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㊻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인터뷰

“사회적 여론은 기후변화 대응, 탈석탄에 대해 전반적인 동의가 있다고 봐요. 사실 국회가 지금 눈을 감고 있다고 봅니다. 국민동의청원을 통해서 이런 시민들의 요구를 전달해보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지난달 31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신규 석탄발전소 철회를 위한 탈석탄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기후위기의 주범 중 하나인 석탄발전소 허가를 취소하고 재생에너지 전환을 촉진할 ‘탈석탄법’을 제정하라는 청원이다. 이 청원을 올린 이지언(40)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단비뉴스>와 만나 ‘국회의 각성’을 촉구했다. 그는 “기후와 시민 건강권 보호라는 공익을 우선해 석탄발전 건설 사업을 취소하고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는 것이 ‘탈석탄법’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30일까지 진행되는 ‘탈석탄법’ 제정 국민청원은 21일 기준 1만 1000여 명이 참여했다. 이 청원은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법안 제정 절차로 넘어간다.

5만 명 동의 필요한 청원에 현재 1만 1천 명 참여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가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앞마당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지인 기자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가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앞마당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지인 기자

2008년부터 환경운동을 시작한 이 활동가는 2017년 환경운동연합을 대표해 김양호 삼척시장에게 삼척포스파워화력발전소 건립 반대 의견서를 전달했고, 2016년 당진에코파워석탄발전소 계획 취소 단식농성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현재 동해안 일대에는 신규 석탄발전소 4기가 건설되고 있다. 삼성물산 계열사인 강릉에코파워가 강릉안인화력 1·2호기를, 포스코 계열사인 삼척블루파워가 삼척블루파워 1·2호기를 짓고 있다. 강릉안인화력 1·2호기는 2022년 10월과 2023년 3월, 삼척블루파워 1·2호기는 2023년 10월과 2024년 4월 가동된다. 이들 발전소의 경제적 수명은 30년 정도다. 정부가 ‘탄소중립 달성’을 선언한 2050년까지도 석탄발전소가 계속 가동된다는 얘기다.

환경단체들은 신규 석탄발전소가 예정대로 건설되면 우리나라는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삼척에 건설 중인 2기의 석탄발전소가 완공되면 1년에 온실가스 약 1400만 톤(t)을 배출한다. 정부가 2020년 발표한 그린뉴딜 계획에 따르면 73조 4000억 원을 투자해 감축하겠다고 한 온실가스량이 1229만t이다. 5년 동안 73조원을 들여서 감축하는 온실가스보다 삼척 발전소에서 1년간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더 많은 셈이다.

지난달 31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신규 석탄발전소 철회를 위한 탈석탄법 제정에 관한 청원’. 오는 30일까지 5만 명 이상의 서명을 얻어야 법안 제정 절차로 넘어간다.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달 31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신규 석탄발전소 철회를 위한 탈석탄법 제정에 관한 청원’. 오는 30일까지 5만 명 이상의 서명을 얻어야 법안 제정 절차로 넘어간다.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은 주요국에서 석탄발전을 늦어도 2030년까지 폐지해야 파리기후협약에서 제시한 1.5도 목표(지구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억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이탈리아, 핀란드, 덴마크 등 48개국은 2017년 ‘탈석탄동맹(PPCA)’을 결성했다. 이 동맹에 가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2030년까지, 나머지 나라는 2050년까지 석탄 사용을 중단하기로 선언했다. 우리나라는 이 동맹에 가입하지 않았다.

국민 여론은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 지지

국내 여론은 탈석탄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민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이 지난해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1500명 가운데 ‘현재 건설되고 있는 신규 석탄발전소가 지금이라도 건설 중단되어야 한다’에 동의한 사람이 79.5%였다. 또 ‘우리나라가 2030년 이전에 석탄발전을 종료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방향’에 89.4%가 동의했다. 이 활동가는 이 조사 결과를 들어 “탈석탄은 다수 국민이 지지하는 사회적 여론”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정작 탈석탄 정책은 인식과 실제 간 괴리가 크다”고 덧붙였다.

녹색연합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신규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녹색연합 그래픽 유지인
녹색연합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신규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녹색연합 그래픽 유지인

이 활동가는 “정치권에서도 석탄발전소 건설 문제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실천 의지가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2017년 당시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문재인(더불어민주당), 심상정(정의당), 안철수(국민의당) 후보는 미세먼지대책으로 ‘신규석탄화력발전소 계획을 백지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고, 정치권도 나서지 않았다. 이 활동가는 “사업자와 정부, 국회에서 돌아오는 답변은 (석탄발전소 건설이) 이미 승인된 사업이라 예정대로 사업 추진이 불가피하다는 말뿐이었다”고 덧붙였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후보는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단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각 후보자 선거홍보용 블로그 및 공약집 갈무리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후보는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단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각 후보자 선거홍보용 블로그 및 공약집 갈무리

문재인 정부에서 관련 법안이 논의된 적은 있다.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은 2020년 석탄과 원전을 에너지전환 대상으로 포함한 ‘에너지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에너지전환에 따른 발전사업자 및 관련 지역 피해를 구제하고 관련 산업의 구조개편 등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법안에 따르면 정부와 다양한 이해관계자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신규 발전소 건설사업을 심사해 공익에 부합한다고 판단될 경우 인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법은 여전히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다. 지난 5월 열린 입법 공청회에서 참고 진술인으로 참석한 이 활동가는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지금 사실 여야가 이 부분에 대해서 전혀 논의를 하고 있지 않다”며 “현재 국민의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아예 관심과 의지가 없기 때문에 매우 우려가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기후재난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고, 발전소 건설은 이제 가동 예상 시점이 얼마 안 남았다”며 “정치권이 나서지 않기 때문에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시민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석탄산업 좌초자산 막을 근거법 있어야

“정부도 석탄발전소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는 있습니다. 근데 이미 허가를 해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죠. 관련된 근거법을 만들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정리를 하자는 게 탈석탄법이에요.”

