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사회적 농업 워크숍 ‘청년이 바라는 농촌의 삶’

지난 2021년 귀농·귀촌 인구가 51만여 명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4.2% 늘어났고, 2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이렇게 귀농이나 귀촌한 인구는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의 일손을 채워줄 것으로 기대되곤 한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귀농·귀촌 사업을 경쟁적으로 벌여 청년을 농촌에 정착시키려 한다. 하지만 귀농 후의 생활이 넉넉한 편은 아니다. 소득은 오히려 준다. 지난해 귀농·귀촌인 실태조사를 보면 귀농인의 평균 귀농 직전년도 가구소득은 3621만 원인 데 비해, 귀농 첫해 소득은 2622만 원으로 1000만 원이 줄었다.

지난해 11월 25일 충북 제천시의 한 호텔 강연장에서 전국 청년 농촌 공동체 대표와 청년들이 모여 워크숍을 열었다. 사진 최은솔
지난해 11월 25일 충북 제천시의 한 호텔 강연장에서 전국 청년 농촌 공동체 대표와 청년들이 모여 워크숍을 열었다. 사진 최은솔

그럼에도 삶의 전환을 꿈꾸며 농촌에 정착한 청년들이 한데 모였다. 경남 남해, 충북 제천, 강원 영월 등 전국 각지에서 짧게는 수개월부터 길게는 2~3년 넘게 농촌 공동체를 형성한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7개 공동체 대표와 공동체에 속한 청년 당사자 등 100여 명은 지난해 11월 25일부터 이틀 동안 충북 제천시의 한 호텔에 모여 사례를 발표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했다.

청년 내려오기엔 농촌은 “저소득, 고 지출”

“농촌에 점점 농사를 지으러 오는 청년은 별로 없습니다. 농업 순소득은 1200만 원 정도로 어떻게 보면 용돈 할 정도의 금액이 지금 농사를 지어 얻는 평균소득입니다.”

임경수 고산 퍼머컬쳐 센터장이 “중첩된 위기와 지역사회”라는 제목으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 최은솔
임경수 고산 퍼머컬쳐 센터장이 “중첩된 위기와 지역사회”라는 제목으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 최은솔

첫날 기조발제를 맡은 임경수 고산 퍼머컬쳐 센터장은 청년을 부르는 농촌의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다. 임 센터장은 농가 수입과 지출에 관한 구체적인 데이터도 제시했는데, 지난 2020년 기준 억대 수입을 올린 농부는 전체 농가의 2.6%에 불과했다. 농짓값이 싼 전남지역에서도 땅값을 빼면 농가당 평균 연 순소득이 1200만 원 정도였다. 임 센터장은 “농가의 연간 노동시간은 2000시간, 주당 42시간으로 적은 편도 아니다”라며 “농촌에서 농업만으로 생계를 잇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농촌에 사는 가구 살림은 두 가지 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수입이다. 농사를 지어 올린 농업 총수입과 농업 말고 다른 일로 번 수익이 포함된다. 다른 하나는 지출이다. 농사를 지을 때 드는 농업경영비와 가정의 소비지출을 포함한다. 임 센터장은 지난 30년간 농업 총수입은 3.6배 증가했지만, 농업경영비는 7.9배 늘어나 결국 전체적인 농가 수익이 별로 오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비닐과 농약 등 농사에 필요한 자잿값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도시와 농촌의 소비지출을 비교한 그래프. 농촌의 소비지출이 도시에 비해 적지 않음으로 보여준다. 그래픽 최은솔
도시와 농촌의 소비지출을 비교한 그래프. 농촌의 소비지출이 도시에 비해 적지 않음으로 보여준다. 그래픽 최은솔

임 센터장은 농촌에 가면 소비가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실제 통계수치를 보면 알 수 있다. 임 센터장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도시가구의 월 소비지출은 295만 원이고, 농촌 가구의 월 소비지출은 224만 원으로 농촌이 4분의 1 정도 적은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소득 수준의 차이를 생각하면 이 격차는 그렇게 크지 않다. 더구나 “농촌 4인 가구는 오히려 도시가구보다 더 많이 지출한다”는 것이 임 센터장의 설명이다. “기반시설이 부족해서 자가용을 2대 몰거나, 택시를 타는 등 교통과 서비스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다.

농가 수익은 낮고 소비는 적지 않은 농촌에서 개인들은 현실적으로 ‘겸업’을 택한다. 농사일이 있을 때만 농사를 짓고 나머지 기간엔 일용직이나 기타 본업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20년 기준 103만 농가 인구 가운데 60% 정도인 62만 가구만 전업농이었다. 나머지 40%는 농사 외에 ‘투잡’을 뛰는 겸업농이다. 특히 경제활동이 활발한 30~50대에서는 이른바 ‘쓰리잡’을 뛰는 이중 겸업 비율이 높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이러한 겸업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임 센터장은 농촌의 시가지인 ‘동’ 지역과 멀리 떨어진 ‘읍·면’ 지역에는 농림어업, 건설·제조 분야 말고는 일자리가 부족해 겸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자립 기반 없는 청년에게 ‘자산’ 나눠주자

