴사진을 올리면 ‘얼짱’을 뽑는 코너도 있었고, 이상형의 조건을 입력하면 그에 부합하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코너도 있었다. 다모임은 나중에 연예기획사인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가 인수해서 ‘S.M.온라인’으로 간판을 바꿔달았고 사용자제작콘텐츠(UCC)기반의 오디션 커뮤니티로 변모했다.

동창회와 함께 채팅 전문 사이트들도 인기를 모았다. 1999년 서비스를 시작한 ‘세이클럽’, ‘하늘사랑’, ‘프리챌’ 등이 대표적이다. 동창회 사이트가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을 찾아 인맥을 재구성하는 것이라면 채팅클럽들은 채팅창에 접속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인맥을 만들어나간다는 차이가 있었다.

접속 그리고 만남

채팅사이트의 인맥은 오프라인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단순 친목모임부터 보드게임, 등산, 스키 등의 취미를 공유하는 모임까지 종류도 무궁무진했다. 대학원생 김태준(27)씨는 “2002년 월드컵 경기 때 세이클럽의 친목도모 채팅방에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축구경기를 봤던 즐거운 기억이 오래 남아있다”고 말했다. 세이클럽은 특히 회원들이 자신을 대신하는 ‘아바타’를 만들어 얼굴표정, 머리모양, 옷스타일 등을 꾸밀 수 있도록 한 서비스를 최초로 도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동창회와 채팅사이트가 인기를 끌면서 이런 저런 부작용도 나타났다. <한국일보>, <세계일보> 등의 당시 보도를 보면 동창 찾기에서 만난 상대와 불륜에 빠진 경우, 동창에게 청혼했다 거절당하자 살해한 경우, 선배를 사칭해 사기를 친 경우 등 범법 사례가 속출했다. 또 채팅서비스를 악용해 원조교제와 성폭행 등 성범죄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채팅 사이트들은 원조교제, 폭언 및 음담패설 등을 예방하는 자체 정화활동에 나서야 했다. 세이클럽은 이용자를 중심으로 순회활동을 하는 ‘세이클럽 경찰청’을 만들었다. 하늘사랑은 대화방을 개설할 때 불건전 단어가 들어가면 등록이 안 되도록 시스템을 보완했고 15명의 ‘사이버캅’을 별도로 조직해서 수상한 대화를 고발하도록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미스런 사건들이 이어지고, 다른 한편에서 새로운 커뮤니티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동창 찾기와 채팅 사이트의 인기는 서서히 시들었다. 특히 개인의 미니홈페이지와 사람 찾기 기능을 결합한 ‘싸이월드’가 2000년에 등장한 후 ‘떠오르는 해’가 되자, 동창 찾기와 채팅 클럽들은 ‘저무는 해’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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