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대산농촌재단 창립 31주년 기념 한·독 심포지엄

유럽의 지속 가능 농업을 배우러 간 한국 활동가들을 매료시켰던 독일 전문가들이 국내 심포지엄 연단에 섰다. 25일 서울 종로1가 교보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대산농촌재단 창립 31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 요셰프 히머 박사 등 3명은 농업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직업교육, 재생에너지 발전 등 독일 농업농촌의 혁신에 관해 설명했다. <미래가 있는 농촌, 지속가능한 농업>을 주제로 한 이날 심포지엄에서 김기영 대산농촌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코로나19로 중단되었던 해외농업연수를 (지난 5월) 3년 만에 재개하면서 연수자들이 가장 흥미로워한 독일 현장의 전문가를 초청했다”고 소개했다.

식량난 우려에도 EU 경작지 4%는 휴경 추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낙농지역 켐프텐시에서 농업국장을 지낸 히머 박사는 먼저 유럽연합(EU)의 ‘공동농업정책’(CAP)을 설명하면서 “온실가스 감축이 EU 농업정책의 중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의 경우 농업부문에서 전체 온실가스의 약 8%가 배출된다며 EU의 친환경 농업정책인 ‘팜 투 포크’(Farm to Fork:농장에서 식탁까지)를 통해 식량 생산에서 최종 소비까지 모든 단계에서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한다고 밝혔다.

요셰프 히머 박사가 탄소감축을 지향하는 EU 공동농업정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목은수 기자
요셰프 히머 박사가 탄소감축을 지향하는 EU 공동농업정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목은수 기자

그는 예를 들어 잦은 경작으로 황폐화하는 농지를 보존하기 위해 매년 경작지의 4%를 휴경하고, 액체비료를 살포하는 대신 땅에 쏘는 방식으로 비료 사용량을 20%까지 줄이는 것이 ‘팜 투 포크’ 정책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EU는 또 여러 형태의 보조금을 통해 현재 13% 수준인 유기농업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히머 박사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식량난이 우려되는데 휴경 정책을 꼭 지금 시작해야 하느냐는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며 이 제도가 내년부터 시행된다고 덧붙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정섭 선임연구위원은 이어진 토론에서 “유럽에서도 농업생산만 가지고 가계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가공, 농촌관광, 지역 내 농산물 유통 등) 다각도 활동을 펼치지만 기본은 농업 생산 활동이 가능한 구조가 전제되는 것”이라며 한국의 농지 감소를 우려했다. 그는 “지난 30년 사이에 국내 농지면적 25%가 줄었고, 최근 4~5년 만에 서울시만한 면적의 농지가 사라졌다”면서 다기능 농업보다 농지 면적과 농업 인구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이재식 농업정책과장은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발생하면서 언제든지 수입식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신념이 깨졌다”며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32년 동안 일어난 실습현장 사고는 3건 뿐

캠프텐농업직업학교의 칼 립헤어 명예교감은 전문적인 농민을 길러내는 독일 교육과정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농업학교의 핵심이 학교와 농업현장을 동시에 경험하는 ‘듀얼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과정의 1학년은 일주일 중 4일을 학교에서 보내고 하루는 농장에서 실습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4일을 농업현장에서 보낸다고 한다. 립헤어 교감은 실습현장을 감독하는 기관의 중요성에 관해 강조했다.

“직업학교가 학생들을 받아 제대로 교육하는지, 농업현장에서 제대로 된 실습을 하는지 살펴보는 감독기관이 있어야 합니다.”

캠프텐농업직업학교 칼 립헤어 명예교감이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농업직업학교의 교과과정과 감독기관의 중요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목은수 기자
캠프텐농업직업학교 칼 립헤어 명예교감이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농업직업학교의 교과과정과 감독기관의 중요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목은수 기자

립헤어 명예교감에 따르면 독일 각 주의 농림부나 농업조합 등의 감독기관은 직업훈련 수행과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한다. 실습생을 받는 농장은 농장주가 마이스터 자격증을 갖춰야 하고 감독기관의 실습가능 환경 인증을 받아야 한다. 사고 보험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또 임금, 휴가기간 등이 명시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도 의무다.

