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PD 지망생의 영월 단종문화제 후기

 

해마다 ‘국장’으로 모셔지는 유일한 왕

“조선시대 왕 27명 중에서 유일하게 국장(國葬)을 지내지 못한 분이 바로 단종 임금입니다.”

단종문화제 마지막 날인 29일. 강원도 영월 장릉 정자각 앞에서 조선시대 국장의 마지막 제사인 ‘천전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에 앞서 박선규 영월군수는 단종과 영월의 애절한 인연을 상기시켰다.

▲ 대나무와 한지로 만든 죽안마 두 마리를 불에 태우며 승하한 왕의 영면을 기원하는 '천전의'가 진행되고 있다. ⓒ 이보람

단종은 열 두 살에 왕이 됐다가 3년 만에 수양대군에게 찬탈되고 신하들의 복위운동으로 노산군으로 강봉된 뒤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다. 청령포는 앞은 휘돌아가는 강, 뒤는 깍아지른 절벽이어서 섬이나 다름 없는 곳이다. 단종은 그저 절벽 위 ‘노산대’에 올라 한양을 그리워하며 돌로 ‘망향탑’을 쌓을 뿐이었다고 한다.

단종은 유배 온 해 여름, 청령포가 물에 잠기자 영월 관아인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고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그의 죽음이 타살인지 ‘강요된 자살’인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단종의 유해는 아무도 거두지 말라는 어명에 의해 방치됐는데 영월 호장이었던 엄흥도가 노모를 위해 마련해뒀던 수의와 관으로 밤중에 시신을 거둬 지금의 장릉 자리에 묻었다.

▲ 단종 묘인 '장릉'. 모든 조선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이보람

이광수와 김동인의 라이벌 의식

충북 제천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이면서 학부생 대상의 교양교육원 <향토문화탐방>에 따라나선 것은 우선 2천년 왕조사 최대 비극의 현장이 인근에 있다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PD 지망생으로서 사극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촬영 현장을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파천무> <한명회> <왕과 비> <인수대비> <공주의 남자> 등 수양대군을 다룬 사극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다르다. 드라마 작가들의 원전이 된 소설에서부터 수양대군은 전혀 다른 인물로 묘사된다. 우리 문학사의 라이벌이었던 이광수와 김동인은 소설 이름에서 이미 시각 차를 드러낸다. 이광수의 <단종애사>가 수양대군의 불의를 고발하고 있다면, 김동인의 <대수양>은 그의 경륜과 원대한 포부에 초점을 맞춘다.

▲ 왼쪽부터 1935년 박문각판 <단종애사> 표지, 이광수, 김동인.

거슬러 올라가면 이광수가 참고한 옛 문집 자체에 김동인은 시비를 걸었다. <단종애사>는 추강 남효온의 <육신전>과 <추강집>을 근거로 쓰였는데, 남효온 자신이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으니 객관적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남효온은 단종의 생모였던 현덕왕후의 능을 복위하려다가 실패하자 실의에 빠져 유랑생활을 했고,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를 당했다. 김동인은 문종뿐 아니라 단종도 심약한 군주로 묘사함으로써 수양의 쿠데타를 합리화했다.

영상미가 아름다워 더욱 슬펐던 풍경들

이런 역사와 후세의 평가를 아는지 모르는지 평창강은 오늘도 청령포와 영월을 가르며 흐른다. 청령포와 장릉 일대는 드라마를 통해 익숙해진 풍경들이 많지만 실제로 보는 감회는 또 다른 것이었다. 영상미가 아름다워 더욱 슬펐던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 17살 단종이 유배되었던 청령포는 이제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 이보람

영월군은 이런 절경과 단종의 스토리를 엮어 멋진 관광상품을 만들어냈다. 비명에 죽은 단종이 자신을 애석해하는 영월 사람들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걸까? 영월군은 지난 2007년부터 해마다 ‘단종 국장’을 치르고 있다. 비운의 왕에게 예를 갖추는 동시에 문화 콘텐츠로 만들려는 노력이다. 죽을 때 시신마저 버려졌던 단종은 이제 해마다 ‘국장’으로 받들어 모셔지는 유일한 왕이 됐다.

