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㊹ 블루카본 확대 노력 어디까지 왔나

지난달 30일 오후 1시쯤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6리 소돌항. 거세게 내리던 비가 조금 잦아든 항구에는 이따금 파도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뿐, 오가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멀리 방파제 끝으로 빨간 등대가 보이고, 부두에는 출항하지 못한 소형 어선 20여 척이 물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배들이 오가지 않아 더욱 투명한 바닷물 속으로 해조류(바닷말)가 거무스레하게 군락을 이룬 모습이 넓게 펼쳐졌다.

이렇게 해조류가 번성한 곳을 ‘바다숲’이라고 한다. 해양 생물의 서식지가 되는 바다숲은 어족자원을 풍성하게 할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기능도 있어 최근 주목받고 있다. 소돌항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다숲 외에 ‘인공 바다숲’도 있다. 소돌항에서 조금 떨어진 주문6리 해역에 2012년부터 140헥타르(ha) 규모의 인공 바다숲이 조성됐다. 국제규격 축구장 약 200개 규모다. 해양수산부와 한국수산자원공단이 기후변화로 심해지는 갯녹음을 막기 위해 2009년부터 추진한 바다숲 조성사업의 일환이다.

기후변화로 심해지는 갯녹음 막으려 해조류 군락 조성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6리의 소돌항 풍경. 인근 해역에 140헥타르 규모의 인공 바다숲이 조성돼 있다. 사진에 보이는 바닷물 속 검은 부분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다숲이다. 이현이 기자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6리의 소돌항 풍경. 인근 해역에 140헥타르 규모의 인공 바다숲이 조성돼 있다. 사진에 보이는 바닷물 속 검은 부분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다숲이다. 이현이 기자

갯녹음이란 바닷가 암반 지역에서 해조류가 사라지고 흰색의 석회조류가 달라붙어 암반이 흰색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바다 사막화, 백화현상이라고도 한다. 갯녹음이 일어나면 해안의 바다숲이 사라지고 바다숲을 먹이와 서식지로 삼던 어족자원도 함께 줄어든다. 한국수산자원공단에 따르면 국내에서 갯녹음 현상은 1980년대부터 나타났는데, 기후변화와 함께 심해져 매년 동해, 남해 등에서 여의도 면적의 약 4배인 1200ha 정도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갯녹음으로 완전히 사막화한 바닷속 암반의 모습. 갯녹음이 발생하면 시멘트빛을 띠는 석회조류 때문에 암반이 흰색으로 변하고, 해조류가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한국수산자원공단 제공
갯녹음으로 완전히 사막화한 바닷속 암반의 모습. 갯녹음이 발생하면 시멘트빛을 띠는 석회조류 때문에 암반이 흰색으로 변하고, 해조류가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한국수산자원공단 제공

부경대 박경일 교수의 논문 ‘바다숲 조성사업의 경제적 효과 분석’에 따르면 인공 바다숲은 갯녹음을 막아 어획량을 늘리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문6리에 바다숲이 조성되기 전(2008~2011년)과 후(2012~2013)를 비교한 결과 우렁쉥이는 약 30%, 문어는 약 150% 등 어획량이 증가했다. 소돌어촌계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50대 정모 씨는 “여름이 나날이 더워지면서 기후변화를 체감한다”며 “바다숲 같은 것을 조성해서 어획량이 증가하면 어민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해조류·염생류·맹그로브숲은 온난화 막는 탄소저장고

그런데 본격화하는 기후위기와 함께 더 큰 기대를 모으는 것은 바다숲의 탄소흡수력이다. 바다숲이 블루카본(Blue Carbon), 즉 ‘해양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의 저장고가 되기 때문이다. 블루카본은 2009년 유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출간한 보고서에서 처음 언급됐고, 2019년 유엔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가 ‘해양 및 빙권 특별보고서’에서 공식적인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인정했다.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바다숲이 번성한 해저 토양이 저장할 수 있는 탄소는 1ha당 1000탄소톤(tC)으로, 육지가 저장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다. IPCC가 인정한 블루카본에는 해초류, 염생류(소금기가 많은 땅에서 자라는 식물), 맹그로브숲 등이 있다. 세계 151개국이 해초류, 염생류, 맹그로브 중 하나의 블루카본을 보유하고 있고, 71개국은 셋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한국에 있는 해조류 ‘잘피’도 대표적인 블루카본으로 꼽힌다.

IPCC가 블루카본으로 인정한 맹그로브숲, 해초류, 염생류의 모습. pixabay
IPCC가 블루카본으로 인정한 맹그로브숲, 해초류, 염생류의 모습. pixabay

현재까지 전국 연안에 조성된 바다숲은 총 228개소, 전체 면적은 2만 9180ha다. 포항공과대학교 이기택 교수 연구진이 2019년 발표한 ‘바다숲 탄소흡수력 조사’에 따르면 바다숲 1ha의 탄소흡수력은 연간 3.37톤(t)이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현재까지 조성된 바다숲이 흡수하는 탄소는 약 9만 8000t에 이른다. 한국수산자원공단은 수산자원관리 기본계획에 따라 2030년까지 바다숲을 약 2만 4000ha 추가적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그러면 전체 바다숲 규모는 5만 4000ha, 탄소흡수량은 연간 18만여t에 이를 전망이다.