토론에 나선 한국농어민신문 농업부 김선아 국장은 “우리나라의 농업교육은 사설 교육기관 같은 곳에서 자금을 받기 위해 시간을 채우는 용도로 이루어진다”고 지적했다. 교육제도는 있지만 실제 영농에 도움 되는 내용이 아니다보니 청년농업인들의 불만이 높다는 것이다.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 김현묵 교사는 “국내에서는 농업실습을 나간 학생에게 사고가 나면 엄청나게 이슈가 되고 다음부터는 학생을 내보내는 것이 굉장히 위축된다”며 독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지 물었다. 립헤어 교감은 “32년 근무하는 동안 단 3건의 사고 사례만 봤다”며 “모든 실습장이 보험에 들어있어서 보험사에서 사고가 있을 만한 모든 것들을 확인한다”고 답했다. 감독기관도 수시로 현장을 점검하기 때문에 실습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칼 립헤어 명예교감이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 김현묵 교사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목은수 기자
칼 립헤어 명예교감이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 김현묵 교사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목은수 기자

바람, 햇빛, 물, 나무, 가축분뇨가 모두 에너지원

독일 남부지역에 있는 인구 2600명 규모 빌트폴츠리트시의 토마스 프뤼거 시의원은 바람, 햇빛, 물, 나무, 가축분뇨 등을 이용해 빌트폴츠리트시가 에너지자급률 828%를 달성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2000년도에 신재생에너지법이라고 불리는 ‘전력매입법’(EEG)이 통과돼, 정부가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20년 동안 일정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서 지역에서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 발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빌트폴츠리트시 의회는 ‘우리가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생산한다’는 내용이 담긴 ‘기후보호모델’(WID)을 만장일치로 의결하고 실행했다. 프뤼거 의원은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시민참여라고 말했다.

“(에너지 자립마을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 사람들은 정치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시장님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니었어요. 주민들이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독일 빌트폴츠리트시의 토마스 프뤼거 시의원이 시의 에너지자급률 추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목은수 기자
독일 빌트폴츠리트시의 토마스 프뤼거 시의원이 시의 에너지자급률 추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목은수 기자

프뤼거 의원에 따르면 빌트폴츠리트의 주민들은 ‘마을개발 유한회사’를 만들어 재생에너지 투자에 참여했다. 예컨대 현재 마을에는 총 11대의 풍력발전기가 있는데, 그 중 9대가 마을주민 400명이 투자해 설치한 것이다. 풍력발전에서 약 300만 유로(약 43억 원)를 포함, 재생에너지로 마을주민들이 올리는 수익은 연간 약 700만 유로(약 1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 돈이 마을 안에서 순환하며 지역경제를 발전시키기 때문에, 환경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이점이 크다고 프뤼거 의원은 설명했다.

토론에 나선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독일의) 에너지자립마을에 가보면 에너지원을 운영하는 지역회사, 그걸 지원하는 전문가조직, 그걸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제도가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에너지자립마을을 만들려는 시도가 실패한 이유는 에너지를 전담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농촌을 모르고 농림부는 에너지문제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처 간 협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임경수 고산퍼머컬처 센터장은 “사례 발표 내용을 보면 에너지전환을 전력중심으로만 하지 않는 게 인상 깊다”며 “농촌에 있는 가스나 열 등 다양한 에너지원에 맞는 수요와 저장방식을 활용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술발전으로 농업인 경쟁력에 남녀 차이 없어

마지막 종합토론 시간에는 모든 발표자, 토론자들이 단상에 모여 청중의 질문을 받았다. 대구에서 희망토농장을 운영하는 강영수 이장은 “마을에서 에너지자립을 할 때 주민참여가 기본적으로 깔려있어야 하는데 그 다음 단계에서 우선시해야 하는 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유진 부소장은 “그 지역에 어떤 자원이 있는지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며 “태양광은 기본으로 가더라도 산지라면 풍력, 축분이 많으면 바이오가스, 나무가 많으면 바이오매스 등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파악하는 게 먼저 필요하다”고 답했다.

모든 발표자들이 단상에 모인 가운데 강영수, 장슬기 씨 등이 청중석에서 질문하고 있다. 목은수 기자
모든 발표자들이 단상에 모인 가운데 강영수, 장슬기 씨 등이 청중석에서 질문하고 있다. 목은수 기자

청년여성농업인조합 장슬기 회장은 “청년여성농업인이 늘어나고 있는데, 여성농업인이 더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느냐”고 질문했다. 립헤어 명예교감은 “지금 같은 기술수준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상관없다”며 “농업인을 위한 정책은 성별구분 없이 똑같다”고 답했다.

낮 12시 30분에 시작한 심포지엄은 참가자 120여 명의 열의 속에 저녁 7시에야 끝났다. 행사 전체 사회는 신수경 대산농촌재단 사무국장이, 토론 좌장은 김창길 서울대 특임교수가 맡았고 박동수 전문통역가가 독일어 순차 통역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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