이 활동가는 신규 석탄발전소를 취소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만들자는 것이 탈석탄법이라며 “기업들도 재정적, 정책적인 지원 등 출구가 마련된다면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를) 열어놓고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은 기업 입장에도 골칫거리다. 탄소중립을 이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설계수명까지 가동되지 못하고 중간에 폐쇄되거나 가동률이 낮아져 ‘좌초자산’(환경변화로 수익성이 낮아지거나 가치가 없어지는 자산)이 될 수 있다.

이 활동가는 삼성전자가 최근 RE100(기업활동에 필요한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공약)에 참여하기로 한 것을 언급하며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물산이 강릉안인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 다른 계열사의 평판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전국에서 모인 환경 활동가들이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서 안인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시공 중인 안인석탄화력발전소 2기(2080MW 규모) 중 1호기는 내달 가동된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지난해 9월 전국에서 모인 환경 활동가들이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서 안인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시공 중인 안인석탄화력발전소 2기(2080MW 규모) 중 1호기는 내달 가동된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독일·네덜란드 등 석탄발전금지법 제정

“1개월 가동하든 1년을 가동하든 상관없어요. 다른 나라에서도 입법을 통해 젊은 발전소들을 빨리 문 닫게 하고 있어요.”

이 활동가는 신규 석탄발전소를 포함해 2030년까지 모든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한 네덜란드와 독일 사례를 소개했다. 네덜란드는 2019년 석탄발전금지법을 제정했다. 탈석탄을 규정한 세계 최초의 기후변화 법안이다. 법안에는 2030년까지 신규 발전소를 포함해 모든 석탄발전소를 폐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네덜란드는 대신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있다. 독일은 2019년 기업, 노조, 시민사회, 지역주민 등 여러 이해 당사자들이 6개월여 숙의 끝에 2038년까지 모든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합의했다. 이듬해 독일 의회에서 ‘석탄발전 감축과 폐쇄에 관한 법’이 제정됐다. 이 법에는 피해 지역 주민과 노동자, 기업 등에 약 400억 유로(약 53조 원)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독일은 지난해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자유민주당의 합의로 탈석탄을 2030년까지 앞당기기로 했다.

폐쇄 대상 석탄발전소에는 2020년도에 가동을 시작한 ‘다텔른 4’(Datteln-4) 발전소도 포함됐다. 독일의 전력생산량 중 석탄(석탄+갈탄) 비중은 2000년 51%에서 2020년 23%로 크게 줄었다. 대신 재생에너지 비중은 같은 기간 7%에서 44%로 늘었다.

1990년 이후 독일의 발전량 중 석탄과 갈탄의 비중은 큰 폭으로 줄고 있다. 독일은 2030년까지 탈석탄을 완료하기로 했다. 그래픽 유지인
1990년 이후 독일의 발전량 중 석탄과 갈탄의 비중은 큰 폭으로 줄고 있다. 독일은 2030년까지 탈석탄을 완료하기로 했다. 그래픽 유지인

석탄·원전 미련 버리고 재생에너지로 가야

“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펼 때 재생에너지는 한 번도 최우선 순위를 차지한 적이 없어요. 재생에너지는 보조 에너지원으로서만 항상 있었어요.”

이 활동가는 “석탄발전소 폐지와 함께 재생에너지 확대가 에너지전환의 기본 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생에너지는 프로젝트 개발과 공사 기간이 짧아 단기적으로 화석연료를 대체해 에너지 안보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며 “운영 과정에서 원전이나 화력발전과 달리 연료비가 들지 않아 장기적으로 에너지 요금을 줄이는 데도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지언 활동가가 ‘탈석탄법’ 제정 청원 참여를 독려하는 플래카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유지인 기자
이지언 활동가가 ‘탈석탄법’ 제정 청원 참여를 독려하는 플래카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유지인 기자

이 활동가는 “새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속도조절하겠다며 뒷전인 반면 원전 산업계 살리기에만 ‘올인’하겠다는 식의 에너지 정책을 펴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원전은 사회적으로 분쟁이 큰 에너지원”이라며 “하나 지으려고 해도 10년 이상 걸리고, 사고위험과 방사성 폐기물을 배출하는 원전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70, 80년대에 정부가 나서서 사유재산을 제한해가며 발전소 부지를 만들고, 전력망을 만들지 않았느냐”며 “석탄과 원전이 값싼 이유에는 숨은 비용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재정을 풀어 재생에너지에 투자해 단가도 떨어뜨리고 관련 일자리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재난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고 석탄발전소 건설은 계속되면서 이제 예상 가동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의지가 매우 부족하죠.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구체적인 입법 활동이나 대책들이 없다는 거예요. 결국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시민들이 나서야 합니다.”

[기후위기시대]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㉟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㊱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㊲ ‘막장’에서 땀 흘린 이들의 희망은 어디에

㊳ 물 부족은 아프리카에서 끝나지 않는다

㊴ 돌고 돌아 사람 몸속에 쌓이는 플라스틱

㊵ 바이오연료, 전기차로 가는 징검다리 될까

㊶ 왕우렁이가 돕는 쌀농사, 도시농부도 보람

㊷ 취약층 ‘쪄 죽는 사회’ 막으려면

㊸ 속 썩은 배추에 농부 마음도 썩어들어가고

㊹ 탄소흡수 ‘바다숲’ 228곳 조성 후 관리 미흡

㊺ 중·고교 5600여 곳에 환경담당 교사는 4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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