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인천 ‘기차길 옆 작은학교’ 인형극

‘꿈꾸는 자 행복하다’는 말이 지금도 유효할까? 송경동 시인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꿈꾸는 자 잡혀간다’는 게 현실이 아닐까? 주위를 둘러보면, 꿈이나 희망을 품은 이가 드물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게 꿈이라면 인생이 문득 서글퍼진다.

여기 언뜻 ‘제정신’이 아닌 듯, 꿈꾸는 아이들이 모였다. 이 아이들은 제주 강정마을, 부산 영도 희망버스, 용산 남일당, 저 멀리 효순미선 추모제까지 다녀왔다. 막 학교에서 빠져나온 아이들은 한지와 나무로 만든 관절인형과 응원 문구를 담은 피켓을 들고 나섰다. 우리 사회 어둡고 낮은 곳에 찾아온 아이들은 조명에 인형을 비추고 손발을 조종했다. 공연을 끝내고는 촛불을 들고 희망을 노래했다. 알고 보니 이 아이들은 10년 넘게 인형극을 펼쳐 온 극단원들이다.

일요일이었던 지난달 29일 인천 만석동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기차길 옆 작은학교’ 스물두 번째 정기공연,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이 열렸다. 주인공은 만석동 6번지 공부방 아이들. 26년간 만석동 공동체 마을을 일궈 온 이모•삼촌도 밴드와 노래패, 공연기획으로 참여했다. 노래패, 타악패, 춤패, 인형극패로,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따로 또 같이 모인 기차길 식구들은 6개월간 준비한 공연을 앞두고 들떠있었다. 이윽고 아이들이 원하는 세상, ‘하늘 문’이 열렸다.

▲ '기차길 옆 작은학교'는 매년 4월 정기공연을 펼친다. ⓒ 기차길 옆 작은학교 제공

희망이 남아있는 곳은 어디?

공연장이 어두운 암흑으로 뒤덮이고 곧이어 연두와 보라색 티셔츠를 입은 무리가 빛을 발하며 등장해 노래를 부른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살아가기엔 힘든 세상’이지만 ‘용기를 잃지 말라고. 언젠가 힘이 될 수 있으니 두 눈을 감지 말라’고 응원한다. 

공연의 중심 말 ‘하늘 문’은 하늘사람과 땅사람이 평화롭고 자유롭게 왕래하는 통로다. ‘하늘 문’ 이야기가 구구절절 펼쳐진다. ‘하늘 문’은 땅사람의 욕심과 땅에서 올라오는 똥, 오줌 냄새에 질린 하느님의 노여움에 닫히고 만다. 턱 막혀버린 ‘하늘 문’을 한 폭의 산수화같이 비추는 영상은 막막한 현실을 실눈 뜬 채 멀리서 바라보듯 너무 아름다워 슬프다. 땅과 하늘이, 인간과 자연이 화해할 방도는 없을까? 막힌 ‘하늘 문’을 열고 다시금 서로 돕고 이끌어주는 세상은 영영 볼 수 없을까?

이어 공연의 백미 인형극이다. 인형극은 인간의 탐욕 때문에 화가 난 하느님을 달래려, 땅사람 중 착한 사람을 찾는 여정을 그린다. 하느님이 내려 보낸 천사는 인간 세상, 희망이 남아있는 곳을 찾아 헤맨다. 맑은 영혼이 살아 있는 곳, 평등과 평화, 연대감이 여전한 곳에 희망이 있을 터. 천사가 첫걸음을 뗀 곳은 어리고 순수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다. 하지만 천사가 본 학교에는 더 이상 교육이 없다. 성적에 따른 줄 세우기와 모든 생활에 만연한 무한경쟁 논리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여기 아이들은 왕따와 폭력으로 답하고 있다. 가난한 아이는 어깨를 움츠리고 돈 많고 성적 좋은 아이들의 등쌀에 힘겨워한다. 

천사는 발을 옮겨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인 교회를 들춰본다. 하지만 ‘동남아 사람이 모이는 곳은 위험한 곳’이라는 말을 듣고 ‘멋진 교회당’으로 발길을 돌린다. 번쩍거리는 교회에는 커다란 십자가와 목사 얼굴이 새겨져 있다. 천사는 자기 믿음만 옳다며 조금의 다름도 인정하지 않는 독선과 오만함에 희망이 없다고 되뇐다. 말 많은 장로의 시끄러운 설교에 천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어투로 절망한다. ‘하늘 문’은 정녕 닫힌 걸까?