청년이 농촌에서 농업만으로 생계를 꾸리긴 쉽지 않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청년은 농촌에 내려와 살만한 터전이 부족하다. 임 센터장은 그 대안으로 자립 기반이 없는 청년을 위한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제시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에 존재하는 자원을 활용해 사업모델을 만들어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지역에 필요한 것을 주민끼리 생산하여 저렴하게 공급하는 자급자족 체계다. 이 방식을 적용하면 땅값 부담도 적고 사업 규모와 운영방식이 유연해져 불필요한 비용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예컨대 전북 완주군의 숟가락 공동육아 협동조합은 읍내에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기 어려운 가정끼리 모여 공동육아를 한다. 월급을 받는 봉사자는 1명만 있고, 조합 내 학부모가 돌아가며 동네 아이들 육아를 맡는다. 덕분에 인건비는 적게 들고, 서비스 품질은 높다. 이 조합에서는 이른바 ‘요일 식당’도 운영한다. 요일별로 요리사가 달라져서 어떤 날엔 한국 가정식을, 어떤 요일엔 일본 가정식을 내놓는 식이다.

마을 주민이 직접 아이를 돌보는 숟가락 공동육아 협동조합의 모습. 자료제공 임경수
마을 주민이 직접 아이를 돌보는 숟가락 공동육아 협동조합의 모습. 자료제공 임경수

임 센터장은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현실화하는 방안으로 ‘지역자산화’ 모델을 제시했다. 다수의 주민이 힘을 모아 토지와 건물 등 공동 소유의 자산을 마련해 운영, 관리 권한을 확보하고 그곳에서 발생한 이익을 공동체에 다시 투자하는 개념이다. 현실적으로는 재원이 있는 정부가 지원하고 시민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임 센터장의 제안은 귀농·귀촌한 청년들이 이런 공동자산을 이용하게 하자는 것이다. 유사한 사례로 충남 홍성의 ‘잇슈창고’는 농협의 폐창고를 리모델링해 지역에 정착한 청년들이 쓸 공유 오피스, 카페, 북카페, 공유 주방으로 만들었다.

귀농귀촌 청년 겪어보니…“자립이 중요”

이날 현장에는 다양한 곳에서 청년 정착을 도왔던 6개 단체 대표의 발표가 있었다. 강원도 화천군에서 귀농학교를 운영하는 박기윤 대표는 청년농부를 육성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박 대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봤으나 결국은 청년이 직접 ‘농사를 잘 짓는 방법’을 아는 게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청년이 자립 가능한 농가를 꾸리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농장을 운영한다. 귀농학교 졸업생은 실제로 농사로 수익을 올려 자립해야 한다. 학교와 농장을 분리해 농사만 전담하는 농사팀장을 뒀다. 졸업생들은 학교 농지, 기숙사, 농기계를 이용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일부 졸업생은 지난해 7000만 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과제로 박 대표는 귀농한 청년 가운데 자립기반이 없는 청년에 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귀농학교에서 청년들이 2년간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농사지을 땅과 숙소를 구할 돈이 생기지 않는 문제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관련 지원을 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청년들이 자신의 주거나 땅을 마련하기 위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북 완주군 문화예술협동조합 ‘씨앗’의 김주영 대표는 청년들이 자립할 때 필요한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씨앗’은 2013년부터 완주로 귀촌한 문화기획자, 청년활동가 중심으로 설립된 단체다. 이곳에서는 커뮤니티부엌, 게스트하우스 등 공유공간을 운영한다. 지역 기반 문화기획을 돕기도 하고, 관련 청년 정책의 제안과 확산을 맡는다. 이곳 공동체의 특성은 ‘로컬베이스캠프’라는 공동체 공동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완주에 정착한 청년들은 이 공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단기 거주하면서 문화기획 등을 할 수 있는 전시장을 쓸 수도 있다.

전북 완주군에서 지역에 정착한 청년에게 공유공간을 제공하는 단체 ‘씨앗’의 김주영 대표. 사진 최은솔
전북 완주군에서 지역에 정착한 청년에게 공유공간을 제공하는 단체 ‘씨앗’의 김주영 대표. 사진 최은솔

질의응답 시간에는 실제 농촌에 정착을 시작한 청년들이 손을 들었다. 농촌 생활 4개월을 맞은 A씨는 실제로 농촌 생활에서 생활비가 너무 많이 드는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질문했다. 패널로 참석한 박종관 상주 정양리 이장은 “맞이하는 입장에서 매우 송구한 부분”이라며 “개인과 민간의 힘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박 이장은 “농촌 임금도 오른만큼 다양한 욕구, 소득, 일자리로 연결해줘야 한다”며 “사회적 서비스가 연결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발표 뒤 지역에 정착한 청년 당사자가 패널들에게 생계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다. 사진 최은솔
발표 뒤 지역에 정착한 청년 당사자가 패널들에게 생계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다. 사진 최은솔

문영규 곡성 항꾸네협동조합 대표는 “지인 가운데 농촌에 정착한 청년 부부는 농사일이 없을 때면 전국 각지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등 소득을 메우기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한다”고 답했다. 화천 귀농학교의 박기윤 대표는 현재 전업농 위주로 정부 지원이 집중되는 점을 꼬집었다. 현재 정부에서 진행하는 청년창업농 정책이 전업농에 대해서만 지원하는 등 제도의 빈틈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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