공단에 따르면 바다숲을 조성하는 방법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동해는 다시마, 대황 등을 활용한 바다숲이 대표적이다. 서해는 갯벌이 넓게 분포하고 있어 잘피류와 염생식물을 활용한다. 남해는 바다에 부유물이 많아 빛이 투과하는 양이 적기 때문에 빛이 적은 지역에서도 살 수 있는 참모자반, 곰피 등이 이식된다. 날씨가 따뜻한 제주의 경우 다소 높은 수온에 잘 적응하는 감태, 큰열매모자반 등을 심는다. 다만 이렇게 인공적으로 조성된 바다숲은 자연적으로 조성된 잘피숲 등과는 달리 아직 IPCC가 블루카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감태, 모자반, 잘피숲이 조성되어 있는 모습. 한국수산자원공단 제공
감태, 모자반, 잘피숲이 조성되어 있는 모습. 한국수산자원공단 제공

이관받은 일부 지방자치단체, 관리 예산 편성 없어

2009년부터 현재까지 조성된 228개 바다숲의 위치. 한국수산자원공단 제공

바다숲은 한국수산자원공단이 4년간 조성한 후 효과 평가를 거쳐 각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한다. 그런데 이관된 바다숲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2019년 ‘바다숲 조성사업 추진 부적정’ 공문에서 일부 지자체에 이관된 바다숲의 사후관리가 미흡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2019년 잠수부를 동원해 조사한 결과 경기도 안산시에 조성된 바다숲에서는 이식한 해조류가 대부분 사라지고 콘크리트 구조체인 인공어초만 남아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성한 바다숲이 제대로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자체에 이관됐고 사후관리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포항시는 2014년부터 5개 해역의 바다숲을 넘겨받았으나 이를 관리하기 위한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포항시 일자리경제국 수산진흥과 담당자는 “예산 편성 지침에 국가 조성 바다숲 관리 목적 예산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경북 울진군과 인천 옹진군에서도 2015년 바다숲을 이관받은 후 사후관리를 목적으로 편성된 예산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의 조사 결과, 포항, 울진, 옹진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관된 바다숲에 대한 관리가 미흡했다. 감사원
감사원의 조사 결과, 포항, 울진, 옹진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관된 바다숲에 대한 관리가 미흡했다. 감사원
일부 지자체로 이관된 바다숲에서 해조류와 해저 서식 동물이 줄었다는 감사 결과가 나왔다. 감사원
일부 지자체로 이관된 바다숲에서 해조류와 해저 서식 동물이 줄었다는 감사 결과가 나왔다. 감사원

환경단체에서는 해조류의 생식 주기를 고려하지 않고 바다숲을 조성하는 것은 역효과라는 지적도 나왔다. 녹색연합은 지난 5월 성명을 통해 “정부는 바다숲 사업에 2009년부터 연간 300억 이상을 투입했다”며 “갯녹음 발생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고 바다숲을 조성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지적했다. 녹색연합 해양생태팀 신주희(36) 활동가는 지난 6일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해역마다 갯녹음 발생 원인이 다른 만큼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바다숲 조성사업은 갯녹음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 지역을 복원한다기보다는, 사업이 성공할 수 있을 법한 지역에 바다숲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수온 상승, 육지에서 오는 오염원 등 갯녹음의 발생 원인은 해역마다 다릅니다. 따라서 해역별 갯녹음 발생 원인에 대한 조사를 시급하게 진행하고, 원인지와 인위적 유입원을 제거하기 위한 관리 감독이 수반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신공항 건설 대신 갯벌 등 해양생태계 지켜야

블루카본을 확대하는 노력은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해안선에 맹그로브숲을 재건하고 해양쓰레기를 줄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에코-쇼어라인’ 정책을 통해 해안생태계 보호와 복원을 추진한다. 에코-쇼어라인은 친환경 소재로 만든 방파제를 이용해 해수면 상승에 대비하고 생물다양성을 촉진한다는 구상이다.

한국은 윤석열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 중 41번으로 ‘해양영토 수호 및 지속 가능한 해양 관리’를 내세웠다. 정부는 블루카본 확대를 위해 갯벌과 바다숲 등 탄소흡수원을 늘리고, 친환경 부표를 보급해 해양쓰레기를 예방하는 등 깨끗한 바다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7월 22일 해양수산부 주최로 열린 ‘2022 블루카본 국제포럼’에서 김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연구팀이 전국단위의 연안습지 내 블루카본과 온실가스 흡수량을 평가한 결과 우리나라 갯벌의 탄소 침적률이 49만 톤 정도라는 것을 조사했다”고 말했다. 이는 연간 승용차 11만 대가 뿜어내는 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용량이다. 김 교수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토탈 솔루션으로서 블루카본의 가치는 훨씬 더 크다고 강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환경단체들은 블루카본 확대를 위해 정부가 해양생태계 보존을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녹색연합 신주희 활동가는 “갯벌과 연안 매립지에 추진하는 신공항 개발사업은 블루카본 확대와 역행한다”며 “블루카본 확대를 위해서는 갯벌 및 연안 생태계의 보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 가덕도와 전북 군산시 새만금 간척지에서 신공항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데, 환경단체들은 이들 지역에 공항이 들어설 경우 멸종위기 동식물 서식지가 사라지는 등 환경파괴가 극심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기후위기시대]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㉝ 낡은 단독주택이 제로에너지 건물로 깜짝 변신

㉞ 개발에 밀린 무허가 정착민의 ‘생존 연료’

㉟ 난청·진폐 앓아도 떠날 곳 없는 노동자들

㊱ 실종된 ‘기후정치’를 찾습니다

㊲ ‘막장’에서 땀 흘린 이들의 희망은 어디에

㊳ 물 부족은 아프리카에서 끝나지 않는다

㊴ 돌고 돌아 사람 몸속에 쌓이는 플라스틱

㊵ 바이오연료, 전기차로 가는 징검다리 될까

㊶ 왕우렁이가 돕는 쌀농사, 도시농부도 보람

㊷ 취약층 ‘쪄 죽는 사회’ 막으려면

㊸ 속 썩은 배추에 농부 마음도 썩어들어가고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