천사는 바다 넘어 찬란한 아침, 붉은말발똥게 가족들이 노니는 구럼비 바위에 평화가 깃들어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천사가 찾아간 제주 강정마을에는 포크레인이 거대한 팔뚝을 휘젓고 온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결국 천사가 돌아온 곳은 ‘인천 만석동’, 아이들과 이모•삼촌이 웃고 떠들며, 몸짓과 노래, 인형극을 만드는 ‘기차길 옆 작은학교’다. 그들은 노래한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행복하여라 의롭기 때문에 박해 받는 사람들...”(마태, 5, 3-12 중)

▲ 아이들은 인형극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보여준다. ⓒ 기차길 옆 작은학교 제공

아이들이 사회문제를 깨달아가는 방식

종이인형과 각종 소품, 세트장은 직접 만든 것들이고, 인형의 세심한 몸짓 조종, 목소리 연기도 아이들과 이모•삼촌의 작품이다. 여럿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작업을 기차길 옆 식구들은 힘들지만 자유로운 마음으로 이어나갔다. 이어 질풍노도를, 사춘기를, 수능을, 혹은 취업을 고민하고 있는 기차길 옆 작은학교 아이들의 만남과 사귐의 과정을 신명 나는 타악으로 표현한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손, 발, 스틱으로 두들기는 힘찬 리듬에 천사가 기차길옆에서 발견한 ‘하늘 문’처럼 땅과 하늘이 끊임없이 오가며 만나는 풍경이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대학 1학년 때 만석동을 찾아 지금은 가정을 이룬 복현이모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담은 영상이 펼쳐지고, 공연은 내년 4월을 기약하고 막을 내린다.  

공연을 하루 앞둔 28일 기차길 옆 작은학교의 큰이모이자 <괭이부리말 아이들>(김중미 저, 창작과비평사)의 작가 김중미(50)씨와 인터뷰했다. 아이들에게 사회문제를 보여주고 현장에 나서서 ‘인형극’과 각종 퍼포먼스를 펼친 사연을 물었다. 자칫 어른이 미리 ‘판단’한 사회문제를 ‘일방적인’ 시선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걱정해서다.

“제안은 이모•삼촌들이 했죠. 하지만 그런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항상 둘러앉아 토론하고 그 결과를 행동으로 만들어 나갔어요. 토론에서 나온 말과 아이디어를 기초 삼아 인형극과 노래, 춤, 타악기 리듬으로 창조해갔어요.”

김중미 씨는 최근 제주 강정마을 문제의 중심에서 힘겹게 싸움을 이어가는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72)와 아이들의 사귐을 예로 들었다. 아이들은, 미선•효순사건, 평택 대추분교, 팔당 두물머리, 용산 남일당까지 평화운동의 선봉에 선 투사인 동시에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문정현 신부와 줄곧 만남을 갖고 가까워졌다.

▲ 아이들은 이모•삼촌과 둘러앉아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이해해간다. ⓒ 기차길 옆 작은학교 제공

가난한 사람, 쫓겨난 사람들과 함께 있겠다는 신부의 행동에 아이들 또한 현장 사람들 목소리와 아픔, 하소연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게 됐다. 아이들은 대추분교가 사라진 현실에 울고, 두물머리에서 인형극 공연을 하면서 울고, 용산 남일당에서 또 울었다. 남일당에서 공연하던 중 기차길 옆 고등부 학생이 말했다.
 
“이모 이거 장난 아니에요. 저 화려한 건물들, 그리고 이 남일당과 철거된 집들 사이에서 공연을 하니까 정말 현실이 느껴져요.”

김중미 씨는 말한다.

“아이들 중 한 명이라도 공부방에 남아 계속할 수 있어요. 사회에 나가 다른 걸 하더라도 계속 그 기억과 영향이 남아있는 거죠. 그렇게 거리로 직접 나간 경험이 없는 첫 졸업생도 공부방을 생각하면 아무리 먹고 사는 게 힘들어도 나쁜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해요.”

세상을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려는 사람은 차고 넘친다. 신문은 어려운 말과 글로, 교회는 설교문과 찬송가로, 거리는 윽박지름과 비속어로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기차길 옆 작은학교’ 사람들은 조금 ‘다르게’ 표현한다. 노래, 영상, 춤, 타악, 인형극. 그리고 또 다른 방식을 고민한다. 기차길 옆 사람들은 더 낮은 곳으로, 더 쉽게 말하는 방법을 찾아, 계속해서 공연할 생각이다. 뭔지 잘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착한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처럼, 여기 꿈꾸는 자는, 비로소 행복할 수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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