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칼럼]

칼럼에 타당한 얘기만 담으려 최선을 다하지만,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열어두는 편이다. 그래서 댓글 등 독자 의견에 참고할 부분이 있는지 열심히 살핀다. 지난달 <한겨레> 칼럼 ‘원전 오염수가 후쿠시마를 벗어날 때’를 반박한 11월 17일치 독자투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위험, 정확한 정보로 판단해야’도 반갑게 읽었다. 다만 사실과과학네트워크 활동가가 쓴 그 글은 해당 단체를 구성하는 원자력 관계자들의 평소 주장을 대체로 반복하는 내용이었다.

일본 정부가 내년 봄 후쿠시마 제1원전 내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기로 한 가운데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단이 지난 10일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항구에서 채취된 물고기 샘플을 옮겨 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내년 봄 후쿠시마 제1원전 내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기로 한 가운데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단이 지난 10일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항구에서 채취된 물고기 샘플을 옮겨 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관한 국내 친원전 인사들의 의견은 ‘일본 정부 및 도쿄전력과 동일함’처럼 보인다. 오염수는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방사성물질을 걸러내 안전한 ‘처리수’가 됐으며, 이 설비로 못 거르는 삼중수소는 바다에 방류해도 무해하다는 주장이다. 또 후쿠시마에서 소아갑상샘암 환자가 많이 나온 것은 과잉진단의 결과이며, 피폭 수준이 낮아 건강 피해는 전혀 없다는 얘기다. 방사성물질이 대거 검출된 후쿠시마산 생선을 마음껏 먹어도 괜찮다고 한다. 이들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등 친원자력 단체의 기준을 논거로 들고, 유럽방사선위험위원회(ECRR) 등 대안 조직의 이견은 배척한다.

반면 국내외 반핵 환경단체와 의학자 등은 이를 반박한다. 요지는 이렇다. 첫째, 오염수 처리와 폐로 과정을 신뢰할 수 없다. 다핵종제거설비로 걸렀다는 오염수의 70%에서 기준 이상 방사성물질이 검출됐다. 다시 걸러서 방류한다지만, 그래도 삼중수소와 탄소-14 등 일부 핵종은 남는다. 제대로 거를지 알 수 없고, 걸러도 여러 방사성물질이 남는 오염수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폐로까지 수십 년 동안 계속 바다로 흘러든다. 오염수가 태평양을 돌아오면 묽어진다지만, 일본에서 선박들이 평형수를 싣고 와 우리 바다에 쏟을 때, 일본 근해와 태평양에서 잡힌 수산물이 수입될 때는 즉각적 위협이 될 수 있다.

둘째, 삼중수소는 먹이사슬을 통해 농축되므로 위험할 수 있다. 국내 대표적 역학자인 백도명 국립암센터 초빙의(전 서울대 보건대학장)는 “삼중수소가 생물체의 몸에 흡수돼 유기물결합삼중수소(OBT)가 되면 유전체를 직접 손상시킬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한 생명체에서 만들어진 유기물결합삼중수소는 다른 생명체가 먹고 먹히면서 농축된다”며 “삼중수소의 지속적 유입은 전체 생태계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셋째, 후쿠시마에서 사고 당시 18살 이하였던 38만여 명 중 300명 가까운 소아갑상샘암 의심·확진자가 나온 것은 과잉진단이 아니라 방사선 피폭 탓이다. 원자력안전위원을 지낸 김익중 전 동국대 의대 교수는 원자력계가 국내 대학병원 진단 사례를 들어 ‘후쿠시마 소아갑상샘암 발생은 정상 범위’라고 한 데 관해 “특정 국가의 특정 병원 사례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소아갑상샘암의 세계적 통계치는 의학 교과서에 실린 대로 100만 명당 1~2명”이라며 “후쿠시마는 세계적 통계치에 비해 100배 정도 증가한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일본 오카야마대 환경생명과학대학원의 쓰다 도시히데 교수 등은 지난 8월 국제학술지 <환경과 건강>에 실린 논문에서 “체르노빌 연구와 병리적 증후 등을 종합할 때 후쿠시마 소아갑상샘암 증가는 과잉진단이 아닌 방사선 피폭 탓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논문은 “100밀리시버트(m㏜) 이하 저선량 피폭도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가 많다”고 밝혔다.

논문바로가기.pdf

넷째, 방사능오염 식품은 ‘권고선량 이하’라도 먹은 만큼 암 발병 위험이 커진다. 김익중 교수는 “방사선의 기준치는 관리용일 뿐 의학적으로 안전기준은 없다”며 “피폭량과 암 발생은 정비례 관계”라고 말했다.

다섯째, 일본 정부를 옹호하는 국제기구들은 연구윤리를 의심받고 있다. 쓰다 교수 등은 같은 논문에서 유엔방사선영향과학위원회(UNSCEAR) 등 원자력 관련 기구들이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등의 자금을 받고 활동했다고 밝혔다. 백도명 교수도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는 원전업계에서 경제적 혜택을 받으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집단”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를 믿고 오염수 방류를 지켜보는 것이 옳을까. 직업적 이해를 떠나 국민의 잠재적 피해를 함께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돈이 들어도 일본 땅 안에서 오염수를 처리하라’고 요구해야 옳지 않을까.

* 이 글은 <한겨레> 11월 22일 자에 실린 [제정임 칼럼]을 신문사의 허락 하에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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