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일본 청년 6명이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을 상대로 약 65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이들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배출된 방사성물질 때문에 갑상선암에 걸렸으며, 수술 후유증으로 장애를 얻거나 진학·취업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후쿠시마현은 사고 당시 18세 이하였던 38만여 명을 대상으로 갑상선암 추적 검사를 하고 있는데, 최근까지 300명 가까운 의심·확진자가 나왔다. 그런데 세계 평균보다 인구 당 수십에서 100배나 많은 소아갑상선암 발병을 당국은 ‘원전 사고와 무관하다’고 한다. 과잉 진단으로 많이 발견됐을 뿐, 방사능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간 기부로 운영되는 후쿠시마공동진료소의 후세 사치히코 원장은 지난해 4월 <월간 참여사회> 기고에서 이를 반박했다. 핵연료재처리공장 사고 때문에 비슷한 추적 검사를 한 아오모리현 등과 비교하며 후쿠시마 사례를 과잉 진단으로 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소아갑상선암 증후가 체르노빌 원전 사고 피폭 사례와 매우 비슷하다는 소견도 덧붙였다. 후세 원장은 “피폭에 의한 만발성(병증이 늦게 나타나는) 장애는 1945년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나가사키의 경험에서 볼 때 이제부터 본격적인 전개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방사선리스크위원회(ECRR)도 2011년 당시 “원전 반경 200㎞ 안에서 향후 10년간 20만 명, 이후 40년에 걸쳐 20만 명 이상 암환자가 늘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기·토양오염 등으로 이렇게 일본인들을 위협하고 있는 방사능 피해가 내년부터는 해양을 통해 한반도에 상륙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부지에 저장해온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처리수’라고 부르는 이 물은 녹아내린 핵연료를 식히는 데 쓴 냉각수와 빗물 등으로, 방사성물질이 섞여 있다.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60여 종의 방사성물질을 거르지만, 삼중수소(트리튬) 등 일부 핵종은 남는다. 삼중수소가 인체에서 내부 피폭을 일으키면 세포 사멸, 생식 기능 저하, 암, 유전병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도쿄전력이 지난 17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오염수를 희석한 물로 키우고 있는 광어를 공개했다. 연합뉴스
도쿄전력이 지난 17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오염수를 희석한 물로 키우고 있는 광어를 공개했다. 연합뉴스

도쿄전력은 바닷물로 삼중수소를 희석해서 방류하니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폐로까지 30년 이상 오염수가 바닷물에 섞일 때 물고기 등 먹이사슬을 통해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사고 당시 배출된 양만으로도 후쿠시마 수산물에서 세슘 등 방사성물질이 기준치의 몇 배씩 검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2019년 기준 1인당 연간 수산물 섭취량이 약 70㎏으로 세계 1위다. 방류 뒤 몇 달이면 한반도로 밀려온다는 후쿠시마 오염수가 식탁 안전과 무관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대응은 놀랍게도 미온적이다.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가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해 방류를 중단시키라’고 하는 등 훈수를 두지만 별 움직임이 없다. 중국 외교부가 “태평양은 일본의 하수구가 아니다”며 항의하고, 북한 외무성이 “안전하다면 일본에서 음료수로 마시라”고 퍼부어도 우리 정부는 ‘우려’를 표하는 데 그쳤다. 일본 <지지통신>은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부드럽게 대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일 관계 개선은 물론 중요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오염수 방류도 막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도쿄전력이 ‘비용 절감’ 때문에 방류를 추진한다며, 다른 대안을 압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원자력시민위원회는 석유 비축 등에 쓰는 대형 탱크를 지어 오염수를 수십 년 더 보관하면 반감기 12년인 삼중수소의 독성을 충분히 낮춰 처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린피스도 서울 면적의 절반가량이 ‘귀환곤란구역’으로 비어 있는 후쿠시마 내에 더 큰 저장시설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자핵공학자인 서균렬 서울대 명예교수는 후쿠시마에 인공호수를 만들면 현재 오염수 130만 톤의 몇 배까지 담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핵심은 모두 ‘오염수를 후쿠시마 땅에 가두는 것’이다.

자국민의 방사능 피해도 외면하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돈이 더 드는 대안’을 순순히 받아들이진 않을 것이다.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와 태평양 연안국 공조, 국제 시민사회 압박이 총동원돼도 힘겨울지 모른다. 그래도 오염수 방류는 막아야 한다. 방류는 곧 ‘대재앙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한겨레> 10월 31일 자에 실린 [제정임 칼럼]을 신문사의 허락 하에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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