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금융개방, 높은 무역의존도...외부위기 때마다 흔들
[두런두런경제] 김광진 제정임의 경제카페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최근 그리스 위기의 여파로 국내 주가가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치솟는 등 금융시장이 큰 파동을 겪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는 모습인데요, 왜 그렇습니까.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에 비해 금융시장 개방도가 너무 크고, 무역의존도도 높은데다 이미 한번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에 대한 ‘낙인효과’도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외국인이 들고 나는 데 규제가 거의 없어서 ‘글로벌 현금인출기(ATM)’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죠. 2000년대에 자본자유화가 본격화한 이후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자본의 85%가 주식•채권 등 수시입출입성자금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투기자본의 대량유입으로 금융시장의 취약성이 커진 것이죠. 현재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약 35%인 400조원 정도를 외국인이 갖고 있고, 채권시장의 외국인 보유잔액도 약 85조원으로 지난 2006년의 4조원에서 수십배로 늘었습니다. 파생상품시장에서 외국인 거래량도 30~4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요. 금융 뿐 아니라 실물부문의 대외의존도도 높은데요, 201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입액의 규모가 102%입니다. 이는 일본 미국 등 대외의존도가 낮은 나라들에 비해 무려 네 배 수준입니다. 그래서 해외시장 상황이 나빠지면 수출 감소 등으로 실물경제에도 직격타를 맞게 되죠.
FTA 효과 본격화시 대외개방성 더 커질 우려
김: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대외개방성이 이렇게 커지게 된 이유는 뭔가요.
제: 우리나라는 지난 92년 자본시장개방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상당히 신중한 접근을 했습니다만,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앞두고 개방 폭을 대폭 확대했습니다. 그러다 97년 외환위기를 맞았고, 이 때 국제통화기금(IMF) 등 외부 압력으로 거의 완전개방을 추진하게 됐죠. 98년 5월 상장주식과 채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한도를 없앴고, 99년과 2001년의 1,2차 외환자유화를 통해서 외환시장 빗장도 완전히 풀었습니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과 채권, 외환투자에 거의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아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개방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입니다. 특히 앞으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한유럽연합(EU) FTA의 효과까지 본격화하면 외국인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김: 금융과 무역의 높은 대외의존성 때문에,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는 등 유럽 상황이 악화하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못지않게 한국 경제가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도 없지 않은데요, 2008년 당시 우리나라 금융시장 상황은 어땠었나요.
제: 당시 언론들이 ‘금융시장 패닉, 공황상태’라고 묘사할 정도였죠.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파가 퍼졌던 2008년 9월과 10월 당시에 주가는 연초 1800대였던 코스피지수가 900대(10월24일 938.75)까지 폭락했습니다. 또 원•달러 환율은 달러 당 1000원 내외에서 1500원대(2009년3월 1570원)까지 치솟았고요. 이런 일은 그 후에도 여러 번 반복됐는데요, 지난해 8월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했을 때도 미국의 주가가 7% 빠지고 신흥국 주가평균이 11% 떨어지는 동안 우리나라의 코스피지수는 무려 17%나 폭락했습니다. 우리나라 증시가 세계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이죠.
김: 그리스 상황이 더 나빠지면 우선 유럽계 자금이 대규모로 빠져 나갈 가능성이 높은데요,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유럽계 자금의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제: 우리나라의 장단기외채 약 4000억 달러 중 유럽계로부터 빌린 자금이 전체의 절반가량이라고 하니 굉장히 비중이 큰 셈입니다. 유럽 상황이 나빠지면 유럽계 은행들이 국내 은행에 빌려준 자금을 회수하거나 더 이상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국내 은행들은 외환위기 당시처럼 외화자금 압박을 받게 되죠. 또 국내 주식시장의 총 외국인 보유액 중 유럽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28% 정도이고, 채권시장의 외국인 보유금액 중 유럽계 투자비중도 27%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들이 급격히 자금을 회수하면 주가는 내려가고 환율은 오르는 불안한 상황이 초래될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에도 유럽 사정이 나빠지자 유럽계 투자자들이 대규모로 채권과 주식을 팔아 주가 하락과 환율상승을 주도한 일이 있습니다.
금융거래세 도입 등 단기투기자금 유출입 규제 위한 근본적 대책 요구
김: 외국인자금의 급격한 유출입으로 경제가 흔들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안전장치가 필요할 텐데요, 급격한 외환유출입을 막기 위해 정부는 어떤 대응을 하고 있습니까.
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지만 근본적 대안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은행들의 선물환포지션 관리를 강화해서 실질적으로 외화차입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또 외국인 채권투자의 비과세를 폐지했고, 은행세로 불리는 외환건전성 부담금을 은행들의 장단기 외화대출금에 차등적으로 부과해서 단기외채를 상대적으로 줄이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죠. 또 외환보유고를 확충해서 2011년 말 기준으로 3168억달러, 세계 7위 수준의 외환보유고를 쌓아놓기도 했습니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불과 수십억달러였던 데 비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비해서도 1000억달러 이상 많은 수준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하고,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과의 통화스왑계약을 확대 체결하는 등 추가적인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또 단기투기자금 유출입을 완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김: 일부에서는 토빈세 혹은 금융거래세 등 단기투기자금의 유출입을 규제하기 위한 조세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제: 토빈세 혹은 금융거래세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 교수가 제안한 것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자금에 약간의 세금을 부과해서 단기투기성 외화자금의 유출입을 억제하자는 취지입니다. 브라질이 대표적으로 금융거래세를 도입한 나라인데요, 단기성 외화자금에 2009년 거래세를 2% 부과했다가 자금 유입이 늘자 4%, 6%로 인상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다 외국인투자가 줄면 세율을 낮추는 등 유연성을 발휘했고요. 브라질은 금융거래세 도입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가 늘자 작년 한 해 동안에도 세 차례 세율을 올렸다고 합니다. 브라질의 경우를 보면 결국 외국인투자의 유출입은 세금의 존재보다 그 나라에서의 투자수익성에 좌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브라질의 경우 금융거래세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와 탄탄한 경제 성장에 힘입어 달러화 기반의 외국인 자금 유입이 급증하고 있거든요. 지금 유럽연합(EU)도 금융거래세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프랑스와 독일이 적극적인 반면 금융 산업 비중이 높은 영국이 반대해 결론을 못 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일부 정부관계자와 전문가들이 ‘모든 나라가 한꺼번에 도입하지 않고 우리만 먼저 도입하면 경쟁국으로 외국계 자본이 떠나버리기 때문에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며 반대하는데, 브라질 경우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금융거래세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시나요.
제: 그렇습니다. 우리도 금융거래세를 도입해서 단기투기성 자금을 통제할 수단을 확보하는 등 지나치게 대외변수에 취약한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높일 제도적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기사는 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5월 23일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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