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이규연 JTBC 보도국장: 신문기자가 본 방송

 “신문기자가 홀로 사냥하는 호랑이라면 방송기자는 무리 지어 사냥하는 사자와 같습니다. 방송기자는 카메라•편집•그래픽팀과 협연을 해야 하기에 팀 간 호흡을 중시하지만 신문기자는 홀로 취재하는 경우가 많지요. 자연스레 편견도 생깁니다. 신문기자들이 ‘방송기자는 사안에 대한 깊은 관심이나 네트워크가 부족하다’고 보거나, 방송기자들이 ‘신문기자는 편협하고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오해가 대표적입니다.”

▲ 신문기자와 방송기자의 오해에 대해 설명하는 이규연 JTBC 보도국장. ⓒ 박다영

신문기자와 방송기자, 나아가 신문과 방송, 두 매체의 차이를 설명하는 이규연 JTBC 보도국장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경험자 특유의 자신감이 실려있었다. 그는 20년 넘게 <중앙일보>에서 신문기자로 활약하다 작년 초 JTBC 보도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문기자와 방송기자 모두를 경험하고 또 가까이에서 본 셈이다. ‘신문기자가 본 방송’이라는 강연 주제는 그에게 꼭 맞는 옷이었다.

그는 왜 방송에 뛰어들었을까? 신문기자 시절 탐사보도 전문기자와 에디터로 일하며 '난곡 리포트'와 '루게릭, 눈으로 쓰다' 등 치밀한 현장성 기사들을 쏟아낸 그였다. 탐사보도의 세계에 푹 빠져있던 그가 글이 아닌 영상 중심의 방송으로 ‘전업’한 이유는 ‘신문의 위기’와 맞물린다.

“신문은 시각, 라디오는 청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데 TV는 시각과 청각 모두 전달할 수 있는 파괴력을 가졌습니다. 신문은 눈으로 읽는 것 자체가 노동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과연 노동하는 기분으로 신문을 읽을까요? 물론 오피니언 그룹에서 신문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감소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대중적 영향력은 방송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국장은 신문과 방송은 ‘공공재적 성격’에 따라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방송을 송출하는 전파는 공공재의 성격을 띠고, 송전탑 등 기타 인프라 또한 정부가 확충해 준 것이기에 공공재적 성격이 짙다. 하지만 신문은 개인이나 기업이 목적과 지향에 따라 만들 수 있어 방송보다 제 색깔을 드러내기에 비교적 자유롭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시간적, 공간적 미디어인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죠. 시간대별로 프로그램이 편성되는 방송과 달리 신문은 면별로 구성되고, 구독률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신문과 달리 시청률은 방송의 생명과 직결됩니다. 저는 아침 7시면 전날 JTBC 시청률을 알려주는 문자를 받는데 가장 숨막히는 순간이죠.”

▲ 이 국장은 시간에 쫓겨 제작에 소홀한 방송 뉴스의 환경을 지적했다. ⓒ 박다영

짧은 취재, 긴 제작 시간…깊이 있는 뉴스의 실종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하는 방송 저널리즘의 문제는 없을까? 이 국장은 ‘취약한 제작환경’을 지적했다. 방송은 영상화 작업의 특성상 구성과 편집 등 제작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취재 시간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방송은 신문에 견주어 속보성에 치우치다 보니 더욱 시간에 쫓긴다. 말 그대로 매일 ‘시간 싸움’이다. 특히 방송보도는 아이디어를 이미지로 표현해야 하니 분석보다는 감성에 치우치고 호소력을 위한 과장도 서슴지 않는다.

“방송보도에선 뉴스 추적을 금합니다. 그러니 한 사안에 대한 다각도의 깊은 취재는 현실상 불가능합니다. 방송에서 중요한 것은 ‘그림이 되는가’입니다. 모든 장면을 보여줄 정도로 담아냈느냐가 관건이죠. 그렇다 보니 문제를 어떻게 들여다볼지에 대해선 고민하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론 한국 방송 저널리즘 자체가 취약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방송 제작환경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선 한국 저널리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 방송 저널리즘의 뿌리는 미국이다. 미국 저널리즘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달되면서 전형적인 형태로 굳어졌다. 반면 미국은 1970년대 케이블TV가 등장하면서 언론 환경이 재편됐다. TV가 등장하면서 신문은 심층성을 강화해야 했고 이 시스템은 일본에도 전해졌다.

