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최나영 서울시 노원구 구의원

보통 유권자들은 내가 뽑은 구의원이 우리 동네를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기 어렵다. 최나영 노원구 구의원은 유권자의 권리가 투표할 때만 실현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민이 정치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 의원은 ‘노원주민대회’를 통해 노원구 주민들이 직접 우리 동네의 의제를 발굴하고, 문제 해결을 하도록 도왔다. 노원구 주민들은 아파트 경비 노동자의 처우를 고민하고 있었고, 늦은 밤 가족들의 귀갓길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다. 노원주민대회의 결과물로 경비실에는 에어컨이 설치됐고, 어두운 밤거리에는 CCTV가 설치됐다. 

노원주민대회로 이름을 알린 덕에 최 의원은 서울시에서 유일한 군소정당 소속 구의원이 됐다. 30대 초반에 민주노동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최 의원은 지난 8회 지방선거에 진보당 후보로 노원구 나선거구에 출마했다. 득표율 20.12%, 3위로 당선됐다. 지난 4일 <단비뉴스>는 노원구의회에서 최 의원을 만났다.

지난 4일 노원구의회에서 와 만나 인터뷰한 최나영 의원. 현경아 기자
지난 4일 노원구의회에서 와 만나 인터뷰한 최나영 의원. 현경아 기자

대의민주주의 한계 극복할 실험

최 의원이 주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주민직접정치’를 고민하게 된 것은 2015년부터다. 2014년 12월, 최 의원의 소속 정당이었던 통합진보당 해산이 계기가 됐다. 통합진보당 서울시당의 당직자였던 최 의원은 이후 창당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당이 어떤 정치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최 의원은 당시 대의민주주의 정치에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공직선거에 투표할 때만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선출된 공직자는 권한을 위임받아 입법과 예산 편성등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목소리는 일부 여론조사로 대변될 뿐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가지지는 못한다. 최 의원은 앞서 의회에 진출해 좋은 선례를 만든 노동자, 농민 출신 선배 정치인들도 국민들의 결정 권한에 힘을 싣는 정치는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선출직) 공직자들이 동네 주민의 눈치를 보느라 4년간 전전긍긍하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최 의원은 군소정당에서 스타 정치인 한두 명을 배출하는 것보다, 진보 정치인이 의회에 진입했을 때 주민의 결정권이 커진다는 인식이 자리잡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7년에 민중당을 창당하고 이듬해 노원구 월계동에서 ‘유권자 정책 제안 운동’을 시작했다. 6개월 동안 유권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 정책으로 제안하는 운동이었다. 2018년 지방선거를 대비하기 위한 초석이기도 했다. 그 결과 2018년 구의원 선거에서 강미경 당시 민중당 후보가 13.6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낙선이었지만 주민들의 호응을 느낄 수 있는 득표율이었다. 최 의원은 이때 주민이 주체가 되는 정치 형태에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주민직접정치 모델을 제대로 구현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노원구로 이주했다. 

최 의원은 이후 2019년부터 진보당 노원구 당원들과 함께 노원주민대회를 조직해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았다. 노원주민대회는 매년 주민의 요구안을 모아 구청장, 국회의원에게 전달하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다. 2019년 노원주민대회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1만 명의 의견을 모았고, 600명이 현장에 모여 요구사항을 투표로 선정했다. 노원주민대회 초기에 아직 ‘정치 초보’였던 최 의원은 무작정 거리로 나서 주민들을 만나 의견을 모았다. 길에서 만나 이야기를 듣거나 일터에 방문해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주민대회가 알려지자 주민들이 직접 의견을 모아 제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투표 결과 ‘국회에 바란다’, ‘노원구에 바란다’ 1위로 꼽힌 정책은 각각 국민소환제 도입과 경비실 노동자 처우 개선이었다. 

