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세명대 <검찰관> 공연, 시대를 풍자하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김추자의 폭발적인 성량에 실려 ‘크레센도’로 올라가는 신중현의 ‘거짓말이야’에서는 사랑도 웃음도 모두 거짓말이었다. 유신 시절 ‘록의 대부’ 신중현이 거짓말이라고 외치고 싶었던 건 그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장 원초적인 사랑과 웃음까지도 거짓말이거늘, 하물며…… 결국 제발 저린 독재권력은 그 노래를 금지곡으로 만들어버렸다.

언필칭 ‘민주화 시대’. 검찰은 대통령과도 ‘맞장 뜨는’ 모습을 잠시 보이더니, 정권이 바뀌자 다시 권력의 도구가 되고만 듯하다. ‘스폰서 검사’ 사건은 검사가 향응을 받고 토호세력을 비호해온 그들 사회의 오랜 관행이 불거진 것이다. 진짜 검사가 가짜 검사 같은 짓을 했다고나 할까?

▲ 학생들이 서울 혜화동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에서 <검찰관>을 공연하고 있다. ⓒ 세명대 방송연예과 제공

대학로에서 열린 49개 대학의 <젊은 연극제>

7월 첫 주말 이틀간, 비 내리는 대학로에 <검찰관>이 떴다. 6월19일부터 16일간 전국 49개 대학 연극학도들이 ‘젊은 연극제’를 열었는데, 세명대 방송연예과 학생들이 고골리의 <검찰관>을 무대에 올려 마지막을 장식한 것이다.

그러나 그 검찰관도 가짜. 주인공이 ‘검사스런’ 복장을 하고 도시 곳곳을 누비자 지역의 유력인사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는 진풍경들이 벌어진다. 뇌물과 청탁이 횡행하고 주인공은 가는 곳마다 칙사 대접을 받는다.
  
그는 러시아 어느 소도시 여관에서 돈 없이 빈둥거리던 말단관리에 불과했으나 고위 검찰관으로 오인 받으며 해프닝이 시작된다. 탐욕스럽게 살아오거나 위선과 무능으로 점철된 시장, 지방판사, 우체국장, 병원장, 교육감 등 유력 인사들은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천연덕스럽게 검찰관 행세를 하며 향응과 뇌물을 당연하게 받는 주인공의 속물근성이 맞물려 갖가지 촌극이 이어진다.

마침내 그는 시장의 딸을 꾀는데 성공해 청혼까지 하고, 중앙정부 고위관리를 사위로 맞게 된 시장 집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그러나 주인공이 도시를 떠난 뒤 가짜였음이 밝혀진다.

고골리는 추방되고, 한국 공연은 중단되고

이 작품은 183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 극장에서 초연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니꼴라이1세 황제 시절 부패한 관료 제도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관리를 비롯한 보수세력은 관료제의 존엄성을 뒤흔드는 저열한 중상모략이라고 비난했고, 진보세력은 러시아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풍자극이라고 환호했다.

고골리는 보수언론과 관리들의 비난을 견디다 못해 로마로 피신하여 6년을 머물러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연극의 공연이 중단된 적이 있다. 이승만의 양아들이자 이기붕의 아들이었던 이강석을 사칭한 청년이 경찰서장과 군수들한테 호화판 향응을 받고 다닌 사건이 터졌을 때였다.

고골리는 고국을 떠나야 했지만, 그 작품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다. 자신의 창작 시기를 ‘<검찰관> 전과 후’로 나누고, “<검찰관>은 사회에 올바른 영향을 주기 위해 쓴 최초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 가짜 검찰관이 떠난 뒤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뒤틀린 욕망과 허탈감이었다. ⓒ 세명대 방송연예과 제공

170년 전 러시아가 오늘의 한국?

막이 내리고 극장을 나오면서 드는 생각 한 자락. ‘참, 세상 안 바뀌네.’ 170여년 전 작품이지만 <검찰관>의 촌극이, 연극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실제로 재연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불거져 나오는 ‘영포회’ 문제도 특정 지역에 거점을 둔 사람들의 인사 청탁과 권력 사유화가 빚어낸, 연극 같은 실제상황이다. 공식적인 관료체계는 무시되고 권력에 기대려는 개인의 탐욕이 국정을 농단한 사건이다.

사유화한 권력은 다른 권력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견제하지 못하기에 스스로 부패의 온상이 되고 마침내 사회 전체를 부패하게 만든다. 막강했던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도 내부에서 비롯됐다. 감찰과 검찰 기능이 부패권력의 수호자로 작동했던 것이다. ‘스폰서 검사’에 대한 검찰의 내부 조사 결과는 권력이 스스로를 개혁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해준다.

악인을 묘사하는 데는 탁월했지만, 선인(善人)을 그리는 데는 재능이 없어 좌절에 빠졌다는 고골리. 그것은 그가 묘사할 선인의 모델이 없을 정도로 당시 러시아 사회가 부패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발 우리 좀 잘 살게 해주세요.”

‘검찰관’에게 찾아온 한 서민은 눈물로 시장의 악행을 고발한다. 우리 사회에도 수천만의 서민이 ‘엑스트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진짜 검찰관’은 언제쯤 나타나려나? 모든 게 탄로난 뒤 진짜 검찰관이 도시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연극은 막을 내린다. 그 검찰관은 ‘진짜 같은 가짜’일까, ‘가짜 같은 진짜’일까?

그래도 풍자작가 고골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단 하나 긍정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웃음이다.”

곽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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