하지만 이 보도국장은 변화 대신 과거 방식을 고수하는 한국 저널리즘의 행태를 지적했다. 그는 “조금씩 변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스트레이트 기사 형식만이 정통 저널리즘이라는 인식은 여전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신문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보도국장은 한국 방송보도의 변하지 않는 원칙 하나는 ‘1분30초‘ 리포트를 고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왜 1분30초여야 하는가’에 대한 뚜렷한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주로 BBC나 CNN의 리포트를 보고 모든 방송사가 비슷할 거라고 판단하지만, 방송의 형식이나 전달 방식은 국가나 방송국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한국 방송이 고집하는 1분30초 리포트는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하나의 뉴스 형태일 뿐이죠. 신문은 그나마 자유로운 글쓰기나 형식의 틀에서 벗어나면서 콘텐츠가 풍성해지고 있어요. 하지만 방송 보도는 놀랄 만큼 여전히 보수적입니다.”

▲ 방송뉴스가 '1분 30초'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 국장은 말한다. ⓒ 박다영

통합뉴스룸을 통한 심층적 탐사보도

이 보도국장은 획일화하고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방송보도를 바꾸는 수단으로 ‘통합뉴스룸’을 거론했다. 통합뉴스룸이란 신문의 심층성과 방송의 속보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뉴스가 제작되는 공간부터 경계를 허무는 것을 뜻한다. 신문사 편집국과 방송국 보도국의 물리적 결합이다. 뉴스 품질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협업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지난해 독일에서 열린 세계편집인포럼에서 등장한 주제 중 가장 큰 과제도 뉴스룸 혁신이었다. 미국 언론 70% 이상, 유럽 50% 이상이 이미 뉴스룸을 혁신했다. 현재 국내에는 CBS, JTBC, TV조선, 채널A 등 일부 방송사들이 방송•통신•오프라인 간 통합뉴스룸을 운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문과 방송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의 특성상 통합뉴스룸의 한계를 지적한다.

“물론 신문과 방송이 사자와 호랑이 관계처럼 이질적이고 섞이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통합뉴스룸이 전 세계적으로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초기 통합에 실패했던 싱가포르도 분리 이후 다시 융합했습니다. 과거에 실패한 이유는 적합한 형식을 찾지 못한 점입니다.”

이 국장은 신문과 방송 취재부서를 한 공간에 두는 식의 단순한 통합 대신 기능 분할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기능을 한 사람에 집중해 단순히 인건비를 줄이자는 식 통합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기능분할을 전제로 통합한 뒤 앞으로 5년 뒤를 내다보고 단계적으로 차근히 통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외에서는 기능 분담을 위해 글을 쓰고 리포팅을 하는 본 업무에 집중하고 나머지 업무는 전문 디렉터나 PD가 담당한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통합 대신 뉴스 조직의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그가 강조하는 통합뉴스룸의 전제 조건이다. 통합뉴스룸을 통해 만들어진 물리적, 기능적 인프라는 궁극적으로 질 높은 뉴스 콘텐츠를 지향한다. 그는 스페인 민영방송사의 심층탐사보도 방송을 사례로 들었다.

“첫 장면에서는 무희가 춤을 추고, 코미디언들이 대통령을 소재로 농담을 하면서 시작합니다. 가볍고 재미있게 시작하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거죠. 잠시 뒤 장면이 바뀌고 진지한 탐사보도가 시작됩니다. 친근하면서도 보도에 충실한 정통저널리즘 영역에 가까운데 다양한 형식과 요소의 고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사례는 가까운 일본에도 있다. 일본에는 국영방송사로 NHK, 민영방송사로 예능 중심 후지TV, 보도 중심 TV 아사히 등이 있다. 특히 TV 아사히에는 메인 뉴스보도 프로그램인 ‘보도스테이션’이 있다. 주목할 사실은 NHK가 TV아사히의 보도스테이션 때문에 메인뉴스 시간대를 바꿨다는 점이다. 동시간대 보도스테이션의 시청률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10시에 시작하는 보도스테이션은 크게 4~5개 꼭지를 짧게는 7분에서 12분까지 심층적으로 다루고 나머지 뉴스는 짧은 브리핑으로 처리한다. 다각도 접근방식은 한국의 주간 탐사보도물에 가깝다. 이 형식이 도입된 게 1984년이라는 점은 놀랍다.

