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0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수상작 - 뉴욕시 택시 산업의 비밀

방글라데시 출신 택시 운전사 모하메드 호크(Mohammed Hoque)는 미국 뉴욕의 상징인 노란 택시에 희망을 걸었다. 뉴욕에서 가족들과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꿈이었다. 택시를 소유할 수 있는 허가증 ‘메달리온’을 사면 수익을 온전히 챙길 수 있었다. 5만 달러를 지불하면 메달리온 구매를 위한 대출을 주선하겠다는 중개인의 전화에 선뜻 응했던 이유다.

그는 한 해에 약 3만 달러 정도를 벌었다. 그러나 그가 받은 대출은 수수료와 이자를 합해 170만 달러가 넘는 규모였다. 심지어 모하메드 호크는 그가 받은 대출 액수와 조건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는 대출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높은 이자율을 감당하기도 힘들었다. 생계를 꾸릴 여력도 없었다. 한 달에 5000달러를 대출 상환에 써야 했지만, 메달리온을 구매한 뒤 한 달 수입은 6400달러에 그쳤다.

2016년 이후 모하메드 호크와 사정이 비슷했던 뉴욕의 택시 운전사 950명이 파산을 신청했다. 2018년에는 메달리온 소유자 3명을 포함해 8명의 택시 운전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할 수 없는 거대한 비극이 뉴욕 택시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노란 택시(yellow cab)은 뉴욕을 상징하는 교통수단이다. 이 택시를 운전하려면 허가증인 메달리온이 필요하다. 치솟은 메달리온 가격은 운전사들을 약탈적 대출로 몰아넣었다. pixabay
노란 택시(yellow cab)은 뉴욕을 상징하는 교통수단이다. 이 택시를 운전하려면 허가증인 메달리온이 필요하다. 치솟은 메달리온 가격은 운전사들을 약탈적 대출로 몰아넣었다. pixabay

문제 해결로 이어진 탐사보도

배후에는 은행, 중개인, 택시 회사 등이 있었다. 그들은 메달리온 경매에 참여해 가격을 인위적으로 부풀리고, 무분별하게 대출을 주선했다. 영어가 서툰 이민자 출신 택시 운전사들에게 대출 조건을 명확히 알리지 않았다. 몇 년 안에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면 최고 24%까지 높은 이자율을 적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게다가 운전사들의 신용이나 자산도 조회하지 않고 대출을 실행했다. 뉴욕시는 메달리온이 마치 성공을 보장하는 것처럼 광고했다.

메달리온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거품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뉴욕시의 메달리온 소유자는 평균적으로 한 달에 약 5000달러를 벌었고, 그중 약 4500달러를 대출 상환에 써야 했다. 생계를 잇기 위해 운전사들은 메달리온을 담보로 더 높은 이율의 재융자를 받았다. 악순환이 이어졌다. 메달리온 가격 거품은 2014년에 정점을 찍고 하락하기 시작했다. 택시 운전사들의 삶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메달리온 가격의 변동 추이를 나타내는 그래프. 2014년 말 메달리온 가격 거품이 터지면서 많은 운전자들이 메달리온을 잃고 파산했다. 출처 The New York Times
메달리온 가격의 변동 추이를 나타내는 그래프. 2014년 말 메달리온 가격 거품이 터지면서 많은 운전자들이 메달리온을 잃고 파산했다. 출처 The New York Times

<뉴욕타임스>의 브라이언 로젠탈(Brian M. Rosenthal) 기자가 뉴욕시 택시 업계에서 벌어진 약탈을 추적했다. 450명을 인터뷰하고, 법원 기록과 은행 내부 기록, 기업 서류 등 다양한 문서 자료를 검토하는 방식으로 18개월 동안 취재했다. 5편의 기사와 다큐멘터리, 음성 보도로 구성된 이 이야기는 2020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심사단은 이 보도를 두고 “뉴욕시의 택시 산업을 폭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주 정부 및 연방 정부의 조사, 그리고 전면적인 개혁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5편의 기사는 다양한 측면에서 택시 산업이 어떻게 소수의 손에 휘둘려 왔는지 보여준다. 택시 운전사 모하메드 호크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메달리온 가격이 어떻게 상승하게 됐는지, 약탈적인 대출은 어떻게 횡행하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정부 기관은 택시 산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방치했다. 오히려 택시 업체에 대한 감독을 줄이고 규제를 면제했다.

뉴욕 택시 산업을 집어삼킨 업계의 리더들은 시카고의 메달리온 시장까지 손을 뻗었다. <뉴욕타임스>는 메달리온 거품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뉴욕 택시왕 에브게니 프리드먼(Evgeny A. Freidman)의 자산 축적 과정을 수천 페이지의 법원 기록과 동료들의 인터뷰에 바탕을 두어 재구성했다. 자살로 사망한 운전사의 생전 행적을 상세히 서술하기도 했다.