2020년 노원구 구민들이 노원주민대회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출처 노원주민대회
2020년 노원구 구민들이 노원주민대회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출처 노원주민대회

처음에는 주민들이 집단으로 뭉쳐 그들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러나 최 의원은 “주민들이 정책에 투표할 때 이기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지역 의제를 선택했다. 노원구는 2013년 기준으로 전국에서 아파트 밀집도가 가장 높은데다 노후 아파트가 많다. 최 의원은 그래서 경비 노동자의 처우 개선 문제가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후 노원구는 ‘경비실 에어컨 설치 지원사업’을 실시했고, 지난해에는 에어컨 설치율 96%를 달성했다.

주민에게 가닿는 정치로 차별화 전략 세워

주민대회는 최 의원이 2018년 노원구로 이주한 뒤 당원들과 함께 세운 첫 번째 목표였다. 동시에 진보당의 ‘전략’이기도 했다. 최 의원은 같은 해 중앙당 공동대표와 강령제정위원장을 맡았다. 당원들과의 토론 끝에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고, 민중이 정책을 결정할 권한을 강화한다는 강령을 세웠다. 최 의원은 “주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주민직접정치 모델이 다른 정당과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실제로 진보당은 서울시 외에도 부산, 울산 등의 지역에서 주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형식의 전략을 펼쳤다. 주민대회 외에도 ‘직접정치의 날’ 등 주민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를 여럿 만들었고, 이러한 활동으로 지지기반을 쌓을 수 있었다. 진보당은 지난 6월에 있었던 제8회 지방선거에서 기초자치단체장 1명, 광역의원 3명, 기초의원 17명 등 총 21명의 당선자를 배출해 국회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다. 진보당은 이 결과를 두고 “노동자 권리 보장, 농민수당 등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주민대회 등의 활동으로 지지기반을 쌓아온 결과”라고 평가했다. 

최 의원 역시 “2019년부터 약 3년 간 개최한 주민대회를 통해 주민들에게 가닿는 정치를 할 수 있었고, 그 덕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양당 구도를 깨고 군소정당이 의회에 더 많이 진출하기 위해서도 주민직접정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진보를 선택하면 나의 힘이 커진다”는 것을 유권자들이 체감해야 진보 군소정당이 선택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이 던진 표의 의미를 실감하지 못하는 유권자들에게 효능감을 줄 수 있는 것도 주민직접정치가 가진 힘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에 열린 제1회 노원주민대회에서 주민들이 요구안을 살펴보고 있다. 출처 노원주민대회
2019년에 열린 제1회 노원주민대회에서 주민들이 요구안을 살펴보고 있다. 출처 노원주민대회

국회의원 없는 군소정당, 주민과의 소통에는 한계

구의회 입성 석 달을 넘긴 지금, 최 의원은 “폭발적인 민원을 받고 있다”며 주민들에게 정치가 절실한 문제였음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의정 활동을 하면서 관심을 두고 있는 현안도 많아졌다. 최 의원은 그중 하나로 청년들의 주거비 문제를 들었다. 노원구에는 대학이 많아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이 많다. 이들은 한 달에 많으면 70~80만 원, 적어도 40~50만 원의 월세를 지출한다. 그밖에도 저임금 노동, 특히 돌봄노동 처우 개선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수많은 현안을 노원구 차원에서 어떻게 관리하고 지원할지 고민하고 있다. 

한편 유권자들이 구의원이 하는 일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주민직접정치와 더불어 구의원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큰 정당 소속 기초의원은 국회의원 사무실을 같이 쓰면서 지역구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지만 소속 국회의원이 없는 군소정당 소속 기초의원은 지역구에 사무실을 내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휴대전화 문자 역시 발송하는 데 비용이 든다. 최 의원은 “소통 시스템이 가장 큰 숙제”라며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구의원이 된 후에도 최 의원은 주민대회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나아가 “비슷한 형태로, 더 격렬하게 소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 의원은 경제위기와 기후위기가 심각한 상황이지만, 기성 정치인들이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 의원은 다음달에 있을 주민대회를 통해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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