영월군은 ‘단종 국장’을 준비하면서 ‘정조국장도감의궤(正祖國葬都監儀軌) 반차도(班次圖)’와 '세종장헌대왕실록'의 상례를 참고해 소품 하나까지 실제 조선시대 국장을 보는 것처럼 정성스레 마련했다. 이날 ‘단종 국장’에서도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례행렬에 참여했다. 영월군 덕포리에서 장릉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행사 참가자와 관광객들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구슬프게 곡을 하며 발인행렬을 따라갔다.

▲ '조선시대 국장재현' 발인행렬에서 참가자들이 구슬프게 곡을 하고 있다. ⓒ 이보람

단종을 기리는 행사는 단종이 세상을 떠난 지 241년이 지난 숙종 24년(1698)부터 영월에서 시작됐다. 이때 단종의 신원이 복위돼 ‘단종제향’이 시작됐고, 지금의 단종문화제로 발전했다. 1967년에 시작된 단종문화제는 올해로 46회를 맞았다. 종묘가 아닌 왕릉에서 직접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는 유일하다.
 
해마다 ‘국장’을 치른들 그 원한을 씻으랴

이날 장릉에서는 ‘대왕신령굿’도 벌어졌다. 단종문화제 특징 중 하나는 유교식 제례와 무속신앙이 한 장소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단종문화제는 영월군이 생활공동체를 기반으로 벌이는 행사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축제이자 제례 의식이어서 다양한 행사가 가능하다.

올해로 열여덟 번째 한풀이 굿판을 벌인 강귀옥(70)씨는 단종의 영정을 모시는 무녀다. 강씨는 단종뿐 아니라 태조부터 단종 어머니인 ‘현덕왕후 권씨’, 부인인 ‘정순왕후 송씨’에 대한 의식도 치른다. 그는 굿의 주인공이 바뀔 때마다 색색의 의상을 갖춰 입고 나왔다.

“단종대왕을 보필하던 충신과 장군을 잃게 되면서 사육신과 생육신이 생겼고, 여러 궁녀와 무녀까지 모두 뜻하지 않게 세상을 버렸습니다. 오늘 행사는 이 분들의 한과 넋을 조금이라도 달래고 국태민안을 비는 한풀이 굿입니다.”

▲ 강귀옥(70)씨가 단종 영정 앞에서 어머니 '현덕왕후' 역할을 하며 한풀이를 하고 있다. ⓒ 이보람 

강씨가 작두 위에 올라서고, 삼지창에 죽은 돼지를 통째로 꽂아 세우자 곳곳에서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4시간 가까이 이어진 굿은 관람객들과 굿 음식을 나눠먹는 것으로 끝났다. 제천에서 왔다는 김동욱(29)씨는 “지역축제지만 외국인들도 많이 보이고 관광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체험행사가 많아서 좋다”고 말했다.

단종에게도 둘째, 셋째 부인이 있었네

▲ (왼쪽부터) '김빈', '정순왕후', '권빈'으로 뽑힌 '정순왕후 선발대회' 수상자들이 단종제례에 참석중이다. ⓒ 영월군청

체험행사 중에서도 특히 관광객들 눈길을 끈 것은 단종 비인 ‘정순왕후 선발대회’였다.

정순왕후는 단종이 유배된 뒤 한양에서 여든 살이 넘게 홀로 살다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어린 단종에게도 둘째, 셋째 부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알았다. ‘정순왕후 선발대회’에서 차점자는 ‘김빈’과 ‘권빈’으로 봉해졌다. 이 대회에서 ‘단종의 비’가 되려면 45세가 안 된 기혼여성이라야 한다.

유배된 단종에게 사람이 접근하는 것조차 금했던 금표비가 아직도 남아있는 영월. 그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문화제가 열리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그를 추모하는 시간들을 갖고 있으니 그의 영혼도 이제는 외로움을 덜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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