로젠탈 기자는 <뉴욕타임스>의 일일 뉴스 팟캐스트 ‘더 데일리’(The Daily)와 다큐멘터리 TV 프로그램 ‘더 위클리’(The Weekly)를 통해 디지털 콘텐츠에도 공을 들였다. 평일 아침 20~30분간 진행되는 ‘더 데일리’에서는 로젠탈 기자와 진행자가 직접 택시를 타고 뉴스의 배경과 취재기 등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더 위클리’에는 기사를 토대로 구성한 다큐멘터리가 방송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TV 프로그램 상인 에미상(Emmy Awards)의  비즈니스 및 경제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했다.

노란 택시를 소유할 수 있는 허가증인 메달리온이 차의 보닛에 붙어있다. 메달리온 가격은 한때 100만 달러까지 치솟았지만 2022년 5월에는 약 13만 달러로 폭락했다. 출처 The New York Times
노란 택시를 소유할 수 있는 허가증인 메달리온이 차의 보닛에 붙어있다. 메달리온 가격은 한때 100만 달러까지 치솟았지만 2022년 5월에는 약 13만 달러로 폭락했다. 출처 The New York Times

세계의 문제를 지역의 이야기로

로젠탈 기자는 <뉴욕타임스> 메트로 데스크(Metro Desk) 소속 탐사보도 기자다. 메트로 데스크는 한국 언론에서 사회부 역할을 하는 부서다. 뉴욕과 뉴저지, 코네티컷 등 뉴욕 주변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도한다.

그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는 <시애틀 타임스>,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휴스턴 크로니클>에서 일하면서 지역 이슈를 주로 취재해 왔다. <휴스턴 크로니클>에서는 텍사스가 수만 명의 장애 아동에 대한 특수 교육 서비스를 조직적으로 거부하고 있음을 폭로했다. 이 시리즈로 2017년 퓰리처상 공공 서비스 부문 최종 후보까지 오른 취재팀에 소속돼 있었다. 2015년에는 시애틀에서 43명의 목숨을 앗아간 산사태를 취재해 퓰리처상 속보 부문을 수상한 팀의 일원으로 일했다. 여러 해에 걸쳐 지역 이슈를 심층적으로 다뤄온 것이다.

뉴욕 택시 산업 문제를 폭로할 수 있었던 것도 지역 이야기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의 수상 소감을 보면, 취재의 시작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전 변호사 마이클 코헨(Michael Cohen)의 비리를 집중 취재해 달라는 <뉴욕타임스>의 요청에서 비롯됐다. 로젠탈 기자는 마이클 코헨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택시 산업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그는 정치인의 비리에 집중하는 ‘큰 세계’의 문제보다 택시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역 이야기’를 취재하고 싶었다. 그는 퓰리처상 수상 소감에서 “지역 언론에서 일하면서 지역 뉴스의 중요성을 배웠다. 지역 뉴스를 통해 사회를 개선하고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20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에서 수상한 브라이언 M. 로젠탈 기자는 수상 소감에서 지역 뉴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휴스턴 크로니클, 시애틀 타임스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뉴스가 생명을 구할 수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출처 2020 Pulitzer Prizes
2020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에서 수상한 브라이언 M. 로젠탈 기자는 수상 소감에서 지역 뉴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휴스턴 크로니클, 시애틀 타임스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뉴스가 생명을 구할 수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출처 2020 Pulitzer Prizes

성실하고 끈질긴 취재의 특별함

로젠탈 기자는 이 보도를 위해 18개월 동안 600회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특별한 취재 기법보다는 성실함을 무기로 삼았다. 수백 명의 소식통에게 필요하다면 몇 주 동안에 걸쳐 끈질기게 전화를 걸고, 택시가 주로 정차해 있는 공항이나 터미널 등을 통역과 함께 찾아가 영어에 서툰 이민자 출신의 운전기사들을 취재했다.

이 보도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처음부터 복잡한 윤리적 문제를 헤쳐 나가야 하는 어려운 프로젝트였다”고 자평했다. 자살을 어떻게 다룰지, 피해자는 어떻게 보호할지, 선정주의에 빠지지는 않을지 고민했다는 것이다. 대출 피해를 입은 대부분의 운전사들은 스스로 자책하거나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메달리온 대출은 은행 대출 외에도 브로커, 택시 회사 등의 주선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신분이 드러날 경우 취재원이 입게 될 피해도 고려해야 했다.

기사가 보도됐을 때 입을 수 있는 피해, 그리고 그 이후에 받을 수 있는 도움을 로젠탈 기자가 취재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설득이 선행됐다고 <뉴욕타임스>는 설명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모든 택시 운전사는 실명으로 표기됐다. 택시 회사 사장이나 브로커, 은행, 정부 기관 등의 입장을 보도할 때도 실명 보도 원칙은 그대로 지켜졌다. 이들의 반론은 물론 여러 이해관계자의 입장도 충분히 다뤘다. 고발하는 사람과 고발당하는 사람 모두의 이야기를 실명으로 소개하는 이런 기사를 한국 언론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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