“처음에는 TV아사히 보도스테이션도 고전했습니다. 깊고 심층적인 방송 뉴스를 누가 보느냐며 반대했었죠. 하지만 방송 1년 만에 최고 뉴스 프로그램으로 올라섰어요. 그리고 20년간 메인뉴스의 최강자로 군림했습니다. 우리는 구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습니다.”

▲ 신문과 방송이 적합한 형식의 혁신을 통해 융합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국장의 생각이다. ⓒ 박다영

JTBC의 혁신, ‘5분 보도’와 ‘카툰법정’의 등장

그렇다면 JTBC는 어떤 방송보도 혁신을 꾀하고 있을까? 억대 비용이 오가는 밤 10시 프라임 타임에 JTBC는 ‘뉴스’를 내보내는 초강수를 띄웠다. 그리고 타 종편이 개국 이후 메인뉴스 시간대를 계속해서 바꾼 것과 달리 JTBC는 10시를 고수했다. JTBC 전략은 ‘구성뉴스’였다. 공중파와 전혀 다른 구성의 TV아사히 보도스테이션을 차용했다.

“SBS 개국 당시엔 소비할 콘텐츠가 부족한 상태였지만 지금은 콘텐츠가 넘쳐납니다. 한 시장에 후발주자가 진입할 때 소비 부족 상태에선 잘 나가는 주자들의 상품을 베끼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하지만 과잉 충족 시장 진입에는 무조건 차별화 전략을 구상해야 합니다.”

JTBC ‘뉴스10’은 시작에서 주요 뉴스를 간단히 브리핑하고 심층분석이 필요한 서너 가지 주제를 ‘구성뉴스’로 담아낸다. 정치부와 사회부 등 각 부서에서 다각적으로 사안을 들여다보며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10분간 하나의 사안에 집중한다. 이슈추적 코너에서는 이미 다룬 기사 중에서 중요도에 따라 후속으로 심층취재한 것을 보도한다. 기자가 직접 그림을 그리며 설명하는 뉴스, 시청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법정 내 이야기를 카툰으로 담아내는 뉴스도 있다. 신문과 방송이 통합되면서 신생방송사로서 다양한 모험을 시도한 JTBC이지만 이 모든 전략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3월 3주간 0.9%대를 유지하는 등 1%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여기서 1%는 보도채널의 영향력과 직결됩니다. 케이블이나 종편에서 시청률 1%가 넘을 경우 영향력이 발생한다고 말하는데 하루 종일 뉴스보도를 하는 YTN도 1%가 넘는 시청률은 아침 시간대에 불과하죠. JTBC가 전체 보도채널 중 메인뉴스 시간에는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현재 상승 추세에 있다는 점을 주목했으면 합니다.”

방송 개시174일째인 오늘(22일)까지도 모든 종편의 미래가 긍정적이거나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호의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매서운 평가가 더 많다. 종편들이 숱한 의구심과 한계를 넘어, 통합뉴스룸에서 ‘뉴스의 혁신’을 이뤄낼 수 있을까? 방송 뉴스의 진화냐 도태냐, 종편들은 갈림길에 서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저널리즘특강>은 보도와 칼럼, 방송제작, 매체창업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담론형성과 의사소통에 크게 기여해온 분들이 진행합니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언론사의 핵심간부와 논객들이 한 특강을 <단비뉴스>가 중계합니다. 이 특강은 우리 저널리즘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도 흥미롭지만, 학생이 쓴 기사를, 함께 강의를 듣는 강좌책임교수가 데스크를 봄으로써 ‘강연•연설기사 쓰기’ 수련을 겸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특히